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형 : 인물 > 의병·독립운동가 총 672건의 주제어가 있습니다.
유형 : 인물 > 의병·독립운동가
최병선 / 崔秉善 [역사/근대사]
1886-1943년. 독립운동가. 일명 동선(東善)·병선(炳善). 평안북도 정주 출신. 1919년 3·1운동 때 고향 정주에서 만세운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가 잡혀 8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1920년 1월 출옥과 동시에 상해(上海)로 망명하여 공동조계에 거주하면서 영
최병수 / 崔炳秀 [역사/근대사]
1876-1919. 독립운동가. 충청남도 아산 출신. 1919년 3월 1일 이래 전국적으로 독립만세운동이 확대되고 있음을 알고, 선장면·신창면·도고면 등 3개 면민의 연합만세운동 총책임자로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4월 4일 200여명의 만세시위군중이 모인 선장 장
최병일 / 崔秉一 [역사/근대사]
1883-1939.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다른 이름은 최치순(崔治順)이다. 본적은 경기도 안성(安城)이다. 1919년 4월 1일 경기도 안성 양성면(陽城面)과 원곡면(元谷面) 일대에서 시행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이 운동은 이유석(李裕奭)·최은식(崔殷植)·홍
최병호 / 崔炳鎬 [역사/근대사]
미상-1924. 독립운동가. 강원도 출신. 부모를 따라 어렸을 때 만주로 건너가 통화(通化)에서 소학교를 졸업하였다. 1919년 3·1운동이 발생하자 중동선(中東線) 일대에서 동지를 규합하여 항일운동을 전개하였다. 1923년 항일무장단체인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의 헌병
최봉설 / 崔鳳卨 [역사/근대사]
1897-1973년.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호는 이붕(以鵬)이고, 다른 이름은 최계립(崔溪立)이다. 출생지는 중국 연길현 지인향 와룡동(현 연길시 소관향 민흥촌)이다. 부인은 김하규(金河奎)의 딸 김신희(金信姬)이다. 1920년 일제의 조선은행 회령지점에서 수송중
최봉원 / 崔鳳元 [역사/근대사]
1913-2000.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사회주의운동가. 다른 이름은 최동광(崔東光)이다. 본적은 평안북도 신의주(新義州)이다. 형은 최봉록(崔鳳錄)이다. 돈을 벌 목적으로 형과 함께 중국의 화북(華北)으로 가서 행상을 하던 중에 제남(濟南) 근처에서 1938년 4
최봉직 / 崔奉稷 [역사/근대사]
1896-1961. 독립운동가. 황해도 벽성 출신. 1919년 3·1운동 때 해주에서 만세시위운동에 가담한 뒤 만주로 망명하여 1920년 1월 유하현 삼원보에 있는 군사학교를 이수하고 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에 가담하였다. 군자금 모금을 위하여 국내에 잠입, 1920년
최봉환 / 崔鳳煥 [역사/근대사]
1868-미상. 독립운동가. 평안남도 순천 출신. 1910년 1월 19일 평안남도 순천교회 장로로 활동하던 중, ‘시장세반대투쟁(市場稅反對鬪爭, 일명 百一稅事件)’을 주도하여 3,000여명의 농민·상인들을 동원하여 시위 항쟁하고, 순천 세무주사 노자와(野澤辰三郞) 등
최서경 / 崔曙卿 [역사/근대사]
1902-1955년.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다른 이름은 최서경(崔曙敬)이다. 본적은 평안북도 운산(雲山)이다. 중국 상해(上海)로 이주하여 한국독립당(韓國獨立黨) 산하 애국부인회(愛國婦人會)에 가담하였다. 이 모임에서 대한민국 임시 정부 정책과 노선을 지지하였으며
최석봉 / 崔石奉 [역사/근대사]
1880-1951.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적은 전라북도 순창군(淳昌郡) 동계면(東溪面)이다. 1909년 4월 의병장 김동구(金東九) 의진(義陳)에 참가하여 박치근(朴致根)·한자선(韓子先)·박화숙(朴化淑) 등 동지 11명과 함께 순창·임실(任實)·남원(南原) 일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