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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북방언 / 西北方言 [언어/언어/문자]
평안도 지역에서 사용되는 방언. 서북방언은 대방언권의 하나로, 북한의 표준어 즉 ‘문화어’의 기반이 된 것으로 알려져 왔다. 하지만 전통적인 서북방언의 특징을 고려할 때 현재의 문화어가 서북방언 또는 그것의 하위 방언인 평양말에 기반을 두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방언
서북영림창 / 西北營林廠 [역사/근대사]
대한제국 시기에 압록강과 두만강 연안의 삼림에 관한 사무를 관장하던 관청. 1907년 4월 서북영림창관제의 반포와 함께 설치되어 대한제국의 멸망 때까지 존속하였다. 영림창의 최고책임자는 칙임 또는 주임에 해당하는 창장이며, 그 밑에 사무관, 기사, 주사, 기수 등을 두
서북철도국 / 西北鐵道局 [역사/근대사]
서울과 신의주 사이에 경의선을 부설하기 위하여 1900년 궁내부에 설치한 관서. 대한철도회사를 건립한 박기종이 1899년 7월 6일 경의선 부설권을 취득하게 되었는데, 대한제국은 1900년 6월 궁내부에 서북철도국을 설치하였다. 이후 1902년 서울과 개성 구간의 기공
서북학회 / 西北學會 [역사/근대사]
1908년 서북, 관서, 해서지방 출신자들이 서울에서 조직되었던 애국계몽단체. 국권회복운동이 더욱 어렵게 되자, 이러한 제약을 보다 적극적으로 극복하기 위해 서우학회와 한북흥학회를 통합하여 1908년 1월 조직하였다. 회원은 2,300명 정도에 이른 것으로 추산된다.
서사 / 書史 [정치·법제/법제·행정]
고려시대 서리의 차위직. 고려 태조 때부터 있던 실무·행정 담당의 말단 이속이었으며, 국자감에 2인, 예빈성에 8인, 위위시와 사재시에 각 6인, 대복시에 4인, 대부시에 12인이 배속되었다.한편, 서사는 입사직으로 998년(목종 1) 개정전시과에 제17과로 해당되어
서사무가 [문학/구비문학]
소설이나 설화와 같이 줄거리를 갖춘 서사 양식에 속하는 무가. 서사무가의 기원은 고대 무속 제전에까지 소급된다. 영고(迎鼓)·동맹(東盟)·무천(儛天) 등과 같은 고대 제천의식이나 단군제(檀君祭)·동명제(東明祭)·혁거세제(赫居世祭)와 같은 국조제(國祖祭)는 고대의 무속
서사민요 [문학/구비문학]
이야기를 갖춘 민요. 서사민요는 서사시이지만 반드시 삼인칭 시점에서 전개되지 않고, 노래 부르는 사람이 주인공의 심정을 직접 토로하기도 한다. 서정적인 수법이 적지 않게 사용되어, 어느 한 부분만 들으면 서정민요와 비슷하다. 서사민요는 남녀 구별이 없이 부를 수 있지만
서사원 / 徐思遠 [종교·철학/유학]
1550(명종 5)∼1615(광해군 7). 조선 중기의 학자. 필의 증손, 할아버지는 응기, 아버지는 흡, 큰아버지 형에게 입양되었다. 정구의 문인이다. 주자학 및 이황의 문집을 깊이 연구하고 중년 이후는 후진을 가르쳤다. 선조 때 학행으로 감역·찰방을 지내고, 159
서산대사설화 [문학/구비문학]
조선 중기의 고승(高僧)·승군장(僧軍將)이었던 서산대사 휴정(休靜)에 관한 설화. 휴정만이 등장하는 이야기도 있지만, 흔히 사명당(泗溟堂)유정(惟政)과 함께 지혜 또는 도술을 겨루는 이야기로 전승된다. 이 밖에도 서산대사에 얽힌 민간설화들이 상당히 많은데, 이들 자료에
서산대사전 / 西山大師傳 [문학/고전산문]
작자·연대 미상의 고전소설. 1권 1책. 국문활자본. 서산대사 휴정(休靜)의 설화를 소설화한 작품이다. 이 작품의 주인공 휴정은 조선 선조시의 승군장(僧軍將)으로,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격문(檄文)주 01)을 돌려 승병 1,500명을 규합하여 이들의 총수(總帥)가 되었
서산박첨지놀이 / 瑞山朴僉知놀이 [생활/민속]
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 탑곡리의 고양동에서 전승되어 오는 인형극놀이 인형극은 인형 및 배경이 되는 소품 등을 제작하여 이를 조작하는 극의 형태로, 여러 마당과 거리로 구성된다. 이 놀이는 남사당패의 꼭두각시놀음, 발에 탈을 끼고 연행하는 발탈, 그림자 인형극인 만석중과
서산안면내파수도 / 瑞山安眠內波水島 [지리/인문지리]
충청남도 태안군 태안읍 승언리에 있는 자연 방파제. 충청남도 기념물 제64호. 길이 약 300m, 면적 164.600㎥이다. 이 섬은 조선 시대 중국의 상선이나 어선들이 우리 나라를 왕래할 때 폭풍을 피하거나 식수를 공급하기 위하여 정박했던 곳이다. 해안에는 조약돌이
서산일락가 / 西山日落歌 [문학/고전시가]
1567년(명종 22)김응정(金應鼎)이 지은 시조. 1773년(영조 49)에 간행된 『해암문집(懈菴文集)』에 실려 전한다. 이 시조가 조식의 작품으로 기록되어 전승된 경우도 위의 두 가지 사례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만약, 『해암문집』과 「김해암가곡집서」가 발굴되지
서산향교 / 瑞山鄕校 [교육/교육]
충청남도 서산시 동문동에 있는 향교. 1406년(태종 6)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창건되었다. 1648년(인조 26) 서문(西門) 밖에서 현재의 위치로 이건하였으며, 1970년대에 여러 차례 보수를 하였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서상달 / 徐上達 [예술·체육/무용]
해방 이후 중요무형문화재 제12호 「진주검무」의 전승자로 지정된 예능보유자. 경상남도 진주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살았다. 소학교를 졸업하고 장죽심(張竹心)에게 「진주검무」를 배웠다. 1967년 1월 중요무형문화재 제12호인 「진주검무」의 예능보유자로 지정되었다. 후계자로
서상우 / 徐相雨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831∼1903). 종사관으로서 미국·영국과의 수호통상조약체결 때 참여하였다. 갑신정변 직후 전권대신으로 일본과 개화파 인사의 송환을 협상하였으나 실패하였다. 한·러밀약설의 진상 규명을 위해 텐진을 방문했고, 영국군의 거문도 점령 철수를 요청하였다
서상우증시문서 / 徐相雨贈諡文書 [정치·법제]
1910년(융희 4) 8월 고 판서 서상우(徐相雨)에게 '문헌(文憲)'이라 시호를 내리면서 발급한 칙첩. 문서에는 '근학호문왈문 행선가기왈헌'이라 적어 문헌이란 시호를 내린 연유를 적었다. 1910년(융희 4) 7월 26일 순종은 28명에게 시호를 내렸다.
서상천 / 徐相天 [예술·체육/체육]
일제강점기 역도연맹회장, 대한씨름협회 회장 등을 역임한 체육인. 본관은 달성, 대구광역시 달성군에서 대지주의 아들로 태어났다. 1919년휘문의숙(徽文義塾)을 거쳐 1923년 일본 체조학교를 졸업하였다. 1926년 귀국하여 휘문고등 보통학교에서 교편을 잡으면서 일본 체조
서석집 / 瑞石集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학자 김만기의 시문집. 18권 9책. 활자본. 1701년(숙종 27) 손자 춘택에 의해 수집, 간행되었다. 권1∼4에 시 569수, 권5에 서·기·제후·제문·송·잠 28편, 권6에 전·비답·교서·별유·상량문·애책문·고제문·치제문·책문·서계 33편, 권
서선선 / 西鮮線 [지리/인문지리]
평안남도 강동군승호리역과 성천군신성천역 사이에 부설된 철도. 길이 68.4㎞. 이 철도는 서선중앙철도회사에 의해 건설된 사설철도로 본사를 경성(京城)에 두었으며, 자본금은 1만 5,000원이다. 승호리역에서 석름역까지의 29.6㎞는 1939년 7월에 개통되었으며, 석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