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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 : 인물
강용흘 / 姜鏞訖 [문학/현대문학]
재미동포 소설가. 함경남도 홍원 출생. 함흥영생중학교(永生中學校)를 졸업하고, 3·1운동 후 중국·일본을 거쳐 미국으로 건너가 보스턴대학에서 의학을, 하버드대학에서 영미문학을 전공하고, 이어 『대영백과사전(大英百科事典)』의 편집위원을 지냈다. 대표작으로 일제의 한국 강
강우 / 姜虞 [종교·철학/대종교]
1862-1932년. 민족항일기의 대종교 지도자. 어려서부터 한학 공부, 1895년부터 9년간 함경북도 성진·길주·경원 등 세 곳의 감리를 역임하였다. 1909년 대종교가 조직되자 입교하였다. 1921년에 남도본사를 부설하고 도사교위리로서 3년간 시무하였다. 1914
강우규 / 姜宇奎 [역사/근대사]
항일기의 독립운동가(1855-1920). 자는 찬구(燦九). 호는 일우(日愚). 1911년 북간도 망명, 1917년 길림에 인재교육을 위한 동광학교설립, 1919년 부임하는 조선총독 사이토 마코토를 향해 폭탄을 던졌다가 실패하고 체포되어 순국하였다. 1962년 건국훈
강우성 / 康遇聖 [언어/언어/문자]
1581년(선조 14)∼? 조선 중기의 역관. 본관은 진주(晉州). 아버지는 주교수(籌敎授)였던 유경(有慶)이다. 자세한 생애는 밝혀져 있지 않으나, 단편적인 기록이 남아 있다. 그는 일본의 풍속을 잘 알고 있었으며 언어에도 능통하여, 1609년(광해군 1)에는 역과(
강운 / 姜橒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772∼1834). 중길의 증손, 할아버지는 일신, 아버지는 첨지중추부사 색○이며, 어머니는 홍빈의 딸이다. 1807년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 정자·전적·지평·이조정랑 등을 역임하였다.《근사록집해》와《주서차의》수십 권을 남겼고, 칠서에 대한 훈고
강운학 / 康雲鶴 [역사/근대사]
1882-1964. 일제 강점기 의병·독립운동가. 본적은 경상북도 봉화군(奉化郡)이다. 동생은 강준학(康俊鶴)이다. 1907년(융희 1) 일제에 의해 고종 황제가 퇴위를 당하고 강압적으로 군대가 해산되자, 해산된 군인들이 의병에 가담하면서 전국적으로 의병활동이 진행되
강원상 / 姜元相 [역사/근대사]
생몰년 미상. 조선 순종 때에 활동한 독립운동가. 1907년 나인영(羅寅永)·오기호(吳基鎬)와 함께 을사오적(乙巳五賊)의 암살을 계획했다. 을사오적은 박제순(朴齊純)·이지용(李址鎔)·이근택(李根澤)·이완용(李完用)·권중현(權重顯)이다. 3월에 권중현을 저격하려다 체포
강원신 / 康元信 [역사/근대사]
1887-1977년.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적은 평안남도 평양(平壤)이다. 남편은 후일 대한인국민회(大韓人國民會) 회장을 지낸 강영승(康永昇)으로, 1904년에 결혼하였다. 1905년(광무 9) 가족들과 함께 하와이로 이민하였다. 이곳 사탕농장에서 일하며 남편의
강원영 / 姜元永 [과학기술/의약학]
생몰년 미상. 대한제국시대의 의관. 1899년 7월 대한의학교에 입학하여 1902년 7월에 졸업하고, 1904년 11월에 의학교 교관으로 있으면서 유행병 예방 임시위원으로 활동하였다. 그뒤 1907년 육군 3등 군의관에 임명되었다.
강원호 / 姜元浩 [역사/근대사]
1883-미상. 일제 강점기 의병·독립운동가. 본관은 진주(晉州)이고, 본적은 평안북도 강계군(江界郡)이다. 1907년(융희 1) 일제에 의해 고종 황제가 퇴위를 당하고 강압적으로 군대가 해산되자, 해산된 군인들이 의병에 가담하면서 전국적으로 의병활동이 진행되었다.
강위빙 / 姜渭聘 [종교·철학/유학]
1569(선조 2)∼1637(인조 15). 조선 중기의 문신. 1603년 성균관에 입학했다가 학행으로 천거되어 희릉참봉·종묘서봉사·순안현령을 지냈다.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봉림대군·인평대군 등을 배종, 호위하였다. 이듬해 강화성이 함락되자 적에게 포로가 되어
강윤 / 姜潤 [종교·철학/유학]
1711(숙종 37) - 1782(정조 6). 조선후기의 문신 1747년(영조 23) 식년 문과 을과급제 후 승문원별검·예조좌랑·지평·장령 등에 제수되었으나 병든 노모를 모시기 위해 모두 사퇴하였다. 모친 사후에도 관직이 성품에 맞지 않는다며 모든 벼슬을 사양하고
강윤국 / 康潤國 [역사/근대사]
1926-2009.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적은 서울이다. 1942년 10월 일본으로 건너가서 군수공장 강관주식회사(鋼管株式會社)에 입사하여 노동자 생활을 하였다. 1943년 5월 조선인 노동자들이 부당한 대우를 받자, 조선인 노동자들을 규합하여 농성시위를 감행하
강응철 / 康應哲 [종교·철학/유학]
1562(명종 17)∼1635(인조 13). 조선 중기의 의병장·학자.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향병을 모집하여 경상도 상주를 지켰다. 그뒤 정기룡이 이끄는 의병과 뜻을 같이하여, 여러 곳에서 왜적들과 싸워 이를 무찔렀다. 벼슬은 찰방에 이르렀으나,
강응환 / 姜膺煥 [문학/고전시가]
1735년(영조 11)∼1795년(정조 19).조선 후기의 무신. 강희맹(姜希孟)의 9세손으로 전라도 무송[茂松 : 지금의 고창(高敞)]에서 태어났다. 경과정시(慶科庭試)에 합격하여, 부장(部長)·사헌부감찰·칠원현감(漆原縣監)·초계군수(草溪郡守)·대구영장(大丘營將)·고
강인수 / 姜人壽 [역사/근대사]
1900-1992. 독립운동가. 이명은 팔수(八壽)·양검(楊儉). 경상남도 밀양 출신. 김원봉(金元鳳)이 조직한 의열단(義烈團)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1924년 10월 중국군 간부 양성학교인 황푸군관학교(黃埔軍官學校) 제4기 보병학교를 졸업하였다. 그뒤 중국군 장교로
강인수 / 姜寅秀 [역사/근대사]
1869-1932년. 독립운동가. 호는 백서(白棲). 경상북도 안동 출신. 한학자 영숙(永淑)의 아들이다. 1894년 강원도관찰부의 주사로 등용되어서 근무하다가 1899년에 사직하였다. 1905년 을사조약이 강제 체결되자 상경하여 동지들을 규합, 동우회(同友會)를 결
강일순 / 姜一淳 [종교·철학/신종교]
강일순(1871-1909)은 증산교의 교조이며 신앙의 대상이다. 자는 사옥(士玉). 호는 증산(甑山)이다. 동학교도였으나 무장봉기에 반대하며 유·불·선의 기본사상을 토대로 인간 세상을 구원할 새로운 종교 창시에 힘쓰며 모악산에서 수도하던 중 깨달음이 있어 증산교를 창
강일용 / 姜日鎔 [역사/근대사]
미상-1930.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관은 진주(晉州)이다.1925년 북만주 영안현(寧安縣)에서 효과적인 항일투쟁을 위해 통합 조직된 신민부(新民府)의 간부로 활동하였다. 많은 일본 관직자들을 저합자촌(樗合子村)에서 죽였다. 이 일로 인해 1930년 길림성(吉林
강재천 / 姜在天 [역사/근대사]
항일기의 독립운동가(?-?). 호는 송석(松石). 1907년 한국군이 강제로 해산되자, 의병을 일으켜 일본군과 싸웠으나 전라남도 장성에서 패전한 후 산중에 은거하였다. 만주로 망명한 후에 대종교에 입교하여 참교·지교를 역임하였으며, 북로군정서에 가입하여 항일무장투쟁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