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형 : 인물 > 의병·독립운동가 총 672건의 주제어가 있습니다.
유형 : 인물 > 의병·독립운동가
황위현 / 黃渭顯 [역사/근대사]
1891-1966.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 호는 난사(蘭史)이다. 본관은 장수(長水)이며, 전라남도 구례군(求禮郡) 간전면(艮田面) 만수동(萬壽洞) 구안실(苟安室: 매천 황현의 서재)에서 태어났다. 매천(梅泉) 황현(黃玹)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중부(仲父)의 양자로
황인수 / 黃麟秀 [역사/근대사]
1886-1945. 항일기의 독립운동가. 3·1운동 때 교하면 만세시위운동에 참여했다. 이후 최창섭 등과 장날을 기하여 계속적으로 만세시위를 전개했다. 군자금모집 활동을 하다가 체포되어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7년을 선고받았다. 건국표창이 추서되었다.
황재옥 / 黃在玉 [역사/근대사]
1880-1932.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적은 경기도 여주(驪州)이다. 1919년 4월 천도교 측의 지시를 받은 경성농업학교 재학생 원필희(元弼熙)가 경기도 여주군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기로 책임지고, 여주군의 각 면(面)을 돌며 태극기를 나누어 주며 만세시위운동
황재운 / 黃在雲 [역사/근대사]
1887-1939. 독립운동가. 평안남도 강서 출신. 본래 증산면 화선리 사람으로, 일을 보러 왔다가 1919년 3월 4일 최능현(崔能賢)·송현근(宋賢根) 등이 주동한 반석면 상사리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이날의 만세운동은 반석교회와 원장교회가 중심이 되어 계획하던
황종화 / 黃鍾和 [역사/근대사]
1878-1950. 독립운동가. 경상남도 진주 출신. 1919년 3·1운동 당시 경상남도 각지를 순회하면서 만세시위운동에 가담하여 독립선언문과 격문 등을 배포하여 각 지방에서의 만세운동을 선동하였다. 같은해 4월 이운형(李運衡)·이영봉(李永鳳)·김규열(金圭烈) 및 임
황진연 / 黃珍淵 [역사/근대사]
1899-미상. 일제 강점기 사회주의운동가. 본적은 함경북도 명천(明川)이다. 1918년 1월 거주지를 만주(滿洲)로 옮긴 후 한의원을 운영하며 사회주의운동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조선공산당 만주총국 당원이 되었다. 1930년 ‘간도 5·30봉기’ 때 길림성(吉林省) 연
황찬서 / 黃贊西 [역사/근대사]
1873-1919.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 다른 이름은 황찬서(黃贊瑞)이다. 일제의 강제 병합 이후 강한 항일의지로 민족의식을 고취하고, 의병 활동을 선전하는 등의 일을 하였다. 이후 남원(南原)에서 일본 상품의 불매운동, 세금불납, 토지 불매운동을 전개하다가, 일본
황창섭 / 黃昌燮 [역사/근대사]
1896-1949.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사회주의운동가. 본적은 경상북도 예천(醴泉)이다. 잡화상·자전거포·철공업 등에 종사하였다. 1925년 예천청년회 검사위원·예천신흥청년회 교양부담당 상무집행위원·사회주의 사상단체 오오회(五五會) 집행위원, 1927년 예천사우회
황창오 / 黃昌五 [역사/근대사]
1896년-미상. 독립운동가. 경기도 화성 출생. 일찍이 조국광복을 위하여 헌신할 것을 각오하고 있던 중,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이에 적극 참가하여 고향인 화성군 태안면 삼정리에서 대중을 규합, 조직하여 만세시위운동을 전개하였다. 이후 계속 독립사상을 고취
황학봉 / 黃學奉 [역사/근대사]
1903-1929. 독립운동가. 평안북도 초산 출신. 일찍이 만주로 망명하여 육군주만참의부(陸軍駐滿參議府)에 가입, 항일투쟁하다가 동부(同府) 제4중대에서 유격대를 조직하므로 참사(參士)를 자원, 편입하였다. 대원들과 같이 봉천(奉天)일대를 근거로 군자금 모집, 일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