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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 : 조선 > 조선 후기
정순왕후 / 貞純王后 [정치·법제/법제·행정]
조선 영조의 계비(1745∼1805). 성은 김(金). 소생은 없으며, 당쟁에서 세자를 반대하는 벽파를 옹호하고, 세자를 동정하는 시파를 탄압했다. 순조가 어린 나이로 즉위하자 수렴청정을 하면서, 천주교에 대한 금압령을 내려, 이가환(李家煥) 등 천주교 선구자들이 옥
정순왕후 왕비책봉 교명 / 貞純王后王妃冊封敎命 [정치·법제/법제·행정]
정순왕후 김씨(金氏)를 왕비로 책봉하는 문서. 본문의 마지막 부분에 날인되어 있는 어보는 [조선왕보(朝鮮王寶)]이며, 1744년(영조 20)부터 기존의 [시명지보(施命之寶)]를 대체하여 사용하기도 하였다.
정순왕후상시옥책문 / 貞純王后上諡玉冊文 [역사/조선시대사]
1805년(순조 5) 5월 26일에 정순왕후에게 '소숙정헌(昭肅靖憲)'이라는 존호를 추상하고 '정순(貞純)'이라는 시호를 올림을 알리기 위해 만든 옥책문의 탁본과 금보의 인영. 정순왕후가 생시에 영조의 치적을 내조하고, 정조가 무사히 왕위를 계승할 수 있게 하였으며,
정순왕후원릉비 / 貞純王后元陵碑 [역사/조선시대사]
영조의 계비 정순왕후(貞純王后)의 묘비를 종이에 떠낸 뒤 족자 형태로 장황하여 만든 탑본. 전면과 음기 각각 4점씩 있다. 정순왕후는 경기도 구리시 인창동의 동구릉 내에 있는 영조의 원릉(元陵)에 부장(袝葬)되었다. 비문에는 정순왕후의 출생과 왕비 책봉, 수렴첨정,
정순왕후추상시호등망단 / 定順王后追上諡號等望單 [정치·법제]
조선의 제6대 국왕 단종의 정비로서 단종과 함께 폐위된 정순왕후 여산송씨에 대해 왕후의 지위를 회복하면서 시호, 휘호, 능호를 추상하기 위해 1698년(숙종 24) 11월 빈청에서 올린 망단. 의정한 시호는 '정순(定順)', 휘호는 '단량제경(端良齊敬)', 능호는 '사
정순왕후추상존호옥책문 / 貞純王后追上尊號玉冊文 [역사/조선시대사]
1890년(고종 27) 1월 4일에 정순왕후에게 '정현(正顯)'이라는 존호를 추상함을 알리기 위해 만든 옥책문의 탁본과 금보의 인영. 당시에 영조의 묘호를 종에서 조로 추륭(追隆)하는 예식을 행하였는데, 이를 기념하기 위해 영조와 정성왕후, 정순왕후에게 존호를 추상하
정승상회방연가 / 鄭丞相回榜宴歌 [문학/고전시가]
조선 철종 때 해평윤씨(海平尹氏)가 지은 것으로 전해지는 가사. 철종 때 원로 정치인이었던 경산(經山)정원용(鄭元容)의 둘째 며느리의 친가 언니인 해평윤씨가 정원용의 회방연을 보고 지은 것으로 알려진 송축가사이다. 작품 제목의 정승상은 영의정을 지낸 정원용을 지칭하는
정시 / 鄭蓍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무신(1768∼1811). 훈련원주부·도총부경력 등을 거쳐 가산군수로 재임 중, 홍경래의 난이 일어나자 봉기군에 항거하다가 죽었다. 병조판서 겸 지의금부사·오위도총부도총관에 추증됐다. 정주성 남쪽에서 싸우다 죽은 6인과 함께 7의사라 칭해졌다.
정시간 / 鄭時衎 [종교·철학/유학]
1635-1690. 조선후기 유학자. 1669년 생원시에 급제하였으나 과거를 포기하고 구계에 은거하여 학문에 전념하였다.
정시교 / 鄭時僑 [종교·철학/유학]
1635∼1665. 조선 후기 유학자. 병자호란이 일어나 인조가 남한산성으로 피난하자 호종하였다. 병자호란이 끝난 후에 호종의 공이 인정되어 관직이 내려졌으나 받지 않고 고향에서 처사의 삶을 살았다. 조정에서 직장에 제수하였으나 이 역시 받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