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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저 / 素錦褚 [정치·법제]
흉례 시 재궁을 덮을 때 사용하던 덮개. 소금저는 흰 비단을 궁실 모양으로 제작하여 사용하였다. 서까래는 대나무를 사용하고 종이를 바른 다음 흰색 비단으로 씌웠다. 규모는 높이가 2척8촌 5푼, 너비가 3척 5촌, 길이가 9척1촌이었다.
소나무 / Pinus densiflora S. et Z. [과학/식물]
소나무과에 속하는 상록교목. 주로 솔나무·송목·적송·육송 등으로 부르며, 송유송(松油松)·여송(女松)·자송(雌松)·청송(靑松) 등으로도 부른다. 학명은 Pinus densiflora S. et Z.이다. 높고 굵게 크는 나무로서 우리나라의 나무 가운데 은행나무 다음으로
소네 아라스케 / 曾禰荒助 [정치·법제/외교]
1849-1910. 근대 일본의 관료. 외교관. 정치가. 1872년 프랑스에 유학. 1877년 귀국해 육군성에 출사. 1881년 문관으로 전환해 태정관 소서기관, 참사원 의관보, 법제국 참사관, 내각 기록국장, 내각 관보국장 등 역임. 1890년 국회가 개설 초대 중의
소년광창체육회 / 少年光昌體育會 [예술·체육/체육]
1909년 서울에서 조직되었던 체육단체. 한성(漢城) 북동(北洞) 남궁 계의 집에서 청년의 신체를 건강하게 단련시킬 목적으로 조직되었다.각종 체조와 타구회(打球會)를 개최하였으며, 자세한 활동상황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이 시기에 소년들을 위한 여러가지 체조나
소년한반도 / 少年韓半島 [문학/현대문학]
1906년에 창간된 우리나라 최초의 소년잡지. 1906년 11월에 창간되어 1907년 4월까지 통권 6호가 발행되었다. 주요기사로는 이해조의 소설 「잠상태」를 연재하고, 이인직의 「사회학」, 원영의의 「교육신론」, 정교의 「국제공법」, 조중응의 「농업대지」, 유길준의
소년행 / 少年行 [문학/고전시가]
고려 후기에 이제현(李齊賢)이 지은 가요. 원가는 전하지 않고 한역가만이 『익재난고(益齋亂藁)』 권4 「소악부(小樂府)」에 수록되어 있는 실전가요이다. 『고려사』 악지나 기타 문헌에 실려 있지 않고, 흔히 ‘소년행’이라 불린다. 겹저고리 벗어 어깨에 걸고 친구를 부르며
소노서원 / 小魯書院 [교육/교육]
경상남도 양산시 상북면 소토리에 있는 서원. 1835년(헌종 1)에 임진왜란 때의 공신 소산(蘇山) 정호인(鄭好仁)과 노산(魯山) 정호의(鄭好義) 형제의 우국충정을 길이 새기고자 향중 유림의 공의로 서원을 창건하였다. 1868년(고종 5)에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
소놀이 [생활/민속]
소 형상을 만들어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풍년과 평안을 기원하는 민속놀이. 황해도·경기도·충청북도를 비롯한 우리 나라 중부지역과 강원도의 영서지방에서 행하여지며, 그 시기는 정월대보름과 한가위로서 한 해에 두 차례 베풀어진다. 이 놀이를 위해서는 먼저 소를 만들어야 한다.
소대각봉 / 小大角峯 [지리/자연지리]
함경남도 혜산군 운흥면에 있는 산. 높이 2,042m. 마천령산맥 중의 험준한 산으로, 동쪽 약 2㎞ 지점인 함경남도와 함경북도의 경계에 위치하는 대각봉(大角峯, 2,121m)과는 자매봉을 이루고 있다. 북쪽에 있는 설령봉(雪嶺峯, 1,836m)을 비롯한 1,800m
소대성전 / 蘇大成傳 [문학/고전산문]
작자·연대 미상의 고전소설. 1책. 국문본. 영웅소설 유형에 속하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영웅소설의 보편적인 내용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몇 가지 점에서 특이한 점이 있어서 주목된다. 주인공 대성이 초년에 걸식하고, 이상서 집에서 밥먹고 잠만 자는 위인으로 나오는 대목에
소대풍요 / 昭代風謠 [문학/한문학]
조선 후기 위항시인들의 시선집. 9권 2책. 활자본. 『소대풍요』는 162인의 시편 685수가 시체에 따라 선집되어 있다. 수록된 시인은 중인·서인을 비롯하여 상인·천예 출신까지도 망라되어 있다. 그 중 중심이 되고 있는 것은 의역(醫譯)중인과 서리이다. 이 가운데서도
소동정호 / 小洞庭湖 [지리/자연지리]
강원도 통천군 흡곡면에 있는 호수. 호수 둘레 약 14.3㎞. 원산 동남동 25㎞ 지점에 위치하며 영동해안(嶺東海岸)석호군(潟湖群)의 북쪽 끝에 있다. 동쪽에는 너비 200∼500m의 청송으로 우거진 사구(砂丘)에 의하여 동해와 분리되며, 사구 중앙에 연화봉(蓮花峯,
소동파 / 蘇東坡 [문학]
1037.1.8~1101.8.24. 중국 북송 때의 제1의 시인. 소순 아들, 소철의 형이다. 송나라 제1의 시인이며, 문장에 있어서도 당송팔대가의 한 사람이다. “독서가 만 권에 달하여도 율은 읽지 않는다” 고 해 초유의 필화사건을 일으켰다. 당시가 서정적인 데 대
소랑도 / 少浪島 [지리/자연지리]
전라남도 완도군 금일읍 사동리에 있는 섬. 동경 127°06′, 북위 34°19′에 위치하며, 완도읍에서 동쪽으로 21㎞ 지점에 있다. 면적은 1.00㎢이고, 해안선 길이는 5.0㎞이다. 평일도(平日島) 남쪽의 사동리 해안에서 0.4㎞ 떨어져 있다. 남동쪽에 다랑도(多
소래포구 / 蘇萊浦口 [지리/인문지리]
인천광역시 남동구 논현동에 있는 어항. 소래포구 지역은 1930년대 염전이 생기면서 알려지기 시작했다. 1937년 일제가 수탈을 목적으로 수원과 인천 사이에 협궤철도(狹軌鐵道, 수인선)를 부설할 때, 천일염을 수탈하기 위해 소래역을 만든 이래로, 소래포구는 작업인부와
소렴 / 小斂 [사회/가족]
죽은 뒤 습(襲)을 마치고 나서 뼈가 굳어 입관(入棺)하는 데 지장이 생기지 않도록 손과 발을 거두는 상례의식. 소렴의 절차는 먼저 집사(執事)하는 사람이 소렴에 필요한 이불과 옷을 준비하고, 시신이 있는 방의 동쪽 벽 아래 탁자를 설치한다. 이때 옷은 죽은 사람이 평
소령묘석물간역과 포상명세서 / 昭寧廟石物看役과 褒賞明細書 [역사/조선시대사]
포상명세서. 소령묘(昭寧廟) 석물(石物)을 보수하는 일에 참여한 인원에 대한 명단과 상품을 적은 문서이다. 언제의 일인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본문의 '소령묘'라는 표기로 미루어 1744년(영조 20) 이후의 문서임을 알 수 있다.
소령원원상사초고손처봉심도형 / 昭寧園園上莎草枯損處奉審圖形 [정치·법제/법제·행정]
소령원을 봉심한 뒤 떼가 말랐거나 훼손된 곳을 표시하여 보고한 봉심도형. 모두 봉심한 일시가 적혀있지는 않지만,《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에 원상(園上)의 사초고손처 봉심결과를 보고한 기록이 자주 나온다.
소령제서 / 昭寧題書 [역사/조선시대사]
숙빈최씨 묘호 글씨. 숙빈최씨의 묘호(墓號)인 '소령(昭寧)'을 좌우에 두 글자씩 해서로 쓰고, 아래에 현판 등을 만드는 지침을 초서로 썼다. 소령이란 묘호는 1744년(영조 20) 새로 정한 것으로 이 필적은 이듬해 8월 중순에 쓴 것이다. 《영조실록(英祖實錄)》에
소례복 / 小禮服 [생활/의생활]
국가의 작은 의식 때 입던 예복. 조선시대에는 오례(五禮 : 가례·길례·빈례·군례·흉례)에 따라 제복(祭服)·조복(朝服)·공복(公服)·상복(常服)·시복(時服)을 착용하였다. 1895년 8월 10일에 대례복·소례복·상복을 제정, 반포한 뒤에는 대례·소례에 따라 대례복·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