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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산군 / 鳳山郡 [지리/인문지리]
황해도의 중앙에서 약간 북부에 위치한 군. 동쪽으로 서흥군, 남동쪽으로 평산군, 남서쪽으로 재령군, 북쪽으로 황주군과 접해 있으며, 북서쪽으로는 재령강을 건너 안악군과 마주하고 있다. 동경 125°39′∼126°04′, 북위 38°15′∼38°37′에 위치하며, 면적
봉산군여지지 / 鳳山郡輿地誌 [지리/인문지리]
황해도 봉산군의 연혁· 인문지리· 행정 등을 수록하여 편찬한 지방지. 2책. 「봉산지도」가 별책으로 부록된 필사본. 내용 구성은 군계(郡界)·건치연혁(建置沿革)·방리(坊里)·도로(道路)·관함(官啣)·신식(新式)·산천(山川)·포구(浦口)·형승(形勝)·풍속(風俗)·물산(
봉산성 / 烽山城 [지리/인문지리]
경상북도 영주시 부근에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삼국시대 신라의 제10대 내해왕 당시 축조된 성곽. 『삼국사기』나 『대동지지(大東地志)』에는 미상지분(未詳地分)으로 나와 있다. 봉산성을 영주지방의 지명으로 추측하는 것은 『대동여지도』에 영주 동쪽 10리 지점에 봉산이라
봉산양동리고분군 / 鳳山養洞里古墳群 [역사/선사시대사]
황해도 봉산군 초와면 양동리 일대에 있는 낙랑고분군(樂浪古墳群). 양동리고분군 전체 가운데 1917년도에 조사된 양동리 제3·5·9호분 등 일부가 알려져 있다. 양동리 3·5호분은 방대형(方臺形) 분구를 가진 전형적인 전실묘이다. 묘실은 장방형 벽돌을 쌓아서 만든 전실
봉산지탑리유적 / 鳳山智塔里遺蹟 [역사/선사시대사]
황해도 봉산군 문정면 지탑리에 있는 신석기시대에서 초기철기시대에 이르는 움집터와 포함층 유적. 유적은 재령강의 한 지류인 서흥천변(瑞興川邊)에 위치한다. 1957년지탑리에 있는 대방군(帶方郡) 토성 안의 한 지점(Ⅰ지구)과 이곳에서 남동쪽으로 750m 떨어져 있는 또
봉산학자전 / 鳳山學者傳 [문학/한문학]
조선 후기에 박지원(朴趾源)이 지은 한문 단편소설. 본문은 전하지 않고 그 제목만 『연암별집(燕巖別集)』「방경각외전(放璚閣外傳)」에 들어 있다. 그러나 작자 스스로 작품 제작의 경위를 밝힌 자서(自序)가 있고, 또 그 끝에 작자의 아들인 종간(宗侃)의 기록이 들어 있어
봉산향교 / 鳳山鄕校 [교육/교육]
황해도 봉산군(현재의 황해북도 사리원시) 사리원읍 경암리 경암산 기슭에 있는 향교. 조선 초기에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창건되었다. 당시의 경내 건물로는 대성전·명륜당·협실·동무(東廡)·서무(西廡)·신문(神門) 등이 있었으며
봉상대부 / 奉常大夫 [정치·법제/법제·행정]
고려시대 정4품 문관의 품계. 1308년(충렬왕 34)에 충선왕이 복위하여 직제개편을 할 때 정4품계로 설정한 뒤 중산대부(中散大夫)와 번갈아가면서 말기까지 계속되었다.
봉상사 / 奉常司 [역사/근대사]
1895년 제례관리, 악공, 제사, 시의를 관장하기 위하여 설치되었던 관서. 관원으로는 주임관인 장 1인, 판임관인 주사 3인을 두었는데, 1896년에 칙임관인 제조 5인, 주임관인 부제조 10인을 두고, 1897년에는 도제조 1인을 증원하였다. 개성부와 함경남도에 분
봉상시 / 奉常寺 [정치·법제/법제·행정]
조선시대 국가의 제사 및 시호를 의론하여 정하는 일을 관장하기 위해 설치되었던 관서. 여러 번의 직제 개편과 함께 1466년(세조 12) 직제가 크게 개정되었는데, 그것이 ≪경국대전≫에 수록되었다. 당시의 직제는 도제조 1인, 제조 1인, 정(正) 1인, 부정(副正)
봉서 / 封書 [정치·법제/법제·행정]
조선시대 국왕이 종친이나 근신에게 내리는 사서. 또 왕비가 친정에 보내는 사서도 봉서라고 한다. 봉서로서 특히 중요한 것은 암행어사에게 내리는 것인데, 그 봉서의 겉에는 ‘到南某處開拆(도남모처개탁 : 남쪽 모처에 이르러 열어보도록 하라)’이라고 쓰여져 있다. 그리고
봉서서원 / 鳳棲書院 [교육/교육]
전라북도 김제시 백산면 하정리에 있었던 서원. 1784년(정조 8)에 지방유림의 공의로 배극렴(裵克廉)과 강승(姜昇)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 오던 중 1869년(고종 6)에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
봉선 / 鳳扇 [정치·법제]
의장의 하나. 긴 자루가 달린 부채로 가장자리를 쇠로 두르고 홍색비단에 금색으로 여러 가지 문양[용ㆍ봉황ㆍ공작]을 수놓거나 그려 넣었다. 조선 시대에 임금이 거둥하는 노부에 따라가는 것으로 소여 뒤의 월부 다음에 봉선 여섯 개가 좌우에서 따른다.
봉선대부 / 奉善大夫 [정치·법제/법제·행정]
고려시대 종4품 문관의 품계. 1308년(충렬왕 34)에 충선왕이 복위하여 종4품계로 처음 설정한 이래로 조산대부(朝散大夫)와 번갈아가면서 말기까지 계속되었다.
봉선화 / 鳳仙花 [예술·체육/연극]
이해조의 소설로서 무대화된 작품. <매일신보>에 연재되었던 이 작품은 1913년 5월 혁신단에 의해 무대에 올려져 대성황을 이루었다. 고부간의 음모와 시기, 질투로 인한 갈등을 언서고담식으로 그려 남을 해치고자 하면 도리어 나쁜 결과를 당하게 된다는 인과응보의 가정비극
봉선화가 / 鳳仙花歌 [문학/고전시가]
작자·연대 미상의 가사. 형식은 4음 4보격 무한 연속체라는 가사의 율격을 대체로 충실히 지켰으되, 2음보를 추가하여 6음보로 늘어난 행이 몇 군데 보인다. 필사본인 『정일당잡지 貞一堂雜識』에 수록되어 있다. 진술 양식은 일인칭시점의 독백체 서술로서 주관적인 감흥을 서
봉선화설화 / 鳳仙花說話 [문학/구비문학]
봉선화 또는 봉숭아라 불리는 화초의 유래에 관한 설화. 신이담(神異譚) 중 기원담에 속하는 이야기 유형이다. 민간에 전래되는 각 편 중에는 봉선화라는 꽃 이름이 봉선이라는 궁녀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는 것과 봉선이라는 신선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는 것의 두 가지 종류가 있
봉성 / 峰城 [지리/인문지리]
경기도 파주 지역의 옛 지명. 본래 고구려의 술이홀현(述尒忽縣, 또는 述彌忽縣)이었는데, 757년(경덕왕 16 )봉성현으로 고쳐 교하군(交河郡)의 영현으로 하였다. 당시에 교하군은 한주(漢州)에 속해 있었다. 1018년(현종 9) 양주(楊州)에 예속시켰고, 1172년(
봉성문여 / 鳳城文餘 [문학/한문학]
조선 후기에 이옥(李鈺)이 지은 영남지방 견문기(見聞記). 김려(金鑢)가 1810년(순조 10) 이후에 편찬한 『담정총서(藫庭叢書)』 권14에 수록되었다. 이 책은 총 64항목으로 이루어져 있다. 역사·유적·토속·민속놀이·무속·야담·필기·방언·은어 등에 관한 내용이 실
봉성지 / 鳳城誌 [지리/인문지리]
전라도 봉성(현 구례군)의 연혁· 인문지리· 행정 등을 수록하여 편찬한 지방지. 1권. 사본. 장서각 도서에 있다. 이밖에도 『호남읍지』에 실린 것과 편자 미상의 『봉성읍지』 사본 1책, 김최행(金最行) 편저의 『봉성지』 사본 1책이 규장각 도서에 있다. 내용 구성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