분야 : 예술·체육 총 1,838건의 주제어가 있습니다.
분야 : 예술·체육
김명복 / 金明福 [예술·체육/체육]
해방 이후 『체육지도서』, 『체육개론』 등을 저술한 학자. 평안북도 정주 출생. 오산중학교를 거쳐 1935년 일본체조학교를 졸업하고 모교인 오산중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하였다. 1947년부터 평양교원대학 교수, 1954년 경희대학교 체육대학장·교육대학원장·부총장을 역임하였
김민자 / 金敏子 [예술·체육/무용]
해방 이후 최승희의 제자이며, 예그린악단의 안무가로 활동한 무용가. 1914년 서울 내수동에서 아버지 김영제(金永濟)와 어머니 유운자(柳雲子) 사이의 1남 4녀 중 셋째 딸로 출생하였다. 본명은 우경(又璟), 민자는 예명이다. 14살 때 경기고녀(현 경기여고) 재학 중
김보남 / 金寶男 [예술·체육/무용]
일제강점기 아악수, 아악수장, 아악사 등을 역임한 음악인.무용가. 1926년 이왕직아악부원 양성소(李王職雅樂部員養成所) 제3기생으로 입소하여 피리를 전공하였고, 후에 아악수(雅樂手)·아악수장(雅樂手長)·아악사(雅樂師)가 되었다.춤에 소질이 있어 박성재(朴聖在)·김천흥(
김복진 / 金復鎭 [예술·체육/조각]
1901-1940. 조각가. 호는 정관(井觀). 충청북도 청원 출신. 소설가 기진(基鎭)의 형이다. 우리나라 근대조각의 개척자이다. 1920년에 동경미술학교에 유학하여 조각을 전공하고 1925년에 졸업했다. 그뒤 서울의 모교인 배재고등보통학교 미술교사, 경성여자상업학
김봉문 / 金奉文 [예술·체육/국악]
항일기의 판소리 명창(1876-1930). 명창 박기홍(朴基洪)에게 판소리를 배워 민족항일기초에 명창으로 이름을 떨쳤다. 박기홍의 소리제를 이어 동편제 소리의 진수를 발휘했으며, 〈흥보가〉를 잘하였고 특히 ‘박타는 대목’에서 ‘박물가(博物歌)’를 잘 불렀다.
김봉학 / 金鳳鶴 [예술·체육/국악]
1883-1943. 판소리의 명창. 원각사(圓覺社) 주석으로 있던 판소리명창 김창환(金昌煥)의 아들로 전라남도 나주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아버지로부터 판소리를 10여년간 배웠고, 아버지의 법통을 이어받았다. 풍채와 더불어 좋은 목과 재질을 타고나서 대명창이 되었다.
김상진 / 金尙鎭 [예술·체육/영화]
1905-미상. 영화감독·영화미술가. 서울 출생.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미술에 재질을 보였으며 영화와 문학에 심취하였다. 1923년에 처음으로 우리나라에 영화제작의 기운이 일어나자 영화계에 뛰어들었다. 이구영(李龜永)이 감독한 〈쌍옥루 雙玉淚〉(1925)의 자막을 담당
김생 / 金生 [예술·체육/서예]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에서 「태자사낭공대사백월서운탑비」, 「여산폭포시」, 「창림사비」 등의 작품을 낸 서예가. 『삼국사기』권48 열전 제8 김생조에 의하면, “김생은 부모가 한미(寒微)하여 가계를 알 수 없다. 어려서부터 글씨를 잘 썼는데 나이 팔십이 넘도록 글씨에 몰두하
김소동 / 金蘇東 [예술·체육/영화]
1911-1988년. 일제 강점기 영화인·작가·평론가. 본관은 함창(咸昌)이고, 출신지는 경상북도 상주(尙州)이다. 1947년 우리나라 최초의 공포영화이자 유성영화(有聲映畵) 〈목단등기(牧丹燈記)〉를 감독하였다. 1956년 영화 〈호동왕자와 낙랑공주〉를 감독하였다.
김소랑 / 金小浪 [예술·체육/연극]
생몰년 미상. 신극 초창기 신파배우. 본명은 현(顯). 1911년 초겨울에 임성구(林聖九)가 최초의 신파극단인 혁신단(革新團)을 조직했을 때, 창립단원으로 참여함으로써 신극운동을 시작하였다. 그뒤, 혁신단의 여러 작품에 출연했으나 1918년 2월 혁신단으로부터 독립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