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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 : 근대 > 일제강점기
김상헌 / 金祥憲 [역사/근대사]
1893-1945. 독립운동가. 일명 배달옹(裵達翁), 또는 달(達). 경상남도 양산 출신. 1918년 중앙학교(中央學校)의 신상완(申尙玩)·김법린(金法麟)·정병헌(鄭秉憲) 등과 유심회(唯心會)를 조직, 민족사상고취와 불교연구를 하다가, 1918년 11월경 한용운(韓
김상후 / 金商厚 [역사/근대사]
1870-미상. 일제강점기 무신·항일운동가. 자는 용여(用汝)이고, 호는 금호(錦湖)이다. 본관은 김녕(金寧)이다. 절충장군(折衝將軍) 첨지중추부사 호군오위장(僉知中樞府事護軍五衛將)과 무주적성산참봉(茂朱赤城山參奉) 등을 역임하였다. 1919년 4월 1일 광양군(光陽郡
김상훈 / 金相訓 [역사/근대사]
1874-1925.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적은 충청남도 천안군(天安郡) 수신면(修身面)이다. 1919년 3월 독립만세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된다는 소식이 전파되었다. 이 소식을 접한 홍일선(洪鎰善)이 독립만세운동을 계획하고, 4월 1일 충청남도 천안 갈전면(葛田面
김석 / 金晳 [역사/근대사]
1911-1983년. 독립운동가. 전라남도 함평 출신. 전라남도 영광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23년 작은아버지인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위원 김철(金澈)을 따라 상해로 건너가서, 1928년 상해에 있는 영국계 중학교 퍼블릭스쿨을 졸업하고, 1930년 상해법정대학 정치과에
김석창 / 金錫昌 [종교·철학/개신교]
항일기의 독립운동가·목사(1876-1950). 1920년 미국의원단에게 진정서를 제출하고 선천경찰서를 폭발하려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체포되었다. 이후 평안북도 예수교장로회 총회장·선천군 인민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하였고, 유엔군 후퇴이후 공산당에 의해 총살당하
김석황 / 金錫璜 [역사/근대사]
1894-1950년. 독립운동가. 본관은 김해. 일명 윤황(潤璜). 황해도 봉산 출생. 1919년 2월 일본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 재학 때 2·8독립운동에 막후 주요인물로 회의참석 연락, 동지규합, 문서작성을 지원해주었다. 이러한 이유로 체포되었다가 훈방되자 곧 상해
김선량 / 金善亮 [역사/근대사]
1899-미상. 독립운동가. 황해도 안악 출신. 3·1운동 때 선천의 신성학교(信聖學校)학생으로 이승훈(李昇薰)의 지시를 받은 교사 홍성익(洪盛益)·김지웅(金志雄)·양준명(梁濬明) 등의 지도 아래 기숙사에서 독립선언서를 등사하고 격문과 태극기를 제작하여 3월 1일 선천
김선이 / 金仙伊 [역사/근대사]
1880-미상. 일제 강점기 의병·독립운동가. 본적은 경상북도 영주(榮州)이다. 1907년 일본에 의해 군대가 강제 해산되자 군인들이 대거 의병진에 가담함으로써 전국적인 무력투쟁이 시작되었다. 이때 1909년(융희 3) 5월 김상태(金相泰) 의진(義陣)에 가담하였다.
김성 / 金星 [역사/근대사]
1890-1946.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적은 함경남도 원산시(元山市)이다. 만주로 이주하여 생활하였다. 1919년 독립만세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자 만주 일대에서 항일 무장투쟁을 하기 위해 계화(桂和)·서일(徐一)·양현(梁玄)·채오(蔡五) 등과 함께 정의단(正
김성률 / 金聲律 [역사/근대사]
1920-1943. 일제 강점기 광복군. 본적은 황해도 연백(延白)이다. 1941년 한국청년전지공작대(韓國靑年戰地工作隊)에 가담하여 활동하였다. 이후 대장 나월환(羅月煥)과 함께 광복군 제5지대에 편입되어 활동하였다. 1942년 중국 중앙전시간부훈련(中央戰時幹部訓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