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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 : 조선 > 조선 후기
정종대왕묘호망단 / 定宗大王廟號望單 [정치·법제]
정종에 대한 묘호를 의정하기 위해 1681년(숙종 7) 9월 18일 빈청에서 올린 묘호 망단. 이 망단은 '정종(定宗)'이라는 한 가지 망만 써서 단망으로 올린 형식이다. 망단의 말미에는 승정원에서 '계(啓)'자 도장을 찍고 '강희 20년(1681) 9월 18일 계'라
정종로 / 鄭宗魯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성리학자(1738∼1816). 이상정의 문하에서 영남학파의 학통을 계승하고, 주리론적인 입장에서 성리학의 연구와 저술에 전념했다. “경학과 문장이 융성하여 영남 제1의 인물.” 이라는 채제공의 평으로 의금부도사에 특진되었고, 사포서별제·강령현감·함창현감에
정종명 / 鄭宗溟 [종교·철학/유학]
1565(명종 20)∼1626(인조 4). 조선 중기의 문신. 위 증손, 할아버지는 유침, 아버지는 철이다. 어머니는 유강정의 딸이다. 형조참의 홍인걸의 사위이다. 이이·성혼의 문인이다. 저작으로 『송강유고』의 부록에 실려 있는『백씨유고』가 있다.
정주승전가 / 定州勝戰歌 [문학/고전시가]
작자·연대 미상의 가사. 두루마리 한글본. 홍경래(洪景來)의 난을 소재로 읊은 전쟁가사이며, 작품 시기도 그때로 추정된다. 전체 122구이며, 4·4조의 정격 양반가사이다. 작품의 출처는 서울 지방이며, 작자는 내용으로 보아 16세 남짓한 한양의 양반집 출신으로 당시에
정주향교 / 定州鄕校 [교육/교육]
평안북도 정주군 정주읍 성내동에 있는 향교. 조선시대 때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配享)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창건되었다. 1621년(광해군 13)에 소실되어 1640년(인조 18) 장의(掌議) 백이원(白彝元)이 유림들과 함께 초가를 세워 공자의
정준 / 鄭儁 [종교·철학/유학]
1573년(선조 6) ~1644년(인조 22) 조선 중기 문신. 정몽주 8세손, 부친은 정응선이다. 희릉참봉과 건원릉참봉을 거쳐서 1623년(인조 1) 6월에 사재감직장을 지냈고, 1625년(인조 3) 7월에 예빈시주부를 지냈으며, 이후 돈령부판관‧종친부전부를 지냈다
정중기 / 鄭重器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학자·문신(1685∼1757). 1727년(영조 3) 생원으로 증광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1731년 승정원주서가 되고, 이어 결성현감으로 나가 풍속을 바로잡고 《여씨향약》에 의거하여 향속의 순화에 노력하였다. 사간원정언을 거쳐 1753년 사헌부지평이 되
정중대 / 鄭重岱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691∼1762). 1717년 봉상시주부 겸 부정자에 임명되어 숙종에게 동서고금의 역사를 강설, 그 실력을 크게 인정받아 정자에 승진되고, 이어 박사가 되었다. 1718년 금교도찰방으로 나가 자신의 녹봉을 털어 주민들을 진휼하는 등 선정을 베풀었다
정중록 / 鄭重祿 [종교·철학/유학]
1678년(숙종 4)∼1732년(영조 8). 조선 후기 유생·효자. 증조는 정호례, 조부는 정시상이다. 부친 정석명과 모친 서중후의 딸사이에서 태어났다. 부인은 박기봉의 딸이다. 정규양에게서 학문을 배웠는데, 경서와《사기》공부를 즐겨하였고, 《사자소학》과《가례》를
정지락 / 鄭之洛 [종교·철학/유학]
1773년(영조 49)∼1857년(철종 8). 조선 후기 유학자. 부친은 정내양, 생부는 정내성이다. 어려서부터 총명하였고, 8세에 글을 지어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 18세의 나이로 조부를 따라 과거에도 응시하였으나 낙방하였다. 문집으로 2권의《침천재유고》가 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