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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 / 金瑛 [종교·철학/유학]
1475(성종 6)∼1528(중종 23). 조선 중기의 문신. 할아버지는 계권, 아버지는 장령 영수, 어머니는 김박의 딸이다. 1506년(연산군 12) 별시문과에 정과로 급제, 예문관검열, 수찬, 정언, 교리, 장령, 경상도재상경차관, 김제군수, 강원도관찰사 등을 역임
김영국 / 金永國 [역사/근대사]
미상-1919.03.19.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3·1운동 이후 전국적으로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났을 때, 황해도 문화면(文化面)에서 시작되어 신천군(信川郡)까지 확산된 시위에 참여하였다. 이 운동은 문창규·김명성 등의 기독교인과 천도교인 등 종교인들의 주도로 시작되었
김영근 / 金永根 [문학/한문학]
개항기 및 일제강점기의 유학자.우국지사. 김영근(金永根)은 1865년 전라남도 강진군 신기(新基, 현 칠량면 명주리 신기)에서 태어났다. 조상 대대로 이 곳에 세거하였으며, 부친 김도순(金道淳)은 절충장군(折衝將軍) 행용양위(行龍驤衛)와 금갑도(金甲島) 만호(萬戶)를
김영근제유문 / 金永根提諭文 [정치·법제]
1853년(철종 4) 9월 10일. 철종이 신임 황해감사 김영근(金永根)을 소견하고 제유한 내용을 기록한 문서. 《철종실록》에 의하면, 철종은 새로 황해감사에 임명된 김영근이 1853년(철종 4) 9월 10일에 사폐할 때에, 그를 소견하고 감사의 임무를 잘 수행할 것을
김영길 / 金永吉 [예술·체육/대중음악]
1909-1985년. 일제 강점기 가수·영화배우. 창씨 개명한 이름은 나가타겐지로[永田絃次郞]이다. 출신지는 평안남도 강동군(江東郡)이다. 1928년 평양 제2중학교를 졸업하고, 1933년부터 1935년까지 동경일일신문음악콩쿠르 성악부문에서 3년 연속 입상하였다. 1
김영득 / 金榮得 [역사/근대사]
1908-1940. 일제 강점기 항일운동가. 다른 이름은 김유영(金幽影)이다. 본적은 경상북도 선산(善山)이다. 1927년 9월 서울에서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에 가입하여 1930년 4월경까지 열성 당원으로 활동하면서, 일제의 수탈과 탄압으로 땅을 빼앗기고 유랑하는
김영락 / 金榮洛 [종교·철학/유학]
1831년(순조 31)∼1906년(광무 10). 조선 말기 유학자. 이병불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노인직으로 가선대부동지중추부사를 받았다. 문집으로 손자 김정준이 편집 간행한《구계집》은 이충호가 서문을, 손자 김재준이 발문을 붙였다. 문집은 시가 주류를 이루는데, 그
김영란 / 金永蘭 [역사/근대사]
1896-1922.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출신지는 평안남도 순천이다. 1919년 3·1운동에 참가한 후 공성단(共成團)에 가입하였다. 같은 해 평양·순천 등지에서 독립활동을 위한 자금을 모금하고 비밀결사 숭의단을 창립하였다. 1920년 평남 등지에서 민족독립활동을
김영렬 / 金英烈 [종교·철학/유학]
?∼1404(태종 4). 조선 전기의 무신. 1394년에 전서로 있던 중 그해 경기우도수군첨절제사가 되었다. 1395년에 수군절제사로 발탁되었다. 1400년(정종 2)에 지삼군부사로 있을 때에 제2차 왕자의 난을 평정하고 태종을 왕위에 오르게 한 공으로, 1401년(태
김영목 / 金永穆 [종교·철학/유학]
1835(헌종 1)∼1910. 조선 말기의 문신. 주요 내직에 임명되다가, 1898년에 궁내부특진관에 칙임관 3등으로 올랐으며, 홍릉제조에 임명, 1899년에 전주 오목대비문 서사관, 인조대왕옥책문의 악장문제술관이 되었다. 1900년부터 2년 동안은 산릉도감 및 천릉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