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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 : 인물 > 의병·독립운동가
최태환 / 崔太煥 [역사/근대사]
1897-1984.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 호는 영산(瀛山)이다. 본관은 양주(楊州)이고, 전라북도 정읍(井邑) 출신이다. 1926년 6월 10일 순종황제 인산일(因山日)에 종이로 백기(白旗)를 만들어 집집마다 달았다. 그도 이 일에 동참하였으며 이 일로 인하여 일본
최팔용 / 崔八鏞 [역사/근대사]
1891-1922. 2·8독립선언의 조선청년독립단대표 중의 한 사람. 본관은 전주(全州). 호는 당남(塘南). 함경남도 홍원 출신. 1910년 봄에 일본으로 건너갔으나, 몇 달 뒤 일제에 조국이 강점당하자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오성중학교(五星中學校)를 졸업하였다. 다
최학소 / 崔學韶 [역사/근대사]
1916-미상.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사회주의운동가. 본관은 강릉(江陵)이고, 본적은 강원도 울진(蔚珍)이다. 수헌공(睡軒公) 최응현(崔應賢)의 후손으로, 부친 최익한(崔益翰)의 4남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형은 2000년 독립운동 공훈자로 건국훈장 애족장에 추서된
최한두 / 崔漢斗 [역사/근대사]
1879-1928.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적은 강원도 양양(襄陽)이다. 강원도 양양군 손양면(巽陽面) 주리(舟里) 이장(里長)을 지냈다. 1919년 독립만세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한 후 인근 우암리(牛岩里) 이장 김진열(金振烈)과 상왕도리(上
최해 / 崔海 [역사/근대사]
1895-1948. 항일기의 독립운동가. 호는 단사(檀史). 1910년 만주로 망명하여 1915년 신흥무관학교를 졸업했다. 1919년 김좌진 등과 함께 북로군정서를 조직하여 여단장으로 청산리전투 등에 참전했다. 1923년에는 고려혁명군 총사령부관을 지냈다. 광복 후
최해풍 / 崔亥豊 [역사/근대사]
1897-미상.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 자는 한빙(翰馮)이고 호는 암은(岩隱)이다. 본관은 탐진(耽津)으로 전라남도 옥구군(沃溝郡) 서수면(瑞穗面)에서 태어났다. 장경공(莊景公) 최사전(崔思全)의 후손이다. 1919년 3·1운동에 적극 참여하여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최호준 / 崔皓俊 [역사/근대사]
1898-1945. 독립운동가. 황해도 재령 출신. 재령의 보명학교(普明學校)를 졸업하였다. 재령군일대의 궁장토(宮庄土)가 일제의 동양척식주식회사(東洋拓殖株式會社)로 넘어가 농민들이 소작농으로 전락하고 동양척식주식회사의 소작료착취가 강화되자, 나석주(羅錫疇)·김덕영(
최호천 / 崔浩天 [역사/근대사]
1899-1960.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적은 경기도 시흥(始興)이다. 배재고등보통학교(培材高等普通學校: 현 배재고등학교)에서 수학하였다. 1919년 재학 중 전국적으로 독립만세운동이 확산되자 김인한(金仁漢)·유지호(柳志浩)·윤의병(尹宜炳)·이종원(李宗遠)·최정
최홍준 / 崔弘俊 [역사/근대사]
1920-미상.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호는 소민(素民)이다. 출신지는 경상북도 영일(迎日)이다. 1940년 3월 신병으로 보성중학교를 휴학하고, 같은 해 9월 일본 동경으로 건너가 연수학관 영문과에서 수학하던 중 일본인들의 민족차별의식에 통탄하면서 경제력 향상·자
추규영 / 秋圭映 [역사/근대사]
1901-1977.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관은 경상남도 부산(釜山)이다. 경상남도 부산 동래구(東萊區) 복천동(福泉洞) 동래고등보통학교(東萊高等普通學校: 현 동래고등학교)에서 수학하였다. 1919년 재학 중 독립만세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자 동학생 고영건(高永建