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형 : 인물 총 3,881건의 주제어가 있습니다.
유형 : 인물
방응현 / 房應賢 [종교·철학/유학]
1524(중종 19)∼1589(선조 22). 조선 중기의 학자. 할아버지는 귀화, 아버지는 한걸이다. 일찍이 조식·이항의 문하에 출입하며 학문을 닦았으나 관직에 뜻이 없어 과거에 나가지 않았다. 향리의 사계천 위에 집을 짓고 일생을 송시와 독서로 자적하는 가운데 과농·
방정환 / 方定煥 [교육/교육]
항일기의 아동문학가(1899∼1931). 1920년 일본 동양대학 철학과에 입학하여 아동예술과 아동심리학을 연구하였다. 1922년 5월 1일 ‘어린이의 날’을 제정하였고, 1923년 3월 아동잡지《어린이》를 창간하였다. 1928년 ‘세계아동예술전람회’를 개최하였다.
방종현 / 方鍾鉉 [언어/언어/문자]
1905∼1952. 국어학자. 1926년오산중학교(五山中學校)를 거쳐, 1934년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 조선어학 및 문학과를 졸업하였다. 동대학원에 입학하여 1938년 9월까지 국어학을 연구하였는데, 그 사이인 1936년 11월부터 1937년 7월까지 동경제국대학 대학
방청자 / 傍聽者 [언론·출판/언론·방송]
모임을 구경하며 내용을 듣는 참가자이다.
배구자 / 裵龜子 [예술·체육/무용]
일제강점기 배구자예술연구소를 설립하여 활동한 무용가. 서울 출생. 배구자는 구한말의 요화(妖花) 배정자(裵貞子)의 조카이며, 12세에 조선 공연에 온 쇼우교구사이덴까스(松旭齊天勝)의 덴까스곡예단(天勝曲藝團)에 입단하였다. 덴까스곡예단의 프로그램은 무용, 음악, 곡예,
배명균 / 裵明均 [예술·체육/무용]
해방 이후 우리나라 최초의 직업 안무가.연출가. 직업안무가 제1호로 함경남도 삼방(三防)에서 출생했다. 배병인과 남양 홍씨 부인의 3남 1녀 중 셋째로 태어났다. 삼방의 신고산 초등학교를 졸업한 후, 서울에서 중학교와 경성상고를 졸업했다. 경성상고 졸업 후 삼방으로 귀
배삼익 / 裵三益 [종교·철학/유학]
1534(중종 29)∼1588(선조 21). 조선 중기의 문신. 이순 증손, 할아버지는 헌, 아버지는 천석이다. 어머니는 정세호의 딸이다. 이황의 문인이다. 1564년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 풍기군수, 양양부사, 사헌부장령 등을 역임하였다. 저서로는 시문집인 <임연재
배상익 / 裵尙益 [종교·철학/유학]
1581(선조 14)∼1631(인조 9). 조선 후기의 문신·학자. 할아버지는 무원, 아버지는 응경, 어머니는 전해의 딸이다. 정구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조수익·이식과 교유하였다. 1617년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 1625년 성균학학유를 시작으로 성균관전적, 사헌
배용길 / 裵龍吉 [종교·철학/유학]
1556(명종 11)∼1609(광해군 1). 조선 중기의 문신. 헌 증손, 할아버지는 천석, 아버지는 삼익, 어머니는 남신신의 딸이다. 1585년(선조 18) 성균관에 입학,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안동에서 의병을 일으켜 김해를 대장으로 추대하고 그의 부장으로
배유장 / 裵幼章 [종교·철학/유학]
1618년(광해군 10)∼1687년(숙종 13). 조선 중기 학자‧처사. 부친은 배유지, 생부 배상익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외조부는 증 이조판서 운천 김용이다. 형으로 배유화가 있다. 학문연구와 후진 양성에 전념하였다. 슬하에 5남 4녀를 두었는데, 아들로 증 의금부도
배유화 / 裵幼華 [종교·철학/유학]
1611(광해군 3)∼1673(현종 14). 조선 중기의 학자. 상익 아들, 어머니는 김용의 딸이다. 1648년(인조 26) 사마시에 합격, 성균관에 들어가서 학문을 연구하였다. 1667년(현종 8) 김천찰방을 거쳐 종부시직장, 1672년 의금부도사를 지냈다. 시와 그
배응경 / 裵應褧 [종교·철학/유학]
1544(중종 39)∼1602(선조 35). 조선 중기의 문신. 윤문 증손, 할아버지는 유, 아버지는 무원, 어머니는 정희장의 딸이다. 정구와 교유하였다. 1573년(선조 6) 사마시에 합격, 1576년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대표관직으로는 순천부사, 나주목사,
백광홍 / 白光弘 [문학/고전시가]
조선 중기의 문인. 아버지는 백세인(白世仁)이며 어머니는 광산 김씨로 첨정(僉正)김광통(金廣通)의 딸이다. 아우 백광안(白光顔)과 백광훈(白光勳) 및 종제 백광성(白光城) 등 한 집안 4형제가 모두 문장으로 칭송을 받았다. 1522년(중종 17) 전라도 장흥에 있는 사
백광훈 / 白光勳 [종교·철학/유학]
1537년(중종 32)∼1582년(선조 15). 조선 중기의 시인. 아버지는 세인, 어머니는 신광통의 딸이다. 형인 광안과 광홍 및 종제 광성 등 한 집안 4형제가 모두 문장으로 칭송을 받았다. 양응정·노수신 등에게서 수학하였다. 예빈시, 소격서 참봉을 역임하였다. 저
백남운 / 白南雲 [정치·법제/정치]
1895년∼미상. 경제학자·정치가. 1933년《조선사회경제사》를 발간하였다. 1937년《조선봉건사회경제사 상》을 발간하였다. 1946년 2월 김두봉·한빈 등이 북한에서 결성한 조선신민당의 경성특별위원회위원장을 맡는 한편, 좌익세력의 집결체인 민주주의민족전선의장단의 의
백대붕 / 白大鵬 [문학/한문학]
조선 중기의 위항시인(委巷詩人). 천인의 신분으로 시를 잘 지어 이름을 날렸다. 언제 출생하였는지 분명하지 않으나 유희경(劉希慶)·정치(鄭致)와 함께 노닐었다는 『이향견문록(里鄕見聞錄)』을 보거나 허봉(許篈)·심희수(沈希洙) 등과 더불어 터놓고 사귀었다는 『학산초담(鶴
백선행 / 白善行 [사회/사회구조]
1848(헌종 14)∼1933. 여성 사회사업가. 경기도 수원에서 백지용(白持鏞)의 장녀로 출생하여 어려서 평양 중성(中城)에 옮겨 살았다. 7세에 부친을 여의었으며, 편모 김씨(金氏) 슬하에서 자라며 효행이 남다른 가운데 14세 때 안재욱(安裁煜)과 가정을 이루었다.
백수회 / 白受繪 [문학/고전시가]
조선 중기의 문신. 부여백씨(扶餘白氏)지만, 그가 임진왜란 때 왜군의 포로가 되고, 또한 병화(兵火)로 그의 보첩(譜牒)을 잃었기 때문에 가계(家系)가 분명하지 못하며, 언제 양산에 옮겨 정착하게 되었는지도 알 수 없다. 그가 일본에서 풀려나 돌아와 증조대(曾祖代)로부
백인걸 / 白仁傑 [종교·철학/유학]
1497(연산군 3)∼1579(선조 12). 조선 중기의 학자·문신. 효삼의 증손, 할아버지는 사수, 아버지는 익견. 어머니는 우종은의 딸이다. 조광조 문인으로 김안국에게서도 학문을 배웠다. 송인수·유희춘·이이·성혼 당대 사림계 인물들과 널리 교유하였다. 예문관검열
백초월 / 白初月 [종교·철학/불교]
1878년(고종 15)∼1944년. 승려 독립운동가. 본명은 인영(寅榮), 아명은 학명(學明), 족보상에는 도수(道洙), 법명은 동조(東照), 이명은 최승(最勝)‧의수(義洙), 호는 초월, 경상남도 진주 출신이다. 상해임시정부를 지원하기 위해 천은사(泉隱寺)‧화엄사(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