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 : 조선 총 10,287건의 주제어가 있습니다.
시대 : 조선
송간 / 宋侃 [종교·철학/유학]
생몰년 미상. 조선 전기의 충신. 할아버지는 인충이다. 세종·문종·단종의 3조를 섬겨 벼슬이 가선대부에 이르렀다. 1455년 왕명으로 남방을 순시하고 돌아오려는데, 단종이 영월로 쫓겨갔다는 소식을 듣고 즉시 영월에 가서 복명하고, 고향 여산으로 돌아가 두문불출하다가 단
송갑조 / 宋甲祚 [역사/조선시대사]
1574년(선조 7)∼1628년(인조 6). 조선 중기의 문신. 자는 원유(元裕), 호는 수옹(睡翁), 본관은 은진(恩津), 시호는 경헌(景獻)이다. 최립(崔岦)의 문인으로 1617년(광해군 9) 생원시와 진사시에 모두 합격하였으나 서궁(西宮)에 유폐되어 있는 인목대비
송강가사 / 松江歌辭 [문학/고전시가]
조선 중기의 문신·문인인 정철의 가사와 시조를 수록한 시가집. 필사본으로 전하는 것도 있으나 온전하지 못하다. 목판본으로 황주본·의성본·관북본·성주본·관서본의 5종류가 알려져 있다. 이 중 의성본과 관북본은 현재 전하지 않는다.
송강서원 / 松江書院 [교육/교육]
전라남도 담양군 창평면 해곡리에 있었던 서원. 1694년(숙종 20)에 지방유림의 공의로 정철(鄭澈)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1706년에 ‘송강(松江)’이라고 사액되어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 오던 중, 대원군의 서원철폐령
송강정철묘소 / 松江鄭澈墓所 [문학/고전시가]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봉죽리에 있는 조선 중기의 정치가이며 시인인 정철(鄭澈)의 무덤. 충청북도 기념물 제106호. 본래 경기도 고양시 원당면 신원리에 있었으나 조선 현종 6년(1665)에 지금의 자리로 이장하였는데 우암(尤庵)송시열(宋時烈)이 잡아 준 명당이라고 한
송강집 / 松江集 [문학/한문학]
조선 중기의 문신·문학가 정철(鄭澈)의 시문집. 11권 7책. 목판본. 『송강집』의 원집 권1은 시 234수, 권2는 잡저 6편, 소차(疏箚) 5편, 화곡유고(華谷遺稿)로 되어 있다. 그리고 1632년 봄에 장유(張維)가 쓴 후서(後序)와 이듬해에 김상헌(金尙憲)이
송경록 / 松京錄 [문학/한문학]
조선 전기에 남효온(南孝溫)이 지은 기행록. 개성 및 인근 지역의 궁궐지·사찰 및 기타 유적을 유람하며, 그 경관과 그 곳에서의 소회를 기록한 글이다. 1485년(성종 16) 9월 7일부터 18일까지 11일간의 일을 기록하였다. 『추강집(秋江集)』 권6 잡저에 수록되어
송경원 / 宋慶元 [종교·철학/유학]
1419(세종 1)∼1510(중종 5). 조선 중기의 문신. 아버지는 치선, 어머니는 연일정씨이다. 김종직·남효온 등과 교유하였다. 1455년 음보로 전라도사에 임명되었다.1457년(세조 3) 단종이 영월에 유폐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재종형 간과 함께 영월로 달려가 문밖
송계만록 / 淞溪漫錄 [언론·출판]
저자 임규직(1811-1853). 필사본. 1권 1책. <송계만록> 권2에는 총 15편의 한문 산문이 수록되어 있다. 내제에는 "금천집"이라 하였고 "정해년삼월, 서우심교"라고 하여 이 책의 간사년을 확인할 수 있다. 책 구성은 증서 1편, 서문 1편, 서간문 7편,
송계집 / 松溪集 [문학/한문학]
조선 중기의 문인 권응인(權應仁)의 시문집. 5권 2책. 목판본. 아버지는 희맹(希孟)이며, 이황(李滉)의 문인이다. 한리학관(漢吏學官)을 지냈고, 1562년(명종 17) 일본 사신이 왔을 때 선위사(宣慰使) 일행의 한 사람이 되어 그들을 맞았다. 시문에 능하여 당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