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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색결과
김한계 / 金漢啓 [종교·철학/유학]
생몰년미상. 조선 전기의 문신. 거두 증손, 할아버지는 유, 아버지는 현감 영명, 어머니는 이지유의 딸이다. 1438년(세종 20) 생원으로 식년문과에 정과로 급제했다. 좌정언, 직제학, 성균관직강, 승문원교리, 기주관, 승정원부승지 등을 역임하였다. 1455년 좌익원
김한동 / 金翰東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740∼1811). 영남지방 재해민의 기근을 들어 환곡의 환수를 연기하여줄 것을 진언하였다. 대사간에 기용되었으며, 이어서 승지를 지냈다. 천주교를 믿어, 각종 제례에 참석하지 않아 지평 정언인의 탄핵을 받고 명천에 유배되었다.
김한록 / 金漢祿 [종교·철학/유학]
생몰년 미상. 조선 후기의 문신. 현감 운경의 아들, 영조의 장인인 한구의 종제, 우의정 관주의 아버지이다. 한원진의 문인이다. 관직은 세자익위사세마에 그쳤으나, 종질인 구주와 함께 김상로·홍계희·정휘량·신만 등 벽파 대신들을 조종하여 1762년(영조 38) 사도세자
김한섭 / 金漢燮 [종교·철학/유학]
생몰년 미상. 조선 말기의 학자. 아버지는 노현, 어머니는 해남윤씨 상열의 딸이다. 이항로의 문인으로, 이항로가 죽은 뒤에 다시 임헌회와 기정진의 문인이 되었다. 1883년엔 그의 스승 임헌회의 문집인『고산문집』간행을 위하여 오랫동안 고창에 있었다. 저서로는『오남문집』
김한철 / 金漢喆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701∼1759). 사간원정언으로 재임할 때 붕당 타파를 상소하였다. 대사간에 발탁되었으며, 도승지·이조참판·경기관찰사·함경도관찰사 등 내외요직을 두루 역임하였다. 양전의 실시를 주장하였고, 나중에 우참찬에 이르렀다.
김함의 묘 출토의복 / 金涵─墓出土衣服 [생활/의생활]
1985년 전라남도 영암군 학산면 학계리 김함(金涵: 1568∼1598)의 묘(墓)에서 출토된 복식 및 부장품 17점. 김함의 묘에서 발굴된 3점의 포(袍)류는 모두 장옷으로 면주(綿紬) 누비장옷 1점, 화문단 누비장옷 1점, 무명 솜장옷 1점이 있다. 뒷길이는 116
김항 / 金恒 [종교·철학/유학]
1826년(순조 26)∼1898년(고종 35). 조선 말기《정역》의 저자. 20세 때 민씨와 결혼하여 가정을 꾸몄으나 살림에는 뜻이 없어 독서만 하였으며, 영가를 계속 불렀다. 일찍이 이운규 밑에서 최제우·김광화와 함께 공부하였는데, 특히 이운규의 영향을 많이 받은
김항중 / 金恒重 [종교·철학/유학]
1653-1717. 조선후기 유학자. 부친은 방분, 모친은 이만겸의 녀이다. 1653년 12월 18일 예천 류전에서 태어났다. 1673년 조부와 부친을 연달아 잃고 1681년 모친상을 당하였다. 형제자매를 돌보며 재산을 아끼지 않았다. 1717년 9월 18일 병으로 졸
김해 / 金楷 [종교·철학/유학]
1633(인조 11) - 1716(숙종 42). 아버지 김광현, 어머니 청주한씨이다. 경사에 두루 섭렵하여 약관도 안 되어 이미 주역을 읽어 심오한 이치까지 깨우쳐 <계몽복역>을 저술하였다. <상례비요>도 의심나고 잘못된 곳을 고정하였다. 또한 농암 김창협과 함께 제
김해 보현사 불교전적 / 金海 普賢寺 佛敎典籍 [종교·철학/불교]
조선후기 사찰 간행본으로 경상남도 김해시 대동면 보현사에 소장된 불교경전. 사찰본. 김해 보현사에는 『십지론(十地論)』, 『간집록(刊集錄)』, 『청량국사화엄소초(淸凉國師華嚴疎鈔)』, 『전등(傳燈)』, 『원각경(圓覺經)』, 『법화경(法蓮經)』이 소장되어 있다. 모두 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