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형 : 지명 > 고지명 총 601건의 주제어가 있습니다.
유형 : 지명 > 고지명
이산 / 理山 [지리/인문지리]
평안북도 초산 지역의 옛 지명. 본래 여진족이 살던 두목리(豆木里)였는데, 고려 충렬왕 때 처음으로 만호(萬戶)를 설치하였으며, 공민왕 때부터 사람들이 점차 불어나 이곳에 만호ㆍ천호 등을 곳곳에 설치하였다. 1402년(태종 2) 산양호(山羊湖)ㆍ도을한(都乙漢)ㆍ봉화대(
이서국 / 伊西國 [지리/인문지리]
신라 초기에 복속된 주변에 있었던 소국. 지금의 경상북도 청도군 이서면과 화양읍 일대에 있었던 것으로 비정된다. 다른 성읍국가와 마찬가지로 이서국에 대해서도 문헌에는 별로 보이지 않고 있다. 『동국여지승람』 권26 청도군 건치연혁조(建置沿革條)에 의하면, 신라 제3대왕
이성 / 伊城 [지리/인문지리]
전라북도 완주 지역의 옛 지명. 본래 백제의 두이현(豆伊縣, 또는 杜城縣)이었는데, 신라 경덕왕 때두성으로 고쳐 전주의 영현으로 하였다. 940년(태조 23) 이성으로 바꾸었고, 현종 때도 그대로 전주에 속하게 하였다. 이성에는 이동(伊東)·이서(伊西)·이남(伊南)·이
이성 / 利城 [지리/인문지리]
함경남도 이원 지역의 옛 지명. 551년(진흥왕 12) 신라의 영토가 되어 이곳에 산성을 쌓고 마운령(摩雲嶺)에는 순수비를 세우고 이곳을 정천질간(井泉叱澗)이라 하였다. 발해 때에는 남경부(南京府)에 속하였고, 발해가 멸망한 뒤에는 오랫동안 여진족의 근거지가 되었다.
이성 / 利城 [지리/인문지리]
전라북도 김제 지역의 옛 지명. 본래 백제의 내리아현(乃利阿縣)이었는데, 신라 경덕왕 때 이성으로 고쳐 김제군의 영현으로 하였다. 그 뒤 고려 현종 때전주에 속하게 하였다. 이성은 이동(利東)·이서(利西)·이북(利北)의 3개면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 지역은 만경강 하
이안 / 利安 [지리/인문지리]
경상남도 함양 지역의 옛 지명. 본래 신라의 마리현(馬利縣)이었는데, 757년(경덕왕 16) 이안현(利安縣)으로 바꾸어 천령군(天嶺郡)의 영현(領縣)으로 삼았다. 이안현의 명칭은 조선 태조 때 안의(安義)로 바꿀 때까지 사용되었다. 이 지역은 소백산맥의 동쪽 사면에 위
이열비 / 爾列比 [지리/인문지리]
신라와 가야의 국경지대에 있었던 지명. 『일본서기(日本書紀)』 게이타이기(繼體紀) 8년(514)조에 나오는 지명이다. 그 기록에 따르면 6세기 초에 반파(伴跛), 즉 고령의 대가야는 이열비와 마수비(麻須比)에 성을 쌓아 마차해(麻且奚)ㆍ추봉(推封)에까지 뻗치고 사졸과
이저국 / 已柢國 [지리/인문지리]
삼한시대 진한의 소국.진한 12소국(小國) 중의 하나. 『삼국지(三國志)』위서(魏書) 동이전(東夷傳)에 수록된 삼한(三韓) 소국의 이름은 당시의 중국 상고음(上古音)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그 표기는 우리나라의 고대 한자음에 가까우므로 ‘이저국’도 우리나라의 한자음에
이지 / 梨旨 [지리/인문지리]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옛 지명. 본래 영주(永州)에 소속된 이지은소(梨旨銀所)였는데, 1018년(현종 9) 영천(永川)과 함께 경주에 소속되었다. 고려 충숙왕 때 이지현으로 승격시켜 다시 영주의 임내로 하였다가,1394년(태조 3) 신녕현(新寧縣)의 속현으로 하였다.
이하 / 泥河 [지리/인문지리]
함경남도 영흥평야 지역을 흐르는 용흥천(龍興川)의 신라 때의 옛 이름. 이 하천은 신라의 북방 경계가 되는 하천으로 군사적 의의가 큰 하천이다. 자비왕 때 하슬라(何瑟羅) 사람을 동원시켜 이곳에 성을 쌓았다고 하며, 소지왕 때는 고구려가 말갈과 더불어 북방을 침입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