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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 : 고려 > 고려 후기
용장서원 / 龍章書院 [교육/교육]
전라북도 남원시 주생면 상동리에 있는 서원. 고려 때에 지방유림의 공의로 양능양(梁能讓)의 덕행과 충절을 추모하기 위해 일원사(一源祠)를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그 뒤 현재의 위치로 이건하면서 용장서원으로 개칭하였고 1302년(충렬왕 28)에 양주운(梁朱雲)을 추가
용진 / 龍津 [지리/인문지리]
함경남도 문천지역의 옛 지명. 고려시대에 용진(龍津)이라 이름을 바꾸고 진(鎭)을 두었다. 1006년(목종 9)에 성을 쌓았는데 주위가 3,004척, 높이가 5척이고 삼면이 바다에 둘려 있으며 성내에 우물이 하나 있었다. 축성 후인 공민왕 때 문주(文州, 지금의 文川)
우대후 / 牛大吼 [문학/고전시가]
고려 공민왕 때 불려진 참요(讖謠). 『고려사』 권39 공민왕 10년(1362)조와 『문헌비고』에 그 지어진 경위와 한역가(漢譯歌)가 전한다. 공민왕 10년인 신축년 겨울에 홍건적(紅巾賊) 20여만명이 압록강을 건너 쳐들어와 서울을 함락하고 주둔한지 수개월이 되었다.
우창 / 右倉 [경제·산업/경제]
고려시대에 국용의 재화를 관리하던 관청. 문종 때 서울에 좌창과 우창이 있어서 좌창은 관리들의 녹봉을 담당하고 우창은 공상(供上)을 담당하였으며, 관원으로는 국왕 측근의 근시를 별감으로 삼아 일을 보게 하였다. 1308년(충선왕 복위) 재정개혁의 일환으로 우창을 풍저
운곡시사 / 耘谷詩史 [문학/한문학]
고려후기부터 조선전기까지 생존한 문인 원천석의 시 「대민음」·「회삼귀일 會三歸一」 등을 수록한 시집. 5권. 왕조교체기의 역사를 시로 다루었으므로 ‘시사(詩史)’라고 하였고, ‘운곡행록(耘谷行錄)’이라고도 한다. 작자는 고려 말에도 벼슬을 하지 않았고, 조선왕조가 들어
운산향교 / 雲山鄕校 [교육/교육]
평안북도 운산군 운산면 읍내동에 있는 향교. 고려 말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창건되었다. 당시의 경내건물로는 대성전·명륜당·동무(東廡)·서무(西廡)·동재(東齋)·서재(西齋)·교관실(敎官室)·제기고(祭器庫)·동서협문(東西夾門)
웅주 / 雄州 [지리/인문지리]
함경북도 길주 지역의 옛 지명. 1108년(예종 3) 윤관(尹瓘)이 여진을 몰아낸 다음 화관령(火串嶺) 아래에 성을 쌓고 영해군웅주방어사(寧海郡雄州防禦使)를 설치하였다. 그 뒤 1109년에 성을 철거하고 그 지역을 여진에게 돌려주었는데, 공민왕 때에 다시 여진을 쫓고
원주향교 / 原州鄕校 [교육/교육]
강원도 원주시 명륜동에 있는 향교. 고려 인종 때에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창건되었다. 1422년(세종 4) 목사 신호(申浩)가 중건하였으며, 임진왜란 때 전소되었다가 1603년(선조 36) 이택(李澤)이 대성전을 중건하였다
원천석 / 元天錫 [종교·철학/유학]
1330(충숙왕 17)∼? 고려 말 조선 초의 은사. 두문동 72현의 한 사람이다. 할아버지는 열, 아버지는 윤적이다. 원주원씨의 중시조이다. 어릴 때부터 재명이 있었으며, 문장이 여유있고 학문이 해박해 진사가 되었다. 그러나 고려 말에 정치가 문란함을 보고 개탄하면서
위주 / 渭州 [지리/인문지리]
평안북도 영변 지역의 옛 지명. 고려 때 위주(渭州)로 고쳐 방어사를 두었고, 1050년(문종 4) 토성을 쌓았다. 그 뒤 무주(撫州)에 합쳤고, 1261년(원종 2) 무주의 치소가 된 적이 있다. 조선시대에는 이 지역이 영변의 서북쪽 40리 지점에 있다 하였으므로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