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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 : 조선
서필원 / 徐必遠 [종교·철학/유학]
1614(광해군 6)∼1671(현종 12). 조선 중기의 문신. 서익 증손, 할아버지는 서용갑, 아버지는 서운기이다. 어머니는 이택민의 딸이다. 김집과 정홍명에게 수학하였다. 1648년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홍문관부수찬, 사간원헌납, 이조좌랑, 평안도어사, 충
서학 / 西學 [역사/조선시대사]
조선 선조 이후 중국에서 도입된 한역(漢譯) 서양 학술서적과 서양 과학기술문물과 이를 토대로 연구하던 학문. 조선서학이라고도 한다. 이 용어가 처음 사용된 것은 명말·청초의 중국에서 포교활동에 종사하던 예수회(耶蘇會, Society of Jesus) 소속의 카톨릭 선
서한연의 / 西漢演義 [문학/고전산문]
중국 『서한연의』의 번안소설. 1책. 한글필사본. 겉표지에 ‘우미인가 서한연의’라 쓰여 있고 그 우측 상단에 ‘긔미’라는 간기가 있어, 1859년이나 1919년에 필사된 것으로 추정된다. 앞부분에는 가사형식인 「우미인가」·「항우가」·「초한가」·「충효가」 4편이 있다.
서해무릉기 / 西海武陵記 [문학/고전산문]
작자·연대 미상의 고전소설. 1권 1책. 국문필사본. 남자주인공이 왜적에게 빼앗긴 신부를 구해 돌아오는 이야기를 엮은 것으로, 혼사장애담(婚事障碍談)에 속하는 작품이다. 이 작품의 구성은 ‘지하국대적퇴치담(地下國大賊退治談)’과 유사한 형태를 취하고 있다. 「외지동 팔랑
서행록 / 西行錄 [문학/고전시가]
1828년(순조 28)김지수(金芝叟)가 지은 것으로 추정되는 기행가사. 분량은 2율각 1구로 헤아려 2,710구의 장편이다. 율조는 3·4조가 주조이고, 4·4조가 부주조로 분량에 비해 잘 다듬어져 있다. 작자는 여행 동기에 대해 “원유(遠遊)를 생각해서”라고 밝히고
서헌순 / 徐憲淳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801∼1868). 1829년(순조 29) 정시문과에 급제하여, 성균관대사성·공조판서·형조판서·전라도관찰사·예조판서·사헌부대사헌 등을 지냈다. 1850년과 1862년 각각 사은부사와 사은정사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1867년(고종 4) 병으로 사망하
서헌순제유문 / 徐憲淳提諭文 [정치·법제]
1855년(철종 6) 2월과 10월에 철종이 신임 전라감사 서헌순(徐憲淳)과 신임 평안감사 김정집(金鼎集)을 각각 소견하고 제유한 내용을 기록한 문서. 철종이 신임 감사들에게 제유한 주된 내용은 '국왕의 뜻을 잘 체득하여 백성들을 보살피기를 마치 어린아이들을 돌보듯이,
서호별곡 / 西湖別曲 [문학/고전시가]
조선 중기에 허강(許橿)이 지은 가사. 작자의 손자인 허목(許穆)이 편찬한 『선조영언(先祖永言)』과 양사언의 자필첩책(自筆牒冊)에 수록되어 전한다. 「서호가」(家傳本)와 「서호별곡」(楊氏所傳舊本)과는 사장(詞章)에 있어서 앞뒤가 서로 바뀐 것과 첨삭(添削)이 상반되는
서호수 / 徐浩修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실학자(1736∼1799). 할아버지는 종옥, 아버지는 명응이다. 어머니는 이정섭의 딸이다. 큰 아버지 명익에게 입양되었다. 1765년 식년 문과에 장원하여, 홍문관부교리·도승지·대사성·대서헌 등을 지냈다.《동국문헌비고》·《규장총목》·《국조보감》·《
서효수 / 徐孝修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716∼1753). 1744년 춘당대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권지정자·세자시강원설서·사서·지평·정언·부수찬·지제교·경연검토관·춘추관기사관·세자시강원문학·동부승지 등을 역임하였다. 어려서부터 학문연구에 열중하였고, 특히 주자학에 밝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