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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 : 조선 > 조선 후기
정재집 / 定齋集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 박태보의 시문집. 본집 9권, 별집 5권, 후집 6권, 합 20권 7책. 목판본. 본집 권1에 장귀편 등 27수의 오언고시, 한식조화자문 등 12수의 칠언고시, 유수락산요 등 28수의 오언율시, 칠언율시 등 96수, 권2에 오언절구 23수, 칠언절구
정재화 / 鄭在和 [종교·철학/유학]
1754년(영조 30)~1790년(정조 14). 조선 후기 부마. 정철의 후손, 증조는 정구하, 조부는 정유, 부친은 정인환이다. 부인은 청선군주이다. 1766년(영조 42년) 청선군주와 결혼하면서 흥은부위의 칭호를 받았으나, 사헌부지평 홍상성이 정재화가 사람들을 풀
정절서원 / 靖節書院 [교육/교육]
대전광역시 동구 가양동에 있었던 서원. 1684년(숙종 10)에 지방유림의 공의로 송유(宋愉)·박팽년(朴彭年)·송갑조(宋甲祚)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1701년(숙종 27)에 김경여(金慶餘)와 송상민(宋尙敏), 1822년(순조 22)에 송
정제 / 鄭梯 [종교·철학/유학]
1689년(숙종 15)∼1765년(영조 41). 조선 후기 유학자. 부친은 정사제이다. 정만양과 정규양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향시에는 여러 차례 합격하였으나 대과에서 뜻을 이루지 못하자 오직 학문 정진에 전념하였다. 학문적으로 교유한 인물로 정중기·정간 등이 있다.
정제두 / 鄭齊斗 [종교·철학]
1649-1736. 조선 후기의 양명학자. 여러 관직에 임명되었으나 모두 거절하고 학문활동에 전념하였다. 당시 이단시하던 양명학을 고집하여 조선 양명학의 태두가 되었다. 그는 심즉리설에 입각하여 주자학의 성즉리설을 비판했다. 저서로는 <하곡집>이 있다.
정조 / 正祖 [정치·법제/법제·행정]
조선 제22대 왕(1752∼1800). 재위 1777∼1800년. 1759년 사도세자의 아들로서 세손에 책봉되고, 1762년 요절한 효장세자의 후사가 되어 왕통을 이었다. 1776년 즉위하자 곧 규장각을 설치하여 이로써 인재를 양성하고 문화정치를 추진하는 가운데 정권
정조실록 / 正祖實錄 [역사/조선시대사]
조선 제22대 왕 정조의 재위 기간의 역사를 기록한 책. 1776년 3월부터 1800년 6월까지 24년 4개월간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56권 56책. 정식 이름은 ‘정종대왕실록’이다. 그러나 1899년 정종의 묘호를 정조로 추존했기 때문에 그 뒤부터 추존한 묘호에 따
정존겸 / 鄭存謙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722∼1794). 1750년(영조 26) 생원시에 합격, 다음해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부제학을 역임하였다. 1776년(정조 즉위) 시파로서 우의정에 발탁되고 이듬해 좌의정이 되었다. 1781년《영조실록》과 《경종수정실록》 편찬의 실록청총재관을
정존중 / 鄭存中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721∼1798). 1754년(영조 30) 사마시에 합격하고, 이듬해 음사로서 참봉이 되었다가 누천하여 1780년(정조 4) 광주목사로서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중용되었다. 1791년 한성부판윤에 이어 개성부유수를 거쳐 이듬해 대사헌이 되었
정종대왕가상시호망단 / 定宗大王加上諡號望單 [정치·법제]
조선의 제2대 국왕인 정종에게 가상할 시호를 의정하기 위해 1681년(숙종 7) 9월 18일 빈청에서 올린 시호 망단. 이 망단에서 의정한 가상 시호는 '의문장무(懿文莊武)'네 글자이며, 이를 종전의 시호인 '온인순효(溫仁順孝)'에 덧얹어서 단망의 형태로 올리고 숙종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