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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 : 지리 > 인문지리
  • 박천군 / 博川郡 [지리/인문지리]

    평안북도 서남단에 위치한 군. 동쪽은 영변군, 서쪽은 정주군, 남쪽은 청천강을 사이에 두고 평안남도 안주군, 북쪽은 태천군과 접하고 있다. 동경 125°18′∼125°42′, 북위 39°34°∼39°48′에 위치하며, 면적 528.9㎢, 인구 8만 9460명(1944년

  • 박천군읍지 / 博川郡邑誌 [지리/인문지리]

    평안북도 박천군의 인문지리· 행정 등을 수록하여 1899년에 편찬한 지방지. 1책. 채색지도가 첨부된 사본. 규장각 도서에 있다. 이밖에도 편찬연대 미상의 필사본 『박천읍지』 1책이 규장각 도서에 있고, 『관서읍지』에 수록된 것도 있다. 내용 구성은 면리(面里)·도로

  • 반걸양 / 半乞壤 [지리/인문지리]

    황해도 연백 지역의 옛 지명. 『삼국사기』의 기록에는 “백제 근초고왕 때 고구려의 고국원왕 사유(斯由)가 반걸양(半乞壤)에 이르러 싸우려 하거늘, 왕이 태자를 보내어 이를 막게 하였다. 태자가 적을 크게 쳐부수어 수곡성(水谷城)까지 쫓아버렸다.”라고 되어 있다. 『대동

  • 반나부리 / 半奈夫里 [지리/인문지리]

    전라남도 나주 지역의 옛 지명. 당나라가 백제를 멸망시킨 뒤 대방주(帶方州)의 영현이 되었다가 신라 경덕왕 때 반남군(潘南郡)으로 바뀌었다. 반나부리의 뜻은 ‘대읍(大邑)’이다. 이 지역은 나주평야의 일부로 영산강 동쪽에 자리잡고 있어 예로부터 물산이 풍부하여 큰 취락

  • 반남 / 潘南 [지리/인문지리]

    전라남도 나주 지역의 옛 지명. 본래 백제의 반나부리현(半奈夫里縣)이었는데, 당나라가 백제를 멸한 뒤 반나로 고쳐 대방주(帶方州)의 영현으로 하였다. 757년(경덕왕 16) 반남군으로 고쳐 야로(野老)와 곤미(昆湄)의 두 현을 함께 다스리도록 하였다. 고려 초에 현으로

  • 반성 / 班城 [지리/인문지리]

    경상남도 진주 지역의 옛 지명. 삼국시대의 명칭은 확실하지 않으나 고려시대에 와서 반성현이라 불렀으며, 그 뒤 현종 때진주목의 속현이 되었다. 조선 말기까지 일반성면과 이반성면으로 존속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개편 때 일반성면은 진주군 외진성면을 합치고 이반성면은 진주

  • 방산 / 方山 [지리/인문지리]

    강원도 양구 지역의 옛 지명. 본래 고구려의 삼현현(三峴縣, 또는 密波兮)이었는데, 신라 경덕왕 때 삼령현(三嶺縣)으로 고쳐 양록군(楊麓郡)의 관할하에 두었다. 940년(태조 23) 방산현으로 고쳤고, 현종 때 춘주(春州)에 귀속시켰다가 뒤에 회양(淮陽)에 이속시켰다.

  • 방어진 / 方魚津 [지리/인문지리]

    울산광역시 동구 방어동에 있었던 나루. 조선시대에는 울산도호부(蔚山都護府) 관할의 동면(東面)에 속해 있었다. 세종 때 삼포(三浦)가 개항되면서 이곳 염포(鹽浦)에 왜인(倭人)이 드나들게 되었다. 삼포왜란 후 염포의 왜인들이 물러났고,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왜인들이

  • 배천 / 白川 [지리/인문지리]

    황해도 연백 지역의 옛 지명. 본래 고구려의 도랍현(刀臘縣, 또는 雉嶽城)이었는데, 신라 경덕왕 때구택(雊澤)으로 고쳐 해고군(海皐郡)의 영현으로 하였으며, 고려 초에 백주(白州)로 고쳤다. 1018년(현종 9)평주(平州)에 예속시켰고, 그 뒤 두 번의 명칭 변경을 하

  • 배천군읍지 / 白川郡邑誌 [지리/인문지리]

    황해도 배천군(광복 당시 연백군)의 연혁· 인문지리· 행정 등을 수록하여 1899년에 편찬한 지방지. 1책. 채색지도가 첨부된 사본. 표지에는 ‘光武三年五月日黃海道白川郡地圖及邑誌(광무3년5월일황해도배천군지도급읍지)’로 되어 있다. 규장각 도서에 있다. 이밖에도 순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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