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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색결과
김영태 / 金榮泰 [예술·체육/무용]
해방 이후 『유태인이 사는 마을의 겨울』·『초개수첩』·『결혼식과 장례식』 등을 저술한 시인.화가·연극평론가·무용평론가. 서울 필운동에서 태어나 홍익대학교 미대를 졸업했다. 1959년 『사상계』에 시 「시련의 사과나무」, 「설경」, 「꽃씨를 받아둔다」가 추천되어 등단했다
김영한 / 金榮漢 [정치·법제/정치]
1857년(철종 8) 6월 14일∼1927년 8월 19일. 일제 강점기 관료. 조선 말기 의금부도사와 탁지부주사로 관직생활을 시작하여 대한제국기에 법부참서관·중추원의관·탁지부 인쇄국장 등을 지냈다. 1921년부터 1927년까지 조선총독부의 중추원참의를 지냈다. 1924
김영행 / 金令行 [종교·철학/유학]
1673년(현종 14)∼1755년(영조 31). 조선 후기의 문신. 아버지는 관찰사 김시걸. 김창흡의 문인이다. 1725년 영조가 즉위하자 풀려나 우사어로 다시 기용되고, 이어서 임천군수를 거쳐 첨지중추부사를 역임하였다. 저서로는 시문을 모은《필운유고》가 전한다.
김예직 / 金禮直 [종교·철학/유학]
1565∼1623. 조선 중기의 무신. 아버지는 첨정 희철, 광해군의 어머니인 공빈김씨의 동생이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평범한 선비로서 왕을 의주까지 호종하였다. 다음 해 무과에 급제, 1604년평안도 용천군수를 거쳐 1610년(광해군 2) 첨지중추부사
김오남시조집 / 金午男時調集 [문학/현대문학]
김오남(金午男)의 시조집. 작자는 1930년 12월 『조선일보』에 「무제음사수(無題吟四首)」를 처음으로 발표한데 이어, 1930년대에 『조선문단』·『신가정』·『조선문학』·『중앙』·『신인문학』·『시원』·『여성』과 1945년 『여성문화』에 많은 양의 시조를 실었다. 이들
김옥균 / 金玉均 [정치·법제/정치]
조선 후기의 정치가·개화운동가(1851∼1894). 갑신정변을 주도하였다. 갑신정변에 투영된 김옥균의 사상 속에는 문벌의 폐지, 인민평등 등 근대사상을 기초로 하여 낡은 왕정사 그 자체에 어떤 궁극적 해답을 주려는 혁명적 의도가 들어 있었다. 저서로는《기화근사》·《
김옥균선생유허 / 金玉均先生遺墟 [역사/근대사]
충청남도 공주시 정안면 광정리에 있는 김옥균의 생가지. 충청남도 기념물 제13호. 조선 말기의 정치가. 김옥균의 생가를 비롯하여 8, 9호의 민가가 작은 촌락을 이루고 있었는데, 1900년대 초에 화재로 폐동(廢洞)되었다고 한다. 근년에 현대식으로 화강석대에 오석(烏石
김옥균암살사건 / 金玉均暗殺事件 [역사/근대사]
1894년 3월 28일 김옥균이 상해에서 홍종우에 의해 저격되어 피살된 사건. 갑신정변의 실패로 일본에 망명한 김옥균, 박영효 등을 대역 죄인으로 규정. 동경에서 김옥균은 이일직의 계략에 빠져 홍종우와 함께 상해로 건너갔다가 미국 조계(租界) 안의 일본 여관 동화양행(
김옥주 / 金玉珠 [예술·체육/무용]
해방 이후 중요무형문화재 제12호 「진주검무」의 전승자로 지정된 예능보유자. 경상남도 진주에서 태어나 진주시 동래동에서 살았다. 소학교 졸업후 김자진(金子眞)으로부터 검무를 배워 23년간 무용계에 종사하였으며, 1967년 1월「진주검무」 예능보유자로 인정되었다. 이우선
김용 호종일기 / 金涌扈從日記 [역사/조선시대사]
조선시대 문신 김용이 임진왜란 때 선조를 호종하면서 보고 들은 사실들을 기록한 일지. 공무일기. 보물 제484호. 3책. 필사본. 이 책은 초서로 쓰여졌으며, 임진왜란 때 의주로 피난하는 선조를 호종하였을 때 직접 체험하고 보고 들은 사실들을 그대로 기록한 일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