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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 : 인물 > 의병·독립운동가
허장완 / 許璋完 [역사/근대사]
1899-1919.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다른 이름은 허장완(許璋浣)이다. 본적은 경상남도 통영군(統營郡)이다. 1919년 3월 9일과 12일 양일간 배익조(裵益祚)·모치전(牟治田)·김형기(金炯綺)·이학이(李學伊)·양재원(梁在元)·강세제(姜世濟)·권남선(權南善)과
허중환 / 許仲煥 [역사/근대사]
미상-1920년.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다른 이름은 그레고리 한(韓)이다. 만주(滿洲)로 이주하여 생활하면서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치기로 결심하고 독립군(獨立軍)에 가담하였다. 1919년 독립만세운동이 국내 전국으로 확산되자 만주 일대에서도 활발히 전개되었다. 1
허형 / 許炯 [역사/근대사]
1894-1963년. 독립운동가. 평안남도 안주 출신. 1919년 3·1운동 후에 서울에서 조선독립청년단을 조직,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안국동 이도제(李道濟)의 집에서 노령(露領)지방의 이동휘(李東輝)가 경상북도 경주에 거주하는 최익선(崔益善)에게 보내는 “우리들의
현상로 / 玄相魯 [역사/근대사]
미상-1919년 3월 13일.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다른 이름은 현남로(玄南魯)이다. 1919년 3월 13일 조선독립기성총회(朝鮮獨立期成總會)가 중국 길림성(吉林省) 연길현(延吉縣) 용정촌(龍井村) 서전평야(瑞甸平野)에서 주최한 3·1독립운동축하식에 참석하였다.
현상윤 / 玄相允 [역사/근대사]
1893-?. 항일기의 독립운동가·교육가. 3·1운동의 계획과 추진에 중요한 구실을 한 인사 16인 중 한 사람으로, 3·1운동 후 복역한 뒤, 중앙고등보통학교 교장, 조선민립대학기성회 중앙집행위원을 지냈다. 광복 후 보성전문학교 교장을 지내다가, 고려대학교로 승격되
현순 / 玄楯 [역사/근대사]
1880-1968. 독립운동가. 일명 송원상(宋元相). 서울 출신. 1919년 3·1운동 때 목사로서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 그뒤 중국 상해(上海)에 밀파되어 평화회의의 주도자인 미국대통령 윌슨(Wilson, T. W.)과 평화회의에 독립청원서를 보내어 동양평화유지에
현시화 / 玄始化 [역사/근대사]
1892-1968.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 본관은 연주(延州)로 제주 표선면(表善面) 세화리(細花里)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한학을 배웠으며 보천교(普天敎)를 믿다가 무극대도교(無極大道敎)의 핵심 신도가 되어 포교 활동을 하였다. 1940년 제주도 내에 신도들이 확
현정경 / 玄正卿 [역사/근대사]
1886-1941. 독립운동가. 본명은 병근(炳瑾). 호는 하죽(河竹). 평안북도 박천 출생. 1919년의 3·1운동 후 만주 동삼성(東三省)으로 망명하여 한족회(韓族會)와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 등에 가담하여, 항일활동을 하였다. 1920년에는 광한단(光韓團)을 조
현천묵 / 玄天默 [역사/근대사]
생몰년 미상. 독립운동가. 본관은 수원(水原). 호는 백취(白醉). 함경북도 경성 출신. 1910년 일제가 우리나라를 강점하자 만주로 망명하였다. 그후 서일(徐一)을 만나 대종교에 입교하여 1911년 1월 참교(參敎), 1913년 4월 지교(知敎), 1917년 5월
호억준 / 扈億俊 [역사/근대사]
1885년(고종 22) 2월 8일∼1941년 4월 7일.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적은 충청남도 서산(瑞山)이다. 1919년 서울에서 일어난 3·1운동 소식을 접하면서, 면사무소 사환 송재만(宋在萬)을 행동총책으로 하여 면장 이인정(李寅正)·면내 유지 남계원(南桂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