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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 : 고대
무령왕비 금귀걸이 / 武寧王妃金製耳飾 [예술·체육/공예]
백제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왕비의 금귀걸이. 국보 제157호. 무령왕릉에서는 모두 5쌍의 금귀걸이가 출토되었는데 이 중 왕의 것은 1쌍이고 나머지는 모두 왕비의 것이다. 왕비 귀걸이는 머리 쪽에서 2쌍, 발치 쪽에서 2쌍이 출토되었다. 발치 쪽에서 출토된 것은 원판형의
무령왕비 금제관식 / 武寧王妃金製冠飾 [예술·체육/공예]
백제 무령왕릉에서 발견된 왕비의 금제 관식. 국보 제155호. 501년에서 523년에 재위하였고 525년 매장된 무령왕과 529년에 매장된 왕비의 부부묘인 무령왕릉에서 발견된 왕비의 금제 관식이다. 금제 관식은 연도 쪽을 기준으로 왼쪽에 위치한 왕비의 시상대의 머리 부
무령왕비 베개 / 武寧王妃頭枕 [예술·체육/공예]
백제 무령왕비의 머리를 받쳐 놓은 장례용 나무 베개. 국보 제164호. 백제 무령왕릉은 부부 합장묘로, 목제 두침과 족좌가 두 세트 발견되었다. 왕의 유물은 흑칠을 하고 얇은 금판으로 장식하였으며, 왕비의 경우는 붉은색으로 칠하고 금박으로 공간을 구획하여 문양을 그려
무령왕비 은팔찌 / 武寧王妃銀製釧 [예술·체육/공예]
백제 무령왕릉에서 발견된 왕비의 은팔찌. 국보 제160호. 1971년 송산리 5호 무덤과 6호 무덤 사이의 배수로를 정비하는 과정에서 우연히 발견된 무령왕릉은 무령왕과 왕비의 무덤이었음을 알리는 묘지석과 함께 모두 108종 2,900여 점이 넘는 유물이 출토되었다. 그
무복 / 舞服 [생활/의생활]
춤을 출 때 입는 옷. 춤은 사람의 감정이나 의지를 몸의 움직임으로 표현하는 행위이다. 그러므로 춤을 출 때 입는 의복도 춤이 내포하고 있는 감정이나 의미에 어울리게 구성해야 한다. 이와 같이, 춤은 사람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기 때문에 각 시대나 지역에 따라 그 표현
무송 / 茂松 [지리/인문지리]
전라북도 고창 지역의 옛 지명. 본래 백제의 송미지현(松彌知縣)이었는데, 757년(경덕왕 16) 무송으로 고쳐 무령군(武靈郡)의 영현(領縣)으로 하였다. 1018년(현종 9) 장사감무(長沙監務)를 두면서 무송을 겸임하게 하였다. 1417년(태종 17) 두 지역을 합쳐
무시이 / 茂尸伊 [지리/인문지리]
전라남도 영광 지역의 옛 지명. 본래 백제 때의 무시이현이었는데, 당나라가 백제를 멸하였을 때 사반주(沙泮州) 영현의 모지현(牟支縣)으로 바꾸었다. 통일신라 때 경덕왕이 무주(武州) 관할의 무령군(武靈郡)으로 고치고 장사(長沙)ㆍ무송(茂松)ㆍ고창(高敞)의 세 현을 속현
무애가 / 無碍歌 [문학/고전시가]
신라시대 원효(元曉)가 지었다고 하는 불교가요. 제작연대는 미상이고, 가사도 현전하지 않는다. 다만, 노래의 유래가 『삼국유사』 권4 원효불기조(元曉不羈條)와 『파한집』 권하에 기록되어 있다. 고려 때 이 노래는 「무애무(無㝵舞)」로 바뀌어져서 궁중의 정재(呈才) 춤의
무장 / 茂長 [지리/인문지리]
전라북도 고창 지역의 옛 지명. 무장은 무송(茂松)과 장사(長沙)가 합쳐진 지명이다. 무송현(지금의 성송면)은 백제 때 송미지현(松彌知縣)이었는데, 757년(경덕왕 16) 무송으로 고쳤다. 장사현(지금의 상하면)은 백제 때 상로현(上老縣)이었는데, 663년 당나라의 지
문군곡 / 問群曲 [문학/고전시가]
신라 경문왕 때 화랑 요원랑(邀元郎)·예흔랑(譽昕郎)·숙종랑(叔宗郎) 등이 지은 노래. 금란굴(金蘭窟)에서 놀면서 군주가 나라를 다스리는 길을 노래한 3편의 노래 중의 하나로 나머지 두편은 「대도곡(大道曲)」·「현금포곡(玄琴抱曲)」이다. 가사는 전하지 않으며, 다만 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