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 : 고대 총 1,191건의 주제어가 있습니다.
시대 : 고대
바둑 / 圍碁 [생활/민속]
두 사람이 바둑판을 사이에 두고 마주앉아 여러 가지 규약에 따라 바둑판 위에 바둑돌을 한 점씩 서로 번갈아 놓고 경기의 끝 판에 이르러 각자가 차지한 ‘집’의 수효를 계산하여 승부를 겨루는 놀이. 바둑은 각자의 성품과 도량을 표현하며, 바둑 한 판에서 발생하는 흥망성쇠
박인범 / 朴仁範 [문학/한문학]
신라 효공왕 때의 문신·학자. 당나라에 유학하여 빈공과(賓貢科)에 급제하였고, 특히 시문에 뛰어나 명성이 높았다. 귀국한 뒤 한림학사·수예부시랑(守禮部侍郎) 등을 역임하였다고 전한다. 898년(효공왕 2) 당시 동리산(桐裏山) 조사인 도선(道詵)이 백계산(白鷄山)옥룡사
박제상설화 [문학/구비문학]
신라 눌지왕 때의 충신 박제상에 관한 설화. 고구려와 일본에 볼모로 잡혀간 왕자를 구하고 자신은 죽음을 당한 박제상의 인물전설이다. 그의 아내가 기다리다가 죽어 망부석이 되었다는 아내의 죽음 설화도 포함된다. 『삼국유사』에는 김제상으로 되어 있다. 이 설화에는 역사적
반걸양 / 半乞壤 [지리/인문지리]
황해도 연백 지역의 옛 지명. 『삼국사기』의 기록에는 “백제 근초고왕 때 고구려의 고국원왕 사유(斯由)가 반걸양(半乞壤)에 이르러 싸우려 하거늘, 왕이 태자를 보내어 이를 막게 하였다. 태자가 적을 크게 쳐부수어 수곡성(水谷城)까지 쫓아버렸다.”라고 되어 있다. 『대동
반나부리 / 半奈夫里 [지리/인문지리]
전라남도 나주 지역의 옛 지명. 당나라가 백제를 멸망시킨 뒤 대방주(帶方州)의 영현이 되었다가 신라 경덕왕 때 반남군(潘南郡)으로 바뀌었다. 반나부리의 뜻은 ‘대읍(大邑)’이다. 이 지역은 나주평야의 일부로 영산강 동쪽에 자리잡고 있어 예로부터 물산이 풍부하여 큰 취락
반남 / 潘南 [지리/인문지리]
전라남도 나주 지역의 옛 지명. 본래 백제의 반나부리현(半奈夫里縣)이었는데, 당나라가 백제를 멸한 뒤 반나로 고쳐 대방주(帶方州)의 영현으로 하였다. 757년(경덕왕 16) 반남군으로 고쳐 야로(野老)와 곤미(昆湄)의 두 현을 함께 다스리도록 하였다. 고려 초에 현으로
반비 / 半臂 [생활/의생활]
상의의 맨 위에 입는 소매가 없거나 아주 짧은 겉옷. 반비란 소매가 짧은 데서 나온 이름이다. 반비는 신라 제42대 흥덕왕(興德王) 복식금제 속에 나오는데 남녀가 다같이 입으며 표의와 같은 고급직물로 지어 입고 있다. 그런데 조선 전기에 있었던 이 몽두의는 자취를 감추
반성 / 班城 [지리/인문지리]
경상남도 진주 지역의 옛 지명. 삼국시대의 명칭은 확실하지 않으나 고려시대에 와서 반성현이라 불렀으며, 그 뒤 현종 때진주목의 속현이 되었다. 조선 말기까지 일반성면과 이반성면으로 존속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개편 때 일반성면은 진주군 외진성면을 합치고 이반성면은 진주
반속요 / 返俗謠 [문학/한문학]
신라시대 설요(薛瑤)가 지은 한시. 설요는 신라 출신으로 당나라에 거주한 여류시인이다. 『전당시 全唐詩』와 『대동시선 大東詩選』 등에 수록되어 있다. 7언4구의 고체시 형식으로, 내용은 천생(天生)의 아름다움으로 산에서만 묻혀 살 수 없는 여자의 염심(艶心)을 노래하였
반야경 / 般若經 [종교·철학/불교]
반야를 주제로 한 경전의 총칭. 반야란 제법의 실상을 깨닫는 지혜를 말한다. 각각의 반야경전들의 주제는 이 반야의 지혜에 관한 것이다. 반야는 세계의 실상이 공임을 깨닫는 지혜이다. 반야경 종류로는 <소품반야> <대품반야><금강반야바라밀다경><반야심경>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