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형 : 인물 총 3,881건의 주제어가 있습니다.
유형 : 인물
김휘 / 金徽 [종교·철학/유학]
1607(선조 40)∼1677(숙종 3). 조선 후기의 문신. 석의 증손, 할아버지는 인갑, 아버지는 시양, 어머니는 이대수의 딸이다. 1642년(인조 20)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봉교로 임명되고, 같은 해 홍문록에 올랐다. 그 뒤 이조좌랑·이조정랑·교리·응교·헌
김휘약 / 金輝鑰 [종교·철학/유학]
1823년(순조 23)∼1891년(고종 28). 조선 후기 학자. 부친은 김낙소이다. 1858년(철종 9) 생원시에 합격하였으나, 세상의 도가 떨어져가는 것을 느끼고 태백산으로 들어가서 한수정사를 지어놓고 학문 연구과 후학 양성에 힘썼다. 저서로 100여 권을 남겼는
김휘준 / 金輝濬 [종교·철학/유학]
1820(순조 20) - 1898(광무 2) 고조는 장사랑 복, 증조는 응련, 조부는 영진, 부친은 낙숭이다. 1820년(순조 20) 11월 1일 영천 성동의 집경루에서 태어났는데, 집경루는 증조부 응련이 편거한 곳이다. 7세가 되자 당부 낙규에게 수학했다. 교유한
김휘철 / 金輝轍 [종교·철학/유학]
1842년(헌종 8)∼1903년(광무 7). 부친은 낙광, 모친은 정재석의 딸이다. 매창 사신의 후손이다. 1862년에 관복재 김기헌이 주도하여 가르치고 있던 사계서원에 나아가 독서를 하였다.1868년 부친상을 당하였고 1876년 봄에 향시에서 장원으로 뽑혔으나 서울에
김휴 / 金烋 [종교·철학/유학]
1597(선조 30)∼1638(인조 16). 조선 중기의 학자. 아버지는 시정. 장현광의 문인이다. 1627년(인조 5)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나 벼슬길에 나가지 않고 오로지 성리학의 연구에만 힘썼다. 그뒤 조경의 간곡한 권유와 천거로 강릉참봉에 임명되었으며, 1637년에
김흥국 / 金興國 [종교·철학/유학]
1557(명종 12)∼1623(인조 1). 조선 중기의 문신. 약평 증손, 할아버지는 희려, 아버지는 별제 난손, 어머니는 정랑 구숙간의 딸이다. 1589년(선조 22) 유학으로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정자·정언·주서 등을 역임하였다. 김장생·신흠·황신·서성 등과
김흥근 / 金興根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796∼1870). 달행 증손, 할아버지는 이경, 아버지는 이조참판 명순, 어머니는 신광온의 딸이다. 형은 좌의정 홍근이다. 경상도관찰사 때 안동김씨의 권세를 믿고 세도를 부리다 탄핵, 광양에 유배되었다 풀려나 영의정·판중추부사·이정청총재관·영돈령
김흥락 / 金興洛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유학자(1827∼1899). 유치명의 문인으로 영남학파의 학통을 계승하였다.〈졸수요결〉·〈입학오도〉·〈주일설〉을 지었다. 소계서당에 제향되었다.
김희 / 金熹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729∼1800). 경학에 능하여 경전장구에 정조의 고문구실을 하였다. 인품이 청백하여 사관들은 한사와 같이 담소하다고 평하였다.
김희락 / 金熙洛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761∼1803). 이상정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문장과 학식이 뛰어나 정조로부터 특별한 총애를 받았다. 많은 강제문과 응제문을 지어 올렸으며, 편수관으로서《해동인물고》·《영남명신록》·《홍재전서》등의 편찬에 참여하였다.
김희로 / 金希魯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673∼1753). 할아버지는 관찰사 징, 아버지는 우의정 구. 왕의 다병무자함을 들어 왕세제(뒤의 영조)의 대리청정을 주장하다 1721년(경종 1) 신임사화로 형 재로와 함께 파직당하여 위원에 유배당하였다.
김희백 / 金熙伯 [역사/근대사]
1899∼1937.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 일명 김희백(金熙百), 평안남도 대동 출신이다. 독립운동을 위하여 만주로 망명하여 북간도의 대한국민회에 가담하였다. 대한독립군에서 군자금 모집을 위하여 활약하였고, 봉오동전투(鳳梧洞戰鬪) 이후 독립군에 대한 일본의 대규모 군
김희삼 / 金希參 [종교·철학/유학]
1507(중종 2)∼1560(명종 15). 조선 중기의 문신·학자. 아버지는 좌승지에 추증된 치정, 어머니는 이계공의 딸이다. 김취성·이광·송희규의 문인이다. 1540년 문과에 급제하였다. 병조좌랑, 옥당, 삼척부사 등을 역임 하였다. 저서로는『칠봉일집』1권이 있다.
김희상 / 金熙祥 [언어/언어/문자]
생몰년 미상. 초창기 국어학자. 생몰연대를 알 수 없으나, 초창기 국어문법 개설서를 집필한 국어학자이다. 1909년 경성 유일서관에서 학부검정을 받은 사립학교 국어과 초등교육학도용 문법교과서인 『초등국어어전』을 발행하였다. 이 책은 상·중·하 3권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
김희순 / 金羲淳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757∼1821). 사간으로서 이가환의 부당함을 상소하다 삭직당하였으나, 곧 포천에 암행어사로 나가 민폐를 살폈다. 순조가 즉위하자 실록당상에 제수되었으며, 어릴 때부터 문사에 능하였으며 경술에 조예가 깊었다.
김희정 / 金羲正 [종교·철학/유학]
1844년(헌종 10)∼1925년. 조선 말기 유학자. 1873년(고종 10) 면암 최익현이 제주도에 유배되었을 때 가택에 왕래하며 종유하였다. 1887년(고종 24) 향시에 합격, 1890년(고종 27) 숭인전참봉을 지냈으나, 평생을 고향 조천에 은거하며 후진 양성에
김희주 / 金熙周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760∼1830). 이상정의 문인이다. 1800년에는 교리에 실록편수관을 겸하여《영조실록》편찬에 참여하였다. 1806년(순조 6)에는 사재 수백냥을 투자하여 강소(講所)를 신축, 군내의 영재들을 교육하였다.
나도향 / 羅稻香 [문학]
1902년∼1927년. 소설가. 1917년 배재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였다. 1922년 현진건·홍사용·이상화·박종화·박영희 등과 함께《백조》동인으로 참여하여 창간호에〈젊은이의 시절〉을 발표하면서 작가생활을 시작하였다. 같은해에 〈별을 안거든 우지나 말걸〉〈환희〉를《동아일보
나무춘 / 羅茂春 [종교·철학/유학]
1580(선조 13)∼1619(광해군 11). 조선 중기의 문신. 할아버지는 첨추 율, 아버지는 덕용, 어머니는 송정순의 딸이다. 1612년(광해군 4)에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성균관의 학유·학록·학정 등을 지냈다.
나석주 / 羅錫疇 [정치·법제/정치]
항일기의 독립운동가(1892∼1926). 3·1운동 후 중국으로 망명, 의열단에 입단했다. 1926년 조선식산은행과 동양척식주식회사에 던진 폭탄이 불발로 실패하고 일본경찰의 추격을 받던 중 권총으로 자결하였다. 1962년 건국훈장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