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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원시사 / 西園詩社 [문학/한문학]
조선 말기 지석관(池錫觀)·김희령(金羲齡)이 중심이 된 문인들의 모임. 원래 서원시사·서사(西社)는 송석원시사의 별칭이었으나 그 뒤 김희령의 일섭원이 서원이라 불리게 되자 이것을 명칭으로 채택하게 된 것으로서 송석원시사의 맥을 잇는다는 의도가 다분히 내포되어 있다. 참
서원연고 / 瑞原聯稿 [문학/고전시가]
조선 후기에 김려(金礪)와 그 선대의 시문을 모아 엮은 책. 3권 2책(乾, 坤). 이 책은 1738년(영조 14) 김려가 처음으로 엮었으며, 1914년 김려의 7대 방손인 김기우(金基禹)가 그 내용을 증보하여 지금의 모습으로 간행하였다. 서문은 이병수(李炳壽)가 썼고
서원전 / 書院田 [경제·산업/경제]
조선시대 서원의 경영·유지에 필요한 경비를 조달하기 위해 설정된 토지. 서원전은 보통 유림에서 거둔 기부나 피제사자의 후손이 낸 갹금(醵金)으로 설정되는 것이 상례지만, 사액서원과 같은 저명한 큰 서원에 대해서는 선유를 존숭하고 교화를 장려하는 뜻에서 국가나 국왕이
서원촌 / 書院村 [사회/촌락]
조선시대 서원의 재정적·인적 기반이 되던 마을. 서원촌의 주민은 서원에서 청소와 심부름, 수직(守直), 제수(祭需) 마련, 유생공궤(儒生供饋) 등 원노(院奴)가 하는 잡역을 담당하였다. 법전상으로는 사액서원을 제외하면 서원촌 주민의 면역규정은 없지만, 서원은 향교의 예
서유견문 / 西遊見聞 [역사/근대사]
유길준이 1889년 탈고하여, 1895년 출판한 근대국정개혁서. 서구의 ‘근대’모습을 보고 우리의 근대를 어떻게 건설할 것인가를 정치 경제 법률 교육 문화 등 각 부문의 구체적인 내용과 그 방법론을 체계적으로 제시한 ‘근대화 방략서’이며, 조선의 개국연호를 쓰고 있다.
서유구 / 徐有榘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학자·문신(1764∼1845). 1790년(정조 14) 증광문과에 급제하여 후에 이조판서·대제학 등을 역임했다. 흉년을 극복하기 위해 고구마를 실제보급하기도 하였고, 자신의 농학을 집대성하여 만년에 《임원경제지》를 저술하였다.
서유기 / 西遊記 [문학/고전산문]
명나라 오승은(吳承恩)이 지은 『서유기(西遊記)』의 번역본. 명나라 소설 『서유기』(100회)를 번역한 책이다. 오승은(1500∼1582)은 당의 『대당서역기(大唐西域記)』, 송의 『대당삼장취경시화(大唐三藏取經詩話)』 등의 고사와 민간에 전해 오던 각종 설화, 전설들을
서유방 / 徐有防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741∼1798). 영조 때 과거 급제하여, 정조 때 승지·대사성·대사간·대사헌 등의 요직을 여러 차례 역임하였으며, 이후에도 규장각직제학·개성유수·이조참판·경기도관찰사·한성부판윤, 사역원 및 장악원의 제조, 형조·이조·병조·공조의 판서, 강원도관
서유본 / 徐有本 [문학/한문학]
1762년(영조 38)∼1822년(순조 22).조선 후기의 문인. 서호수(徐浩修)의 장남이다. 서철수(徐澈修)에게 양자 간 서유구(徐有榘)와 친형제간이며, 『규합총서(閨閤叢書)』의 저자로 잘 알려진 빙허각이씨(憑虛閣李氏)의 남편이다. 동생인 서유구의 「백씨좌소산인묘지
서유영 / 徐有英 [문학/고전산문]
1801(순조 1)∼1874(?)(고종 11(?)).조선 후기의 문인. 달성위(達城尉)서경주(徐景霌)의 6대손으로서, 아버지 서격수(徐格修)와 어머니 안씨(安氏)의 2남 1녀 중 차남으로 태어나, 숙부 서옥수(徐沃修)의 양자로 들어갔다. 1868년(고종 5) 이후는 유
서유일기 / 西遊日記 [언론·출판]
저자 미상. 필사본. 불분권 1책. 1792년(정조 16)의 필사로 추정되는 저자 친필본이다. 본서의 표제는 <서유일기>로 되어 있지만 일반적인 일기 형태의 날짜와 상황이 모두 빠지고 감흥의 결과인 시만을 기록하였다. 일종의 유람시집인 셈이다.
서윤 / 庶尹 [정치·법제/법제·행정]
조선시대 한성부·평양부의 종4품 관직. 정원은 1인이다. 1469년(예종 1)에 한성부의 관제를 개혁하여 종래의 정4품관이던 소윤을 없애고 종4품관으로 서윤을 두었다. 판윤·좌윤·우윤 등을 도왔는데, 1887년(고종 24) 관제의 개혁으로 폐지되었다. 세조 12년(1
서응순 / 徐應淳 [종교·철학/유학]
1824년(순조 24)∼1880년(고종 17). 조선 말기의 문신·학자. 달성부원군 종제의 후손이다. 유신환의 문하에서 심기택·민태호·김윤식 등과 함께 수학하였다. 1870년(고종 7) 음보로 선공감감역·군자감봉사·영춘현감, 간성군수로 부임하여 임지에서 죽었다. 성긴
서인충 / 徐仁忠 [종교·철학/유학]
1554-1610. 조선후기 유학자. 부친은 희, 모친은 전덕원의 딸이다. 1554년 9월 13일에 태어나 1591년 무과에 급제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켰다. 이후 다대진첨사, 부산진첨사를 역임하였다. 1610년 6월 10일 졸하였다. 박세온의 딸과 혼
서일 / 徐一 [종교·철학/대종교]
항일기의 독립운동가·종교가(1881-1921). 호는 백포(白圃). 1911년 중광단을 조직하였고, 1919년 서로군정서를 개편하여 총재에 취임하였다. 1920년에는 청산리전투를 이끌었다. 대종교와 깊은 연관을 맺고 있으며, 저서로는 <삼일신고강의>, <회삼경> 등이
서장관 / 書狀官 [정치·법제/법제·행정]
조선시대 부경사행 3사신 가운데 한 사행직. 중국에 보내던 부경사행의 일행인 정사·부사·기록관 등의 3사신 중 기록관으로 외교문서에 관한 직무를 분담하였다. 서장관은 사행중 매일매일의 사건을 기록하고 돌아온 뒤에는 왕에게 견문한 바를 보고할 의무를 가지고 있었다.
서재만 / 徐在萬 [역사/근대사]
1904년(광무 8) 9월 23일∼1984년 4월 19일. 일제 강점기의 독립운동가. 본적은 전라남도 완도군(莞島郡) 청산면(靑山面)이다. 1923년 완도군 청산면(靑山面) 모도리(茅島里) 대모도(大茅島)에서 마을의 개량서당(改良書堂)을 후원하기 위한 배달청년회(倍達靑
서재승 / 徐在承 [종교·철학/유학]
1876년(고종 13)∼1915년. 한말의 의병.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의분을 참지 못하여 탁지부 주사의 직을 사임하고 의병활동에 투신하여 군량모집 등에 활약하였다. 그뒤 1909년 스스로 의병을 일으켜 수년간에 걸쳐 항일전을 계속하다가 전세가 불리하여 영주
서재야회록 / 書齋夜會錄 [문학/한문학]
조선 중기에 신광한(申光漢)이 지은 가전체소설. 「서재야회록」은 벼루·먹·종이·붓의 문방사우를 의인화한 작품이다. 신광한의 한문단편소설집 『기재기이(企齋記異)』에 실려 있다. 주인공인 선비가 서당 밖에서 시를 읊다가 방안에 치의현관(䅔衣玄冠)·반의탈모(班衣脫帽)·백의윤
서재필 / 徐載弼 [역사/근대사]
현대의 정치가·독립운동가(1864-1951). 호는 송재(松齋). 1882년 3월 별시 문과 병과에 합격하여 교서관의 부정자에 임명되었다. 1884년 12월 김옥균·홍영식 등과 갑신정변을 일으켜 18세의 젊은 나이로 병조참판 겸 정령관이 되었으나 정변의 실패로 일본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