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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 : 근대 > 일제강점기
김두만 / 金斗萬 [역사/근대사]
생몰년 미상. 독립운동가. 평안북도 의주 출신. 1919년 4월 2일 수진면 고향에서 3·1운동을 주도한 뒤 동지들과 같이 만주로 망명하여, 만주 안동현(安東縣)에 설립된 독립운동단체인 임시의사회(臨時議事會)의 중심인물로 활동하였다. 그는 관전현(寬甸縣)을 근거지로 하
김두봉 / 金枓奉 [정치·법제/정치]
1889년(고종 26)∼1961?. 독립운동가·한글학자·정치가. 연안파 공산당의 지도자. 17살에 서울로 올라와 배재학교. 보명중학에서 공부하고, 한글학자 주시경 밑에서 연구한 후 각지의 한글강습회와 보성, 중앙, 휘문고보에서 가르쳤다. 1929년 임시정부 의정원 의
김두우 / 金斗牛 [역사/근대사]
1898-1931.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적은 황해도 평산(平山)이다. 1919년 독립만세운동을 계획하고 태극기 등을 비밀리에 제작하였다. 3월 31일 황해도 평산군 인산면(麟山面) 기린리(麒麟里)에서 김예식(金禮植)·서홍균(徐洪均)·정학규(鄭學奎) 등과 함께
김두찬 / 金斗燦 [역사/근대사]
1919-미상.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다른 이름은 김택달(金澤達)이다. 본적은 평안남도 강동(江東)이다. 1936년 평양의 숭실중학교(崇實中學校) 재학 중, 일본이 강압적으로 시행했던 신사참배를 거부하는 운동을 주동하다가 일본 경찰에 연행되었다. 1938년 김길순
김득명 / 金得鳴 [역사/근대사]
1923-2009. 일제 강점기 광복군. 본적은 황해도 봉산군(鳳山郡) 사리원(沙里院)이다. 일본은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을 발발시키고 군사력 보충을 위해 조선인을 강제 징집하였다. 김득명(金得鳴)은 이때 강제 징병되어 중국 상해에 주둔한 일본 군대에 배속되었다. 그러
김마리아 / 金瑪利亞 [역사/근대사]
1891-1944. 항일기의 독립운동가·교육자. 1919년 2·8운동과 3·1운동에서 활약하였고, 이후 대한민국애국부인회 회장·상해애국부인회 간부 등을 지냈다. 고문 후유증으로 사망한 이후 1965년 건국훈장 국민장이 추서되었다.
김막동 / 金莫同 [역사/근대사]
1887-미상. 일제 강점기 의병·독립운동가. 본적은 전라북도 임실군(任實郡)이다. 일제에 의해 고종 황제가 퇴위를 당하고 강압적으로 군대가 해산되자, 해산된 군인들이 의병에 가담하면서 전국적으로 의병활동이 진행되었다. 1909년(융희 3) 김동구(金東九) 의진(義陣
김만삼 / 김만삼 [사회/사회구조]
일제강점기 카자흐공화국에서 선봉 콜호즈를 중심으로 활동한 교민.고려인, 농업지도자. 1928년 이후에 연해주의 콜호즈(kolkhoz)에서 활동하다가, 1937년에카자흐(Kazakh)공화국으로 강제이주된 뒤에는 선봉(先鋒) 콜호즈를 중심으로 활동하였다. 특히 벼의 재배
김만수 / 金萬秀 [역사/근대사]
1894-1924. 항일기의 독립운동가. 자는 회일(會一). 일제에 의해 국권이 강탈되자 만주로 망명하여, 이후 서로군정서에 가담했다. 1924년 최병호·유기동 등과 함께 하얼빈에서 일본 총영사와 일본경찰 10여명을 사살하고 순국했다.
김만와 / 金晩窩 [역사/근대사]
1898-1967. 독립운동가. 일명 순학(舜鶴). 함경북도 무산 출신. 1919년 만주에서 철혈광복단(鐵血光復團)에 입단하였으며, 1922년에는 대한독립단에 입단하여 독립군자금 조달과 독립군의 전투에 참가하였다. 그뒤 1926년 고려혁명당에 가입하여 정의부(正義府)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