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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 : 역사
광주신창동유적 / 光州新昌洞遺蹟 [역사/선사시대사]
광주광역시 광산구 신창동에 있는 철기시대 말기에서 원삼국시대 초기에 걸친 복합유적. 53개의 독널 중 외독〔單甕〕과 세독〔三甕〕짜리가 각각 하나씩이고, 나머지 51개는 모두 아가리를 맞붙인 대소 두 개의 이음독널〔合口式甕棺〕이었다. 독널의 크기는 가장 작은 것이 45㎝
광주운암동주거지 / 光州雲巖洞住居址 [역사/선사시대사]
광주광역시 북구 운암동 어린이대공원에 위치한 청동기시대의 움집터 유적. 정식 발굴조사가 이루어진 것이 아니어서 집자리의 규모나 내용은 확실히 파악되지 못하였다. 이미 파괴된 단애면에 노출된 흑갈색층의 집터 바닥의 길이는 약 14m에 달하는데, 그 아래는 부식된 화강암
광주원산동주거지 / 光州院山洞住居址 [역사/선사시대사]
광주광역시 광산구 원산동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움집터 유적. 광주 송암동 집터와 인접해 있으며, 1977년 7월전남대학교박물관에서 발굴한 바 있다. 산사태로 인해 집터의 대부분이 유실되었고 당시 남아 있던 규모는 남북 1.9m, 동서 2.3m로서 평면형태는 장방형이었다.
광주일곡동유적 / 光州日谷洞遺蹟 [역사/선사시대사]
광주광역시 북구 일곡동에 있는 원삼국시대와 백제시대의 생활 유적. 출토유물은 이중구연호, 장란형토기, 발형토기, 시루, 방추차, 파수부토기 등 다양한 토기가 있었고, 석기는 숫돌 1점뿐이다. 그 중 이중구연호는 옹관이나 토광묘 등 분묘 유적에서 주로 출토되는 토기로 주
광주장지동유적 / 廣州牆枝洞遺蹟 [역사/선사시대사]
경기도 광주시 장지동에 있는 청동기시대와 백제 초기의 취락유적. 청동기시대 집터는 모두 8기이다. 제1호는 세장방형으로 장축 약 1.52㎝, 단축 약 240㎝, 깊이 28㎝이다. 내부에 벽도랑〔壁溝〕과 기둥구멍〔柱穴〕등이 있으며, 화덕자리는 확인되지 않았다. 집터 내에
광주충효동지석묘 / 光州忠孝洞支石墓 [역사/선사시대사]
광주광역시 북구 충효동에 있었던 초기철기시대의 고인돌. 영산강개발사업의 일환으로 건설된 4개의 댐 중 광주댐 수몰지구 내에 들어 있어 현재는 완전히 수몰되어 버렸다. 발굴은 1977년 4월 30일부터 5월 9일까지 전남대학교박물관에 의해 실시되었다. 발굴결과 모두 7기
광주학생운동 / 光州學生運動 [역사/근대사]
1929년 광주 지역의 학생이 주동이 되어 일으킨 항일독립만세운동. 민족 차별 교육에서 발단하여 민족 독립 만세 운동으로 발전하였다. 1928년대의 광주고등보통학교를 비롯한 동맹 휴교가 다음해의 민족 독립 항쟁의 길로 연결되지 않았더라면 1929년에서 1930년대의 전
광탄마을고인돌 [역사/선사시대사]
평양시 강동군 남강노동자구 광탄마을에 있는 지석묘(支石墓). 남강로동자구와 란산리 사이에 있는 달현고개 아래에 자리 잡고 있다. 광탄마을에서 약 100m 떨어져 있다. 이 무덤들은 고임돌의 기초도 얕게 묻혀 있고, 고임돌의 절반이상이 돌과 흙무지에 감싸여 있다. 석재도
광평대군 / 廣平大君 [역사/조선시대사]
1425(세종 7)∼1444(세종 26). 조선 전기의 왕자. 아버지는 세종, 어머니는 소헌왕후 심씨이다. 1432년(세종 14)광평대군으로 봉해지고 1436년에 신자수의 딸과 혼인하였다. 그 해 성균관에 입학하여 학문에 힘써 『효경』·『소학』·사서삼경·『좌전』등에 능
광해군일기 / 光海君日記 [역사/조선시대사]
조선후기 제15대 왕 광해군의 재위 기간 동안의 국정 전반에 관한 역사를 다룬 실록. 1608년 2월부터 1623년 3월까지 광해군 재위 15년 2개월 간의 국정 전반에 관한 사실을 다루었다. 187권. 조선왕조실록 가운데 유일하게 중초본(中草本, 太白山本) 64책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