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 : 근대 > 일제강점기 총 2,118건의 주제어가 있습니다.
시대 : 근대 > 일제강점기
김여진 / 金麗鎭 [역사/근대사]
1855-미상.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적은 황해도 수안(遂安)이다. 천도교구장이었던 안봉하(安鳳河)를 중심으로 나용일(羅龍一)·장성도(張聖道)·김동선(金洞宣)·이달하(李達河)·안창식(安昌植)·홍길재(洪吉載)·홍두익(洪斗益)·이응호(李應浩)·이윤식(李潤植) 등과
김연순 / 金演淳 [역사/근대사]
1881-1946.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기독교인. 본적은 경상북도 영덕(盈德)이다. 1919년 3월 19일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蒼水面) 창수동(蒼水洞)의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하였다. 이곳의 독립만세운동은 신기동(新基洞) 구장 이현설(李鉉卨)과 이수각(李壽珏)·이
김연실전 / 金姸實傳 [문학/현대문학]
김동인(金東仁)이 지은 단편소설. 1939년 3월 『문장』 2집에는 ‘김연실전’, 5월에는 ‘선구녀(先驅女)’, 1941년 2월에는 ‘진주름’이라는 제목으로 같은 잡지에 3회에 걸쳐 발표되었다. 이 작품은 당시 신여성 문학인이었던 김명순(金明淳)을 모델로 하였다고 하여
김영국 / 金永國 [역사/근대사]
미상-1919.03.19.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3·1운동 이후 전국적으로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났을 때, 황해도 문화면(文化面)에서 시작되어 신천군(信川郡)까지 확산된 시위에 참여하였다. 이 운동은 문창규·김명성 등의 기독교인과 천도교인 등 종교인들의 주도로 시작되었
김영길 / 金永吉 [예술·체육/대중음악]
1909-1985년. 일제 강점기 가수·영화배우. 창씨 개명한 이름은 나가타겐지로[永田絃次郞]이다. 출신지는 평안남도 강동군(江東郡)이다. 1928년 평양 제2중학교를 졸업하고, 1933년부터 1935년까지 동경일일신문음악콩쿠르 성악부문에서 3년 연속 입상하였다. 1
김영득 / 金榮得 [역사/근대사]
1908-1940. 일제 강점기 항일운동가. 다른 이름은 김유영(金幽影)이다. 본적은 경상북도 선산(善山)이다. 1927년 9월 서울에서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에 가입하여 1930년 4월경까지 열성 당원으로 활동하면서, 일제의 수탈과 탄압으로 땅을 빼앗기고 유랑하는
김영란 / 金永蘭 [역사/근대사]
1896-1922.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출신지는 평안남도 순천이다. 1919년 3·1운동에 참가한 후 공성단(共成團)에 가입하였다. 같은 해 평양·순천 등지에서 독립활동을 위한 자금을 모금하고 비밀결사 숭의단을 창립하였다. 1920년 평남 등지에서 민족독립활동을
김영서 / 金永西 [역사/근대사]
1889-1959. 독립운동가. 일명 광오(光五). 경기도 안성 출신. 1919년 4월 안성군 원곡면과 양성면일대에서 이유석(李裕奭) 등이 계획하여 전개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4월 1일 외가천리에 있던 원곡면사무소 앞에서 1천여명의 만세시위군중들과 독립만세를 외
김영성 / 金永聲 [역사/근대사]
1867-1959. 한말의 의병장. 전라남도 흥양 출신. 1909년 3월 격문을 발하여 의병을 모집, 휘하에 30명의 의병을 거느리고 3월부터 5월 사이에 흥양군 대강면·남양면·남면·서면 등지에서 군자금을 모금하였다. 4월에는 사창호곡(社倉毫谷)에서, 8월에는 과역(過
김영숙 / 金永肅 [역사/근대사]
1886-1952. 독립운동가. 본관은 광산. 호는 백주(白舟). 충청남도 결성군(지금의 홍성군) 출신. 1911년 중앙고등보통학교 사범과를 졸업한 뒤, 잠시 서울 승동소학교(勝洞小學校)에서 교편을 잡다가 같은해 8월 만주로 망명하였다. 그곳에서 대종교의 윤세복(尹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