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형 : 인물 3,881건의 주제어가 있습니다.

유형 : 인물
  • 나성두 / 羅星斗 [종교·철학/유학]

    1614(광해군 6)∼1663(현종 4). 조선 중기의 문신. 할아버지는 보덕 급, 아버지는 참의 만갑, 어머니는 좌찬성 정엽의 딸이다. 장유·정홍명의 문하에 있었으며, 스승의 권유로 1646년(인조 24) 과거에 응하여 진사가 되었다. 이산현감을 역임하였다.

  • 나세찬 / 羅世纘 [종교·철학/유학]

    1498(연산군 4)∼1551(명종 6). 조선 전기의 문신. 할아버지는 현감 은제, 아버지는 성균생원 빈, 어머니는 찰방 윤노겸의 딸이다. 1528년 별시문과에 급제, 나주·황주의 훈도, 성균관학유를 거쳐 예문관검열이 되었다. 병조좌랑, 사간원헌납, 시강원문학, 이조

  • 나양좌 / 羅良佐 [종교·철학/유학]

    1638(인조 16)∼1710(숙종 36). 조선 후기의 문신. 할아버지는 만갑, 아버지는 목사 성두, 어머니는 판서 김남중의 딸이다. 윤선거의 문인이다. 송준길의 추천으로 희릉참봉·동몽교관·상의원주부의 벼슬을 받았으나 모두 사퇴하였고, 1683년(숙종 9) 평강현감을

  • 나운규 / 羅雲奎 [예술·체육/영화]

    1902-1937년. 민족항일기의 선구적인 영화인. 호는 춘사(春史). 회령 출신. 한의(韓醫) 형권(亨權)의 6남매 중 셋째아들으로 태어났다.

  • 나이준 / 羅以俊 [종교·철학/유학]

    ?∼1686(숙종 12). 조선 후기의 문신. 할아버지는 세겸, 아버지는 용. 1635년(인조 13) 사마시에 합격하고 1646년(인조 24)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관직으로는 정언, 수찬, 교리, 보덕, 집의, 사간 등을 역임하였다. 1774년(영조 50) 성

  • 나정구 / 羅正龜 [역사/근대사]

    1886∼미상. 일제 강점기의 독립운동가. 1915년 김좌진(金佐鎭) 등이 만주에서 조직한 조선군단(朝鮮軍團)의 군사교육기관인 사관학교에서 근무하였다. 1919년 3‧1 운동 후 조직한 대한청년단(大韓靑年團)에 가입하여 소만류구(小萬留構)에서 한국인의 호세(戶稅) 징수

  • 나철 / 羅喆 [종교·철학]

    조선 후기의 대종교의 교조·독립운동가(1863∼1916). 29세 때 문과에 급제, 33세 때 징세서장의 발령을 받았다. 1904년 오기호·이기 등 호남 출신 우국지사들과 유신회를 조직하고 구국운동에 전념하였다. 1909년 1월 15일 제천의식을 거행한 뒤 단군교를

  • 나학천 / 羅學川 [종교·철학/유학]

    1658(효종 9)∼1731(영조 7). 조선 후기의 문신. 할아버지는 사간 이준, 아버지는 첨지중추부사 수종, 어머니는 박창징의 딸이다. 통덕랑 수성에게 입양되었다. 1683년(숙종 9)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 병조좌랑, 강원도도사, 울산부사, 서천군수, 병조참지

  • 나현성 / 羅絢成 [예술·체육/체육]

    해방 이후 『한국스포츠사』, 『한국체육사』, 『육상경기』 등을 저술한 학자. 평안남도 대동 출생. 1938년 평양광성고등보통학교(光成高等普通學校)를 거쳐, 1940년 경성사범학교 연습과를 졸업하 였다. 이 시기에 우리 나라의 대표적인 육상선수로 활약하였다. 광성고등보통

  • 나혜석 / 羅蕙錫 [예술·체육/회화]

    항일기의 여류 서양화가(1896-1948). 호는 정월(晶月). 우리나라 최초 여성 서양화가로 1921년 경성일보사 내청각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다. 조선미술전람회 서양화부에 1회부터 5회까지 입선하였다. 문인활동도 하였다. 대표작 〈나부(裸婦)〉·〈무희〉 등이 있다.

  • 남경훈 / 南慶薰 [종교·철학/유학]

    1572년(선조 5)∼1612년(광해군 4). 부친은 남의록, 모친은 박인수의 딸이다. 장인은 첨정 이준이다. 21세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영해 의병장이 되어 아버지와 함께 곽재우 장군의 진영에 들어가 참전하였다. 병을 얻어 1612년(광해군 4) 41세로 사망하였다.

  • 남경희 / 南景羲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학자(1748∼1812). 벼슬은 1788년경부터 승문원박사·성균관전적·사헌부감찰·병조좌랑을 거쳐 사간원정언에 이르렀다. 1791년 사직하고 고향에 은거하였다. 이만운과 대대로 맺어온 친분이 있었고, 이기경·이우·한치응 등과 가깝게 지냈다. 저서는《치암선

  • 남계하 / 南啓夏 [종교·철학/유학]

    1643(인조 21)∼1705(숙종 31). 조선 중기의 문신. 아버지는 진위장군 문성. 음서로 선공감에 나가게 되었다. 그뒤 내섬시주부·활인서별제를 거쳐, 의금부도사를 역임하고, 외직으로는 청하현감을 지냈다. 평소 학문에도 뜻이 있어 윤원거 문하에 들어가 학문을 쌓았

  • 남공철 / 南公轍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장가·정치가(1760∼1840). 이조판서·대제학·우의정 등을 거쳐 영의정까지 올랐다. 경전에 통달하였고 구양수 문장을 본받았으며, 글씨에도 뛰어난 당대 최고의 문장가로서 많은 금석문·비갈을 남겼다.《규장전운》·《정종실록》등의 편찬에 참여하였고,《고려명

  • 남광우 / 南廣祐 [언어/언어/문자]

    1920∼1997. 국어학자. 아버지는 남상현(南相顯), 어머니는 이아기[全州李氏 岳只]이다.1938년 3월 대구사범학교를 졸업하였고, 1950년 5월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였으며, 1969년 2월「조선한자음연구」로 중앙대학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 남구만 / 南九萬 [종교·철학/유학]

    1629(인조 7)∼1711(숙종 37). 조선 후기의 문신. 개국공신 재 후손, 할아버지는 식, 아버지는 현령 일성, 어머니는 권박의 딸이다. 1656년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해 가주서·전적·사서·문학을 거쳐 이듬해 정언이 되었다. 1659년 홍문록에 오르고 곧 교

  • 남구명 / 南九明 [종교·철학/유학]

    1661(현종 2)∼1719(숙종 45). 조선 후기의 문신. 할아버지는 길, 아버지는 종사랑 상주이다. 1693년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했다. 그러나 벼슬에 뜻이 없어 고향에서 10여년간 은거하다가 형 노명의 강력한 권유로 전적을 지내고, 1711년에 제주판관으로 부

  • 남궁억 / 南宮檍 [교육/교육]

    항일기의 독립운동가·교육자·언론인(1863-1939). 자는 치만(致萬). 호는 한서(翰西). 1896년 독립협회를 창립하여 고위급 지도자로 활동하였다. 1898년 9월 《황성신문》을 창간하고 사장에 취임하였다. 1912년 상동청년학원 원장을 겸하면서 독립사상 고취,

  • 남극관 / 南克寬 [종교·철학/유학]

    1689년(숙종 15)∼1714년(숙종 40). 조선 중기의 문신. 증조부는 남일성, 조부는 남구만, 부친은 남학명이다. 서문유 딸과 혼인했다. 1708년(숙종 34)에 무자식년사마시에 생원 2등으로 합격하여 성균관에 들어갔다. 다음해 괴질에 걸려 이후 6년 간 병고에

  • 남기만 / 南基萬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730∼1796). 1753년(영조 29) 소과에 합격한 뒤, 묵산재를 짓고 학문에만 전념하여 경학에 정통하였다. 1796년 환곡의 폐단을 바로 잡는 것과 천주교를 탄압하자는 등 시폐에 대한 상소를 올렸다. 성력도수참동계납갑지법에 통달하였고 저서로

페이지 / 195 g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