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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 : 인물
박규양 / 朴奎陽 [종교·철학/유학]
1840년(헌종 6)∼1903년(광무 7). 조선 말기 학자. 조부는 박재기, 부친은 박재망, 모친은 권석원의 딸이다. 조부 박재기로부터 가학을 전수받았다. 조부의 장원에서 후학들을 가르치는 일에 힘썼다. 김세락 등과 교유하였다. 문집으로《금남문집》4권이 전한다. 1
박규진 / 朴煃鎭 [종교·철학/유학]
1855년(철종 6)∼미상. 조선 말기 학자. 부친은 박시한이다. 어려서부터 부친으로부터 학문을 익혔으며, 장성하여서는 척암 김도화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뛰어난 문장으로 인해 당대 이름난 문장가 김진룡‧박기진‧박시주 등과 함께 이름을 나란히 하였다. 문집으로『창고집』
박금슬 / 朴琴瑟 [예술·체육/무용]
해방 이후 『춤동작』을 저술한 무용가.한국무용가. 1922년 경기도 여주에서 출생했다. 일본여자전문학교 상과를 졸업하고, 1939~1943년에 이시이 바쿠[石井漠] 무용연구소에서 현대무용을 배웠다. 귀국 후 부모님의 의견에 따라 수원의 법릉사에 기거하던 곽서순 스님과
박기령 / 朴箕寧 [종교·철학/유학]
1779(정조 3) -1858(철종 8). 저자는 1816년(순조 16 ) 진사시에 합격하여 성균관에 입학해서는 오직 책만 보며 족적이 인근의 관기교밖을 벗어나지 않아 아름다운이 행실이 알려졌다. 장석우, 응와 이원조, 운산 이휘재 등과 도의로써 교유하였다. 저자는 시
박기상 / 朴岐爽 [역사/근대사]
1888-1934.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 이명(異名)은 박사국(朴士國)이다. 본관은 밀양(密陽)이고, 전라북도 익산군(益山郡) 출신이다. 아버지는 박병돈(朴秉敦)이다. 1919년 3월 19일 이정(李挺)·이병석(李秉釋)·정영모(鄭永模) 등과 함께 전라북도 익산시(益
박기수 / 朴綺壽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774∼1845). 할아버지는 좌원, 아버지는 종신, 어머니는 최수일 딸이다. 1806년(순조 6)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대사헌, 성균관대사성, 홍문관부제학 등을 역임하였다. 광주부유수가 되었으나 경기암행어사의 탄핵을 받아 파직당하였다.
박길진 / 朴吉眞 [종교·철학/원불교]
현대의 원불교인·교육자(1915∼1986). 일본 도요대학 철학과를 졸업, 1966년 동국대학교에서 명예문학박사학위, 1972년 대만문화학원에서 명예철학박사학위, 1981년 일본 불교대학에서 명예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 1942년부터 원불교에 봉직하기 시작하여 교단발전
박난영 / 朴蘭英 [종교·철학/유학]
?∼1636(인조 14). 조선 후기의 무신. 선조 때 면천군수·중군 등을 거쳐, 1619년(광해군 11) 강홍립을 따라 후금 정벌에 나갔다가 포로가 되었다. 1627년(인조 5) 정묘호란 때 후금군의 길잡이로 함께 들어왔다가 석방된 뒤, 회답관·선위사·선유사·추신사·
박대관 / 朴大觀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의병장(1756년(영조 32)~미상). 평안도 철산에 거주하던 진사로서, 홍경래가 반란을 일으키자 의병을 일으켜 반란군 진압에 일조하고자 하였다. 관군과 연합하여 반란군을 진압하였을 뿐만 아니라, 군량미를 공급하여 난을 진압하는 데 많은 공을 세웠다.
박대완 / 朴大完 [종교·철학/원불교]
1885∼1959. 원불교의 교무. 전라남도 승주 출신. 13세에 일본으로 건너가 경도에서 소학교와 중학교를 졸업하였다. 귀국 후 인천통감부 직원·농장지배인 등으로 생활하다가 32세 때부터 만주·중국·러시아로 전전하며 항일운동을 전개하였다. 1927년 소태산을 만나 전
박도욱 / 朴道郁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관료(1681∼?). 박성서의 아들이다. 1702년(숙종 28) 식년시에서 진사에 합격했다. 이후 1728년(영조 4)에 무신별시에서 병과에 급제하였다. 관직은 군수에 올랐다.
박동길 / 朴東吉 [과학/과학기술]
1897∼1983. 지질학자. 충청남도 연기 출생. 아버지는 박용순(朴容淳)이다. 초등학교를 마치고 일본으로 건너가 고학으로 중·고등학교 과정을 거쳐 도호쿠제국대학[東北帝國大學] 이학부 지질광물학과를 1930년에 졸업하였다. 귀국 후 경성고등공업학교와 경성광산전문학교에
박두세 / 朴斗世 [종교·철학/유학]
1650(효종 1)∼1733(영조 9). 조선 후기의 문신·학자. 할아버지는 이건, 아버지는 율이다. 1682년(숙종 8) 증광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홍문관직이 제수되었으며, 1686년 의금부도사로 권대운을 압송할 때 편리를 보아주었다 하여 파직되었다. 그 뒤 진주
박만규 / 朴萬奎 [과학기술/식물]
1906년∼1977년. 식물분류학자‧과학교육자. 전라남도 구례에서 출생하였다. 1925년 광주사범학교를 나와 순천국민학교 교사를 하다가 중학교 및 사범학교의 식물교사 검정시험에 합격하여 광복 때까지 경성중학교에서 생물교사를 하였다. 광복 후 군정청 문교부 편수관을 거쳐
박문수 / 朴文秀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691∼1756). 1723년(경종 3)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해 예문관검열로 뽑혔다. 이듬 해 세자시강원설서·병조정랑에 올랐다가 1724년 노론이 집권할 때 삭직됐다. 이후 여러 관직을 두루 역임했으며 1730년 충청도 암행어사로 나가 기민에 힘
박문욱 / 朴文郁 [문학/고전시가]
조선 후기의 가인(歌人)·시조작가. 서리(書吏)출신이다. 『해동가요』에 수록된 고금창가제씨(古今唱歌諸氏) 56명 가운데 한 사람이다. 김수장이 경정산가단(敬亭山歌壇)에서 활동하던 사람들 중, 가장 뜻이 통하던 지기(知己)의 하나라고 밝힌 바 있다. 『청구가요 靑丘歌謠』
박문일 / 朴文一 [종교·철학]
1822년(순조 22)∼1894년(고종 31). 조선 후기의 학자. 도정의 아들, 어머니는 김태려의 딸이다. 이항로의 문인, 1866년(고종 3) 사복시주부·평안도도사에 임명되었으나 모두 취임하지 않았으며, 1882년 사헌부지평·사헌부집의 등의 직이 내려졌으나 모두
박민 / 朴敏 [종교·철학/유학]
1566(명종 21)∼1630(인조 8). 조선 중기의 학자. 정구의 문인이다.『대학』과『심경』을 배울 때 정구는 그의 기국이 충후함을 인정하여 제자들에게 그를 스승으로 삼을 것을 말하고는 하였다. 그 뒤 장현광을 만나 역리를 의논할 때 장현광은 그의 높은 학문에 감탄
박민웅 / 朴敏雄 [역사/조선시대사]
1674(현종 15)∼1732(영조 8). 조선 후기의 무신. 할아버지는 부사 원진, 청주에서 살았다. 도량과 재간이 뛰어나고 활쏘기와 말타기에 능하여 소년 때부터 이름이 났다. 뒤에 장신 장붕익과 이봉상이 각각 국사로서 조정에 천거하였다. 충청병마우후겸창의사, 상주영
박민효 / 朴敏孝 [종교·철학/유학]
1672년(현종 13)∼1747년(영조 23). 조선 후기 학자. 부친 박용서와 모친 홍이사 딸 남양홍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권신경 등의 동학들과 더불어 권해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벼슬은 숭덕전참봉에 그쳤으나 후진교육과 학문에 힘써 이재·권상일 등 당대의 학자들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