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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 : 인물 > 의병·독립운동가
추득천 / 秋得千 [역사/근대사]
1895-1953.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적은 충청남도 연기(燕岐)이다. 1919년 독립만세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자 같은 마을에 사는 박성교(朴聖敎)·이수욱(李秀郁)·추경춘(秋敬春) 등과 함께 독립만세운동을 벌이기로 결의하고, 비밀리에 태극기와 독립선언서를 준
추정수 / 秋丁洙 [역사/근대사]
1883-미상. 일제강점기 항일운동가. 제주도 북제주군(北齊州郡) 추자면(楸子面) 대서리(大西里)에서 태어났다. 어부로 생활을 하던 중 1926년 5월 관제어업조합(官制漁業組合)의 횡포와 착취에 대항한 저항운동이 일어났다. 당시 일본 어부들은 유자망(流刺網) 어업으로
편강렬 / 片康烈 [역사/근대사]
1892∼1928. 항일기의 독립운동가. 호는 애사(愛史). 이강년(李康埏)의 의병부대에 가담하여 1907년 선봉장 겸 소모장이 되어 구국항일운동에 가담하였다. 1908년 ‘서울진공작전’에 참여하였고, 1911년 ‘105인사건’과 1919년 ‘구월산주비단사건’ 등으로
편덕렬 / 片德烈 [역사/근대사]
1897-1976. 독립운동가. 황해도 연백 출신. 1919년 6월 북로군정서(北路軍政署)에 가입, 국경주재 연통(聯通) 책임자로 선임되어 국내와의 연락업무를 담당하였다. 같은해 9월에는 임시의정원 의원으로 선임되었으며, 11월 임시정부 국내실정조사원이 되어 고향인 황
편무경 / 片茂景 [역사/근대사]
1893-1961.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 자는 운기(雲起)이고 호는 덕포(德圃)이다. 본관은 절강(浙江)으로 전라남도 함평군(咸平郡) 나산면(羅山面) 수상리(水上里)에서 태어났다. 다른 이름은 편수채(片受彩)이다. 아버지는 편진성(片振聲)이다. 1909년(융희 3)
표영준 / 表永俊 [역사/근대사]
1896년∼미상. 독립운동가. 일명 최승환(崔昇煥). 평안남도 강동 출신. 1919년 3·1운동 직후 만주로 망명하여 활동하다가 국내에서 항일운동을 전개할 목적으로 귀국하였다. 1920년 임시정부 특파원 김석황(金錫璜)과 평양 기홀병원(紀笏病院: 미국인이 경영하는 병원
하용기 / 河龍基 [역사/근대사]
1891-1964.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 1919년 전라북도 임실군(任實郡) 둔남면(屯南面) 오수리(獒樹里) 장날을 이용하여 이기송(李基松), 오병용(吳秉鎔) 등과 독립만세운동을 주동하였다. 그는 이날 오후 2시 오수리 장터에서 천도교(天道敎)와 기독교도가 중심이
하의철 / 河誼喆 [교육/교육]
1907-미상. 일제강점기 교사·독립운동가. 전라남도 영암군(靈巖郡) 미암면(美岩面)에서 출생하였다. 광주사범학교 재학시절에 학생비밀결사(學生秘密結社)인 성진회에 가입하였고, 민족차별 교육을 일삼았던 일본인 교사를 타학교로 전근시키는 등의 활약을 하였다. 이후 성진회
한규상 / 韓圭相 [역사/근대사]
1896-1971.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다른 이름은 한판도(韓判道)이다. 본적은 경상남도 진주(晉州)이다. 1919년 독립만세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자 강달영(姜達永)·강상호(姜相鎬)·김재화(金在華)·박용근(朴龍根)·박진환(朴進煥)·이강우(李康雨) 등과 함께 독
한규설 / 韓圭卨 [역사/근대사]
1848-1930. 항일기의 무신·애국지사. 자는 순우(舜佑). 호는 강석(江石). 1885년 우포도대장이 되어 갑신정변에 연루되었던 유길준을 연금 형식으로 보호하는 가운데 그의 《서유견문》 집필을 도와 완성할 수 있도록 해 주었다. 1896년 법부대신 겸 고등재판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