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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 : 인물 > 의병·독립운동가
  • 장두희 / 張斗熙 [역사/근대사]

    1883-1930.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적은 경상북도 안동시(安東市) 풍산면(豊山面)이다. 3·1운동 이후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독립만세운동에 고무되어 김정익(金正翼)·손영학(孫永學)·김정연(金正演) 등과 함께 거의(擧義)할 것을 다짐하였다. 1919년 3월 2

  • 장봉한 / 張鳳漢 [역사/근대사]

    생몰년 미상. 독립운동가. 함경북도 종성 출생. 1909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이범윤(李範允)·최재형(崔在亨)의 부하로 활약하였고, 노령의 추풍(秋風) 달자동(達子洞)에서 800여 명으로 결사대를 조직하여 활동하였다. 1919년 9월 홍범도(洪範圖)와 함께 부하 약 50

  • 장석영 / 張錫英 [역사/근대사]

    1851-1929. 독립운동가·유학자. 본관은 인동(仁同). 일명 석교(碩敎). 호는 회당(晦堂). 경상북도 칠곡 출신. 1905년 일제가 무력으로 위협하여 을사조약을 강제 체결하고 국권을 박탈하자 통분하여 일제침략을 규탄하고 을사조약의 파기와 을사오적의 처형을 요청

  • 장석천 / 張錫天 [역사/근대사]

    1903-1935. 광주학생운동 주동자. 전라남도 완도 출신. 수원고등농림학교를 2년간 수료한 뒤 1926년 동경상과대학 예과에 입학하였으나 4개월 만에 퇴학당하였다. 1927년 3월부터 전라청년연맹 상임위원, 전남청년연맹 위원장 등을 지냈고, 강해석(姜海錫)·박인수

  • 장석함 / 張錫咸 [역사/근대사]

    1889년(고종 26) 3월 15일∼1951년 4월 5일. 일제 강점기의 독립운동가. 출신지는 함경남도 함흥(咸興)이다. 1908년(융희 2) 국권회복을 위한 단지동맹회(斷指同盟會), 신민회(新民會) 등에서 활동 하였다. 중국 용정(龍井) 신촌(新村)에 영신학교(永新學

  • 장선희 / 張善禧 [역사/근대사]

    1894-1970.항일기의 독립운동가. 3·1 운동이 일어나자, 대한애국부인회를 결성하여, 투옥된 애국지사들의 가족을 돕고 상해 임시정부와 연락하며 독립운동을 벌였다. 제2대 재무부장이 되어 전국적으로 조직을 강화하고 미국에까지 지부를 설치하여 대대적인 독립운동을 하

  • 장세용 / 張世湧 [역사/근대사]

    1902-1936. 독립운동가. 경상북도 울진 출신. 1922년 재만 각 독립운동단체가 통합하여 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를 결성하자 이에 가입, 통의부소속 독립군인 의용대(義勇隊)소대장으로 직접 항일전투에 참전하였고, 1926년 만주 유하현 삼원보(柳河縣三源堡)에서 동명

  • 장소진 / 張韶鎭 [역사/근대사]

    1886-1924. 독립운동가. 일명 봉래(鳳來). 경기도 화성 출신. 1919년 4월 3일 주곡리 광장에 갔다가, 차희식(車喜植)으로부터 만세시위운동 계획을 전해듣고 적극 참여하기로 하였다. 이날 독립만세운동을 계획하였던 차희식 등은 이미 다른 동네 사람들에게도 모두

  • 장승열 / 張承說 [역사/근대사]

    1890-1922.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출신지는 평안북도 의주(義州)이다. 1919년 3·1독립만세운동 후 중국 봉천성(奉天省) 관전현(寬甸縣) 남구(南區) 장전(長甸)에 거주하면서 작은 선박을 운행하면서 독립군들이 강을 건널 때와 물품을 운반해야 할 때 많은

  • 장의찬 / 張宜燦 [역사/근대사]

    1923-1954. 독립운동가. 서울 출신. 1941년 항일학생단체인 흑백당(黑白黨)을 조직하여 독립운동을 한 애국지사이다. 1939년 경복중학(景福中學)재학중, 동급생인 이현상(李賢相)·홍건표(洪建杓)·주낙원(朱樂元)·명의택(明義宅) 등과 함께 독립을 위하여 친일파

  • 장익부 / 張益富 [역사/근대사]

    1891-1938. 독립운동가. 평안북도 철산 출신. 1920년 5월경 정원범(鄭元範)·정치민(鄭致敏) 등 동지와 같이 독립운동을 목표로 향리에서 대한청년숭의단(大韓靑年崇義團)을 조직하고 부단장이 되었다. 의용군을 모집, 만주독립군 본부에 파견함과 동시에 군자금을 모집

  • 장인환 / 張仁煥 [역사/근대사]

    1876-1930. 항일기의 독립운동가. 통감부 외무고문 스티븐즈가 샌프란시스코에서 일본의 한국침략을 정당화하는 발언을 보고 그를 죽이기로 결심하였다. 이에 1908년 3월 23일 아침 페리역에서 스티븐즈를 권총으로 저격·사살하였다.

  • 장일환 / 張日煥 [역사/근대사]

    1886-1918. 독립운동가. 평양 출생. 1913년 여름 안창호(安昌浩) 등의 후원으로 평양에 청산학교(靑山學校)를 설립하였다. 1914년 평양에서 숭실학교(崇實學校)와 신학교(神學校)의 재학생과 졸업생을 중심으로 조선독립청년단(朝鮮獨立靑年團)을 조직하고, 기관지

  • 장재모 / 張載模 [역사/근대사]

    1883-1945. 한말의 의병장. 본관은 흥성(興城). 자는 경선(景善). 호는 성수(聖樹). 전라남도 승주 출신. 연(演)의 후손으로, 일환(日煥)의 아들이다. 충절이 대단하고 무예가 뛰어나며, 특히 포술(砲術)에 능하였다. 1908년 2월 전라남도 보성 동소산(

  • 장조민 / 張朝民 [역사/근대사]

    1907-1967. 광복군. 평안북도 선천 출신. 1922년 16세 소년으로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에 입대하여 독립투쟁을 시작하였다. 1924년 5월 사이토(齋藤實)총독을 기습하여 일본인들에게 큰 위협을 주었으며, 1928년 6월까지 중국·만주 각지에서 무장투쟁을 전개

  • 장진수 / 張振秀 [역사/근대사]

    1894-1945.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적은 경상남도 창녕군(昌寧郡) 영산면(靈山面)이다. 1919년 3월 13일 구중회(具中會)·김추은(金秋銀) 등 천도교인 23명과 함께 결사단(決死團)을 조직하였다. 민족대표 33인 중 한 명인 신석구(申錫九)를 통해 독립

  • 장진원 / 張鎭元 [역사/근대사]

    1900-1928. 독립운동가. 일명 심원(沈元). 평안북도 출신. 1919년 3·1운동 때 향리에서 만세시위운동에 참가하였고, 1920년 군자금 모금원과 같이 간도로 들어가 대한청년단(大韓靑年團)에 가입, 활동하였다. 1921년 5월 최재경(崔在京)·박일권(朴日權)

  • 장진홍 / 張鎭弘 [역사/근대사]

    1895-1930. 독립운동가. 일명 성욱(聖旭). 경상북도 칠곡 출신. 1912년 조선보병대(朝鮮步兵隊)에 입대, 상등병으로 근무하다가 1914년 제대한 뒤 비밀항일결사인 광복단(光復團)에 입단하였다. 1918년 이국필(李國弼)과 같이 하바로스크로 가서 그곳 교포청년

  • 장한성 / 張寒星 [역사/근대사]

    1891-1931. 항일기의 독립운동가. 국민대표대회에 고려혁명군사령부 대표로 참석하였다. 국민부와 조선혁명당을 조직하자 특립대장이 되어 동만지구총책임자로 활동하였다. 공산당원이라는 혐의로 중국 공안국에 체포, 옥사하였다. 건국훈장 국민장이 추서되었다.

  • 장해평 / 莊海平 [역사/근대사]

    1905-1965. 독립운동가. 일명 기준(麒俊). 가명은 남용무(南容武)·이계백(李啓白). 황해도 안악 출신. 운동(雲洞)의 아들이다. 1922년에 정주 오산중학교(五山中學校)를 3년 수료한 뒤 이듬해 조선일보 안악지국을 경영하다가 동향인 김구(金九)·오면직(吳冕稙

  • 장헌문 / 蔣憲文 [역사/근대사]

    1870-1926. 한말의 의병장. 자는 무장(武章), 호는 뇌헌(磊軒). 경상북도 영일 출신. 1895년(고종 32)의 민비시해(閔妃弑害)와 단발령(斷髮令)을 계기로 을미의병이 전국적으로 봉기하자, 1896년 영일에서 1차거의, 항일투쟁을 개시하였다. 그뒤 일제가 1

  • 장현근 / 張鉉謹 [역사/근대사]

    1909-미상. 항일기 의 독립운동가. 1909년 9월 19일 음성읍(陰城邑) 신천리(新泉里)에서 출생하였다. 1927년 전라북도 정읍시 토리교회 주일학교 교사로 재직하며 항일정신과 민족의식을 고취하는데 전력하였다. 1929년 9월 안창호(安昌浩)와 함께 항일 독립운동

  • 장형 / 張炯 [역사/근대사]

    1889-1964. 항일기의 독립운동가·교육자. 호는 범정(梵亭). 평안북도 용천 출신의 독립운동가이자 교육자다. 1910년 보성전문학교를 졸업하고 만주로 건너가 독립운동에 투신하여 군자금 조달에 공을 세웠다. 1946년 국민동지회 회장이 되었고, 1947년 단국대학

  • 장호강 / 張虎崗 [역사/근대사]

    1916-2009.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적은 평안북도 철산군(鐵山郡)이다. 중국중앙군관학교를 졸업한 뒤 제24집단 군사령부와 제29군사령부의 정보장교를 역임하였다. 광복군에 입대하여 제3지대 본부의 부관실에서 근무하였고, 제3지대가를 작사·작곡하여 보급하였다.

  • 장효근 / 張孝根 [종교·철학/천도교]

    1867-1946년. 독립운동가·천도교인. 1898년 8월 이종일·유영석 등과 함께《제국신문》의 창간, 보급에 참여하였으며, 1906년 6월에는 오세창·이인직·권동진 등과 같이 천도교의 기관지인 《만세보》를 창간, 민족혼을 일깨웠다. 그뒤 1909년 6월에는《대한협회

  • 장흥 / 張興 [역사/근대사]

    1903-1983. 독립운동가·군인·헌병 영장(營長). 일명 기진(基鎭). 경기도 고양 출신. 중국 상해(上海)·난징(南京)·쑤저우(蘇州) 등지에서 항일투쟁하였다. 1925년 2월 의열단원 오세덕(吳世德)의 권유로 상해 프랑스 조계내에 있던 한국청년동맹회에 가입, 항

  • 전덕명 / 全德明 [역사/근대사]

    미상-1926. 독립운동가. 호는 죽파(竹坡). 평안북도 용천 출신. 1919년 3·1운동에 참가한 뒤 수차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복역하였다. 1921년 만주에서 독립운동지도자로 활동하고 있던 종형 덕원(德元)을 찾아 만주로 망명, 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에 가입하여, 활

  • 전덕원 / 全德元 [역사/근대사]

    생몰년 미상. 독립운동가. 호는 호은(湖隱)·정송(梃松). 평안북도 용천 출신. 유인석(柳麟錫)의 문인이다. 1905년 일제의 강압으로 을사오조약이 체결되자 각국 공사에게 격문을 보내고 의병을 일으켜 관서지방에서 항전하였다. 1906년 체포되어 유형 15년의 선고를

  • 전만표 / 全萬杓 [역사/근대사]

    1876-1959.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다른 이름은 전명국(全明國)이다. 본적은 충청북도 영동군(永同郡) 학산면(鶴山面)이다. 1919년 4월 3일 양봉식(梁鳳植)·이기영(李璣榮)·정해용(鄭海容)·이건양(李建陽)·전재득(全在得) 등과 함께 학산면 서산리(鋤山里)

  • 전명운 / 田明雲 [역사/근대사]

    1884-1947. 항일기의 독립운동가. 페리역에서 대기하였다가 친일파 스티븐스를 저격하였으나 미수에 그쳤다.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 받고 블라디보스토크로 피신하였다.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 독립운동에 매진하다 죽었다.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 전무 / 全無 [역사/근대사]

    미상∼1926년 3월. 일제 강점기 사회주의운동가. 1923년 사회주의 사상단체인 토요회(土曜會) 조직원, 조선공산당 중앙총국 국내부 산하의 청년뷰로에서 간부직으로 활동하였다. 또한 1924년 신흥청년동맹에서 활동하며, 한양청년연맹 조직원이 되었다. 1925년 전소전

  • 전병찬 / 田炳瓚 [역사/근대사]

    1915-1944.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출신지는 경상북도 울진(蔚珍)이다. 1939년 10월 28일 남복이(南福伊)·남정성(南精性)·남원수(南源壽)·노하순(盧夏淳)·임시헌(林時憲)·전만수(田萬秀)·전원강(田元江)·주영석(朱永錫)·주진욱(朱鎭煜) 등과 함께 경상북

  • 전상국 / 田相國 [역사/근대사]

    1907-1938. 독립운동가. 일명 이상국(李相國). 황해도 신천 출신. 1931년 2등비행사 자격으로 중국에 망명하여 동지의 권유에 따라 즉시 중국 공군(空軍)에 들어가 배운 기술을 연마하였다. 1937년 7월 7일 중일전쟁이 일어나면서 중국 본토가 전란상태로 빠져

  • 정도홍 / 鄭燾洪 [역사/근대사]

    1878년(고종 15)∼미상. 조선 말기의 의병장. 전라남도 나주(羅州) 봉황면(鳳凰面) 칠전(七田)에서 태어났다. 1908년(융희 2) 고향 마을에 창의소를 설치하고, 각 고을에 격문을 보내 의병에 참여할 것을 촉구하였다. 이에 600여 명이 참여하여 심남일 부대와

  • 정태봉 / 鄭太鳳 [역사/근대사]

    1893년(고종 30)∼1942년.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 전라남도 화순 출신이다. 1920년 대한민국임시정부 군자금모집 요청서를 받아 국내에서 군자금모집에 종사하였다. 김두환(金斗煥) 등 10여명과 연합하여 경상도 일대의 부호명단을 작성하고 금품을 모집 하였고, 1

  • 조경남 / 趙慶男 [문학/고전산문]

    조선시대 『난중잡록』, 『속잡록』 등을 저술한 의병장. 전라북도 남원 출생. 아버지는 사직 조벽(趙璧)이며, 어머니는 남원 양씨이다. 삼학사(三學士)의 심양(瀋陽) 순절소식에 충의를 읊기도 하였다. 사후 주포서원(周浦書院)에 향사됐다. 13세 때인 1582년(선조 15

  • 조만식 / 曺晩植 [정치·법제/정치]

    항일기의 독립운동가·정치가(1882-?). 3·1운동에 참가했으며, 조선물산장려회를 조직해 회장이 되어 국산품애용운동을 벌였다. 조선일보사 사장에 추대되어 언론을 통한 민족운동에 앞장섰고, 백선행기념관을 세워 기독교정신의 실천가로 활동했으며, 조선민주당을 창당해 당수

  • 조병옥 / 趙炳玉 [정치·법제/정치]

    항일기의 독립운동가·정치가(1894-1960). 한인회·흥사단 등의 단체에 참여하여 독립운동을 했다. 신간회 창립위원·재정총무를 역임하기도 했으며 광복을 맞이해 한국 민주당을 창당하고, 미군정청의 경무부장에 취임, 치안 유지와 공산당 색출에 진력하기도 했다. 저서로

  • 조병준 / 趙秉準 [역사/근대사]

    1862년(철종 13)∼1931년. 한말의 의병장‧독립운동가. 자는 유평(幼平), 호는 국동(菊東), 평안북도 의주 출신이다. 을미사변 후 평안도의병장으로 각지에서 항전하였고, 1910년 국권이 상실되자 항일전을 전개하다 외지로 망명하였다. 1919년 대한독립단(大韓獨

  • 조병채 / 趙炳彩 [역사/근대사]

    1878-1950. 독립운동가. 일명 병채(秉彩). 충청남도 청양 출신. 만주에서 조직된 대한군정서(大韓軍政署)의 독립군총사령관 김좌진(金佐鎭)이 파견한 천경수(千景洙)를 만나 군정부를 위한 군자금 모집을 의뢰받고, 1920년부터 김영진(金瑛鎭)·김상수(金相秀)·유기종

  • 조성환 / 曺成煥 [역사/근대사]

    1875-1948. 항일기의 독립운동가. 호는 청사(晴簑). 1906년 안창호 등과 함께 신민회를 조직하여 항일운동에 투신하였다. 1919년 3.1운동 직후에 상해로 건너가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에 참여하여 군무부차장에 임명되었다. 1936년 임시정부 국무위원 겸 군무

  • 조소앙 / 趙素昻 [역사/근대사]

    1887-1959. 항일기의 독립운동가·정치사상가. 임시정부 외무총장·의정원의장을 지냈고, 한국독립당을 창당했으며, 해방 후 비상국민회의의장으로 임시정부의 정통성 고수를 주장하기도 했다. 1948년 남북협상차 평양에 다녀왔고, 제2대국회의원이 되었으나, 6·25 때

  • 조용석 / 趙庸錫 [역사/근대사]

    1861-1920. 항일기의 독립운동가. 경술국치 후 만주 통화현으로 건너가 1918년 항일민족교육기관인 배달학교를 설립했다. 통화현 만세시위 주도, 한족회 간부로 활약했다. 만주대학살 때 손자 조용주와 함께 학살당했다. 1977년 건국포장이 추서되었다.

  • 조진탁 / 曺振鐸 [역사/근대사]

    1867-1922. 독립운동가. 평안남도 강서 출신. 1919년 대동군 금제면 원장리 장날인 3월 4일을 기하여, 최능현(崔能賢)·송현근(宋賢根) 등과 함께 강서군 사천만세운동을 주동하였다. 반석면 반육리에 있던 반석교회의 장로로서 1919년 2월 28일 평양에 갔다가

  • 조창룡 / 趙昌龍 [역사/근대사]

    1899-1923.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출신지는 평안남도 순천(順川)이다. 중국으로 망명하여 광복군총영(光復軍總營)에 입단하였다. 1920년 김진준(金鎭俊)·장필석(張弼錫) 등과 함께 국내에 잠입하여 평안남도 성천(成川)과 황해도 신계(新溪) 등지에서 국내 조직

  • 조형균 / 趙衡均 [교육/교육]

    1873-1948년. 독립운동가. 평안북도 정주 출신. 1892년(고종 29) 정주에 교회를 세우고 신문화운동을 통하여 애국사상을 고취하였고, 1904년 이승훈(李昇薰)과 오산학교(五山學校)를 설립, 교육을 통한 민족의식 고취에 힘썼다. 또, 남녀청년단을 조직하고, 식

  • 조황 / 趙晃 [역사/근대사]

    1882-1934. 항일독립운동가. 경기도 포천 출신. 1919년 3·1운동 당시부터 국내에서 의열단 활동을 하였다. 1923년 3월 황옥경부폭탄투척의거(黃鈺警部爆彈投擲義擧)에 가담하여 김시현(金始顯) 등과 더불어 붙잡혔다. 같은해 8월 21일 경성지방법원 합의부에서

  • 조훈 / 趙勳 [역사/근대사]

    1886-1938. 독립운동가. 일명 덕묵(德默). 함경남도 단천 출신. 1910년 만주로 가 독립운동에 종사하였다. 1919년 장백현(長白縣) 17도구(道溝)에서 이태걸(李泰杰)·김찬(金燦) 등과 대한독립군비단(大韓獨立軍備團)을 조직, 외교부장으로 활동하였다. 192

  • 지청천 / 池靑天 [역사/근대사]

    1888-1959. 항일기의 독립운동가, 정치인. 정부유학생으로 동경육군중앙유년학교를 졸업하고 만주에 망명하여 독립군의 간부를 양성하였다. 이후 대한독립군단의 여단장이 되었고 고려혁명군의 조직, 대동청년단의 창설하는 등 무장독립을 위해 활약하였다.

  • 차도선 / 車道善 [역사/근대사]

    생몰년 미상. 한말의 의병장·항일운동가. 함경남도 갑산 출신. 일제의 침략세력이 점점 강화되자 이를 물리치기 위해서는 먼저 일진회원을 암살해야 한다는 생각을 굳혀 북청군의 태양욱(太陽郁)과 함께 군읍민들을 교육시켰으며, 1907년 11월 16일에 북청군 안산면장 주도익

  • 차병제 / 車秉濟 [역사/근대사]

    1899-미상. 독립운동가. 평안남도 강서 출신. 1919년 만주에서 5적암살단(五賊暗殺團)인 27결사대(二七決死隊)에 가입하고 이탁(李鐸)·이우영(李宇榮)·손창준(孫昌俊) 등 27명의 대원들과 입국, 같은해 3월 3일 고종의 국장일에 참석하는 이완용(李完用) 등 5적

  • 차석보 / 車錫甫 [언론·출판/언론·방송]

    생몰년 미상. 언론인·독립운동가. 을사조약에 의하여 국권이 침해받게 되자 1908년 6월 <대동공보 大東共報>를 발간, 언론을 통하여 독립투쟁을 폈다. 이보다 앞서 수만명의 동포가 거주하는 해삼위(海蔘威)에서 독립운동을 펴고자 연해주로 이동, 국민회(國民會) 간부인 유

  • 차이석 / 車利錫 [역사/근대사]

    1881-1945. 항일기의 독립운동가. 호는 동암(東岩). 1919년 향리에서 만세시위운동을 주도하고, 상해로 망명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에 참여하였다. 1928년 3월 한국독립당을 조직하여 간부로 활동하였다. 1933년 항주 대한민국임시정부 국무위원으로 선임되었

  • 차천모 / 車天模 [역사/근대사]

    1889-1936. 독립운동가. 평안북도 의주 출신. 1919년 3·1운동 때 의주에서 만세운동을 주도하였으며, 일본 밀정 주계주(朱啓柱)를 살해하고자 습격하였으나 실패하였다. 그뒤 만주로 망명하여 대한독립단에 입단, 활동하다가 1920년 군자금모금을 위하여 국내에 잠

  • 차희식 / 車喜植 [역사/근대사]

    1870-1939년. 독립운동가. 일명 봉습(鳳習, 奉習). 경기도 화성 출신. 1919년 4월 3일 차병한(車炳漢)·차병혁(車炳爀) 등과 화성군 장안면·우정면 일대의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3월 1일 이후 전국적으로 독립만세운동이 전개되고 있다는 사실을 전하여듣고

  • 채국성 / 蔡國成 [역사/근대사]

    1891-1923.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적은 황해도 재령(載寧)이고, 독립운동 당시 주소는 러시아 이르쿠츠크이다. 독립군들이 일으킨 봉오동전투(鳳梧洞戰鬪)·청산리전투(靑山里戰鬪) 등의 전투에서 극심한 타격을 받은 일본군이 독립군 토벌을 위해서 1920년 4월부

  • 채기중 / 蔡基中 [역사/근대사]

    1873∼1921. 항일기의 독립운동가. 자는 극오(極五). 호는 소몽(素夢). 독립운동단체인 풍기광복단과 대한광복회를 결성하였다. 군자금을 모으고 친일 부호였던 장승원을 처단할 때 직접 지휘하는 등 활발하게 활동하였으나 일본경찰에게 붙잡힌 뒤 사형당하였다.

  • 채덕승 / 蔡德勝 [역사/근대사]

    1898-1930. 독립운동가. 함경북도 경원 출신. 1916년 조국광복의 뜻을 품고 만주 길림성(吉林省) 훈춘현(琿春縣)·왕청현(旺淸縣) 등지에서 안중근(安重根)·서재학(徐在學), 훈춘현 한민회장 황병길(黃炳吉)과 함께 독립운동을 하였으며, 1920년 7월 대한독립군

  • 채상덕 / 蔡相悳 [역사/근대사]

    미상-1925. 독립운동가. 일명 채상덕(蔡尙悳). 본관은 평강(平康). 호는 심호(沈湖). 황해도 사리원 출생.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최익현(崔益鉉)의 문하생으로 그의 뒤를 따라 의병초모에 전심전력하였다. 황해도 사리원·재령·해주·신막·안악 일대에서 의병투

  • 채세윤 / 蔡世允 [역사/근대사]

    1902-1973. 독립운동가. 일명 근우(槿宇). 전라북도 옥구 출신. 일찍이 독립운동에 뜻을 두고 노령 연해주(沿海州)로 망명하였다. 1920년 일본군의 만주출병과 한국독립군 소탕작전을 피하여 연해주로 이동하여 온 독립군과 연해주에서 활동하던 한인무장군과의 연합부대

  • 채수반 / 蔡洙般 [역사/근대사]

    1900-1955. 독립운동가. 평안북도 영변 출신. 흥사단(興士團) 단원으로 농우회(農友會)를 중심으로 항일독립운동을 한 애국지사이다. 3·1운동 이후 전국으로 확산된 민족계몽운동의 일환인 독서회(讀書會)를 통하여 항일운동을 전개하다가 1920년 일본경찰에 붙잡혀

  • 채영 / 蔡永 [역사/근대사]

    1882-1926.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다른 이름은 채영(蔡英)이다. 본적은 경성부이고, 독립운동 당시 주소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이다. 1919년 3월 13일 중국 북간도 용정(龍井)에서 최대 규모의 만세시위인 ‘조선독립축하회(朝鮮獨立祝賀會)’가 개최된 후 조

  • 채응언 / 蔡應彦 [역사/근대사]

    1879년(고종 16)∼1915년. 한말의 의병장. 평안남도 성천 출신이다. 이진룡(李鎭龍) 의병대에서 활동하였고, 1908년 황해도 안평(安平)의 일본순사주재소와 수안(遂安) 헌병분견소, 선암(仙巖) 헌병파견대를 습격하는 등 경기도‧강원도‧황해도‧평안도‧함경도 등지에

  • 천병림 / 千炳林 [역사/근대사]

    1896-미상. 독립운동가. 이명은 한일래(韓一來)·한위송(韓韋松)·한영일(韓英日)·천병일(千炳日)·방자원(方子遠)·위사원(韋思源). 충청남도 부여 출생. 조선의열단(朝鮮義烈團)에서 활동하였다. 1932년 10월 상해(上海)에서 한국독립당·조선혁명당·조선의열단 등 정

  • 천성환 / 千成煥 [역사/근대사]

    1917년 6월 22일∼1954년 1월 27일. 일제 강점기의 독립운동가. 본적은 강원도 고성(高城)이다. 고성남공립소학교(高城南公立小學校) 교사로 재직하였다. 1938년 항일결사단체인 고성민족문학연구회(高城民族文學硏究會)를 결성하고 일제의 아동교육 형태 및 현 정치실

  • 천세헌 / 千世憲 [역사/근대사]

    1881-1945년.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출신지는 경상북도 상주(尙州)이다. 1903년 미국 하와이로 이주하였고, 1910년(융희 4) 다시 뉴욕으로 이주하였다. 대한인국민회 북미지방총회 뉴욕지회에 가입하여 조국의 독립과 한인교포 교육을 위해 힘썼다. 1914년

  • 최갑룡 / 崔甲龍 [역사/근대사]

    1904-미상.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다른 이름은 최우진(崔又震)이다. 본적은 평안남도 평양시(平壤市)이다. 1924년 11월 일본 도쿄에서 이홍근(李弘根)·한원열(韓源烈) 등과 함께 사상서적을 읽고, 평안북도출신 학생독서회를 조직하였다. 1927년 10월 귀국한

  • 최경호 / 崔京鎬 [역사/근대사]

    1894-1923.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적은 함경북도 종성군(鐘城郡)이다. 1920년 독립운동가 최조륙(崔助陸)의 경호원이 되어 북간도에서 활동하였다. 같은 해 7월 일본관헌의 밀정을 데려오라는 경호부장 다른 이명화(李明花)의 명을 받고, 김승훈(金承勳)의 장

  • 최관용 / 崔寬用 [역사/근대사]

    1899-1946. 독립운동가. 황해도 연백 출신. 1919년 3·1운동 후 만주로 망명하여 홍범도(洪範圖) 장군이 지휘하던 대한독립군(大韓獨立軍)에 가입하였고, 1920년 봉오동전투(鳳梧洞戰鬪)에 대한독립군 제1대대 제3중대 특무정교(特務正校)로 참전하여 많은 전공을

  • 최광 / 崔廣 [역사/근대사]

    1882-1918.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적은 경상남도 의령군(宜寧郡) 용덕면(龍德面)이다. 1907년 보성전문학교(普成專門學校) 경제학전문과(經濟學專門科)를 졸업하였다. 1908년(융희 2) 영남지방의 인재양성을 목적으로 박정동(朴晶東)·이하영(李夏榮) 등 경

  • 최규창 / 崔圭昌 [역사/근대사]

    1908-1949. 독립운동가. 전라남도 영암 출신. 1926년 당시 광주고등보통학교에 재학중 장재성(張載性)·임주홍(林周弘)·정우채(鄭瑀采)·안종익(安鍾翊)·김창주(金昌柱)·왕재일(王在一)·정남균(鄭南均)·박인생(朴仁生)·김광용(金匡溶)·채영석(蔡泳錫)·김한필(金漢苾

  • 최금경 / 崔金莖 [역사/근대사]

    1908-1957.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다른 이름은 최봉식(崔鳳植)·최량(崔良)이다. 본적은 경상남도 남해군(南海郡) 삼동면(三東面)이고, 독립운동 당시 주소는 경성부(京城府: 현 서울) 종로구(鍾路區) 가회동(嘉會洞)이다. 조선총독부 장학생으로 일본 도쿄 와세

  • 최금봉 / 崔錦鳳 [역사/근대사]

    1896-1983. 독립운동가. 평안남도 진남포 출신. 1918년 삼숭소학교(三崇小學校) 교사로 재직하면서 동지들을 규합하여 비밀결사대조직과 군자금모금운동을 전개할 것을 결의하였다. 1919년 평안도의 부인들을 규합하여 항일비밀결사인 대한애국부인회(大韓愛國婦人會)를 결

  • 최낙종 / 崔洛鍾 [역사/근대사]

    1864-1945. 항일기의 독립운동가·노동운동가.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고성에서 독립선언서를 필사하고 태극기를 제작하여 3월 20일 구만면의 국천 모래사장에서 900여명의 농민과 함께 봉기하여 선두에서 독립만세를 외치며 활약하였다. 3.1운동의 주동자로

  • 최능찬 / 崔能贊 [역사/근대사]

    1881-1932. 독립운동가. 평안남도 강서 출신. 대동군 금제면 원장 장날인 1919년 3월 4일, 최능현(崔能賢)·송현근(宋賢根) 등이 주동한 반석면 상사리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이날의 만세운동은 반석교회와 원장교회가 중심이 되어 계획하던 중, 3월 2일 상사리

  • 최동식 / 崔東植 [역사/근대사]

    생몰년 미상. 한말의 애국지사. 1905년 을사조약이 일제의 강압으로 늑결되자 조약의 폐기를 주장하였고, 또한 조약체결에 찬동한 박제순(朴齊純)·이지용(李址鎔)·이근택(李根澤)·이완용(李完用)·권중현(權重顯) 등 5대신의 처형을 주장하는 고발장을 제출하였다가 붙잡혀 4

  • 최동오 / 崔東旿 [역사/근대사]

    1892-미상. 독립운동가. 일명 최학원(崔學源)·지석호(池錫浩). 호는 의산(義山). 평안북도 의주 출생. 1919년 3·1운동 때 향리에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가 그뒤 만주로 망명, 정의부(正義府)에 참가, 김동삼(金東三)·현익철(玄益哲)·김이대(金履大)·김원식(

  • 최동환 / 崔東煥 [역사/근대사]

    1907-1946.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적은 전라남도 영암(靈巖)이다. 1931년 6월 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靈巖邑)에서 일제가 도로보수공사를 시작하였는데 공사에 동원된 부역인원들이 부당한 대우를 받자 노동자들을 규합하여 노동시간 단축 등을 요구하며 시위를

  • 최동희 / 崔東曦 [역사/근대사]

    1890-1927년. 독립운동가. 서울 출신. 1919년 3·1운동 때 서울에서 참여한 뒤 상해(上海)로 망명하였다. 1922년 7월 천도교의 독립운동단체인 고려혁명위원회(高麗革命委員會)를 조직하여 부위원장 겸 외교부장에 선임되었으며, 연해주로 건너가 계속 독립투쟁을

  • 최두욱 / 崔杜旭 [역사/근대사]

    1891-1956.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적은 경상북도 경산(慶山)이고, 독립운동 당시 주소는 미국 하와이이다. 1941년 4월 20일 미국 하와이 호노룰루에서 재미한족연합위원회(在美韓族聯合委員會)가 결성되자 의사부위원(議事部委員)으로 활동하였으며, 1944년

  • 최두필 / 崔斗弼 [역사/근대사]

    1891-1930.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거주지는 함경남도 단천군(端川郡) 하다면(何多面)이다. 함경남도 단천군 하다면·복귀면·수하면·이중면 지역 주민들은 평소 땔나무를 팔고 숯을 만들어 팔아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일본 치하의 정부에서 산림보호를 명목으

  • 최륜 / 崔崙 [역사/근대사]

    미상-1920년 11월 26일.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국민회(國民會) 소속으로 중국 길림성(吉林省) 연길현(延吉縣)에서 재무위원(財務委員) 등을 역임하였다. 항일활동 중 일본군에게 체포되어 취조를 받던 중 탈출하였으나, 1920년 11월 26일 국자가(局子街)에서

  • 최린 / 崔麟 [역사/근대사]

    1878-미상. 3·1독립만세운동 때 민족대표 33인 중의 한 사람. 호는 고우(古友), 도호(道號)는 여암(如庵). 함경남도 함흥 출신. 중추원의관(中樞院議官) 덕언(德彦)의 아들이다. 도필두(都必斗)에게서 한학(漢學)을 배우고, 18세에 상경하여 각지를 유람하였다

  • 최만혁 / 崔萬爀 [역사/근대사]

    1887-1974. 독립운동가. 일명 만혁(萬赫). 평안북도 개천 출신. 1919년 3·1운동에 참가하고 독립단을 조직, 군자금을 모금하여 만주에서 결성된 한족회(韓族會)에 송금하였다. 이해 5월 만주로 건너가 유하현(柳河縣)에 설립된 신흥무관학교(新興武官學校)에서 수

  • 최면식 / 崔勉植 [역사/근대사]

    1891-1941. 독립운동가. 경기도 포천 출신. 1910년대 국내 독립운동단체인 대한광복회에 가입하여 활약한 애국지사이다. 1914년 제1차세계대전 발발로 정국이 어수선할 때 만주로 망명할 것을 계획하여 황해도 해주 오찬근(吳讚根)의 집에서 자금을 모으다가 일본경찰

  • 최명석 / 崔命錫 [역사/근대사]

    1913-1968.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적은 경상남도 사천군(泗川郡) 삼천포면(三千浦面)이고, 독립운동 당시 주소는 경상남도 부산(釜山) 범일동(凡一洞)이다. 1933년 1월 2일 부산에서 교사 생활을 하던 중, 동료 교사 김두영(金斗榮) 등과 함께 남산동(南

  • 최명식 / 崔明植 [역사/근대사]

    1880-1961. 항일기의 독립운동가. 호는 긍허(兢虛). 청년들을 계몽시키기 위해 면학회를 조직하고 산업 증진과 교육의 장려 등 여러 가지 사업을 추진하였다. 신민회에 가입하였으며 상하이 임시정부, 한국독립당에서 꾸준히 정치활동을 펼쳤다.

  • 최명현 / 崔明鉉 [역사/근대사]

    1892-1944. 독립운동가. 황해도 해주 출신. 1919년 2월 해주군 해주읍 남본정(南本町) 예배당 목사 오현경(吳玄卿)이, 민족대표 33인 중 1인인 박희도(朴熙道)가 김명신(金明信)을 통하여 보낸 독립선언문 300매를 인수하고, 만세시위를 준비할 때 참여하였다

  • 최병규 / 崔丙圭 [역사/근대사]

    1881-1931. 독립운동가. 대구 출신. 1910년대 국내 독립운동단체의 대표적인 대한광복회에 가입하여 활약한 애국지사이다. 1915년에 결성된 대한광복회의 회원으로 군자금 수합에 힘을 쏟던 중, 1916년 광복회 총사령 박상진(朴尙鎭)의 계획하에 김진만(金鎭萬)의

  • 최병무 / 崔秉武 [역사/근대사]

    1918-1942.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적은 평안남도 대동(大同)이다. 평안남도 평양(平壤) 숭실상업학교(崇實商業學校)에서 수학하였다. 1936년 재학 도중 일본인에 의한 조선인 차별 정책을 체험하고, 6월 13일 동지들과 함께 항일비밀결사단체인 일맥회(一麥會

  • 최병선 / 崔秉善 [역사/근대사]

    1886-1943년. 독립운동가. 일명 동선(東善)·병선(炳善). 평안북도 정주 출신. 1919년 3·1운동 때 고향 정주에서 만세운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가 잡혀 8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1920년 1월 출옥과 동시에 상해(上海)로 망명하여 공동조계에 거주하면서 영

  • 최병수 / 崔炳秀 [역사/근대사]

    1876-1919. 독립운동가. 충청남도 아산 출신. 1919년 3월 1일 이래 전국적으로 독립만세운동이 확대되고 있음을 알고, 선장면·신창면·도고면 등 3개 면민의 연합만세운동 총책임자로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4월 4일 200여명의 만세시위군중이 모인 선장 장

  • 최병일 / 崔秉一 [역사/근대사]

    1883-1939.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다른 이름은 최치순(崔治順)이다. 본적은 경기도 안성(安城)이다. 1919년 4월 1일 경기도 안성 양성면(陽城面)과 원곡면(元谷面) 일대에서 시행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이 운동은 이유석(李裕奭)·최은식(崔殷植)·홍

  • 최병호 / 崔炳鎬 [역사/근대사]

    미상-1924. 독립운동가. 강원도 출신. 부모를 따라 어렸을 때 만주로 건너가 통화(通化)에서 소학교를 졸업하였다. 1919년 3·1운동이 발생하자 중동선(中東線) 일대에서 동지를 규합하여 항일운동을 전개하였다. 1923년 항일무장단체인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의 헌병

  • 최봉설 / 崔鳳卨 [역사/근대사]

    1897-1973년.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호는 이붕(以鵬)이고, 다른 이름은 최계립(崔溪立)이다. 출생지는 중국 연길현 지인향 와룡동(현 연길시 소관향 민흥촌)이다. 부인은 김하규(金河奎)의 딸 김신희(金信姬)이다. 1920년 일제의 조선은행 회령지점에서 수송중

  • 최봉원 / 崔鳳元 [역사/근대사]

    1913-2000.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사회주의운동가. 다른 이름은 최동광(崔東光)이다. 본적은 평안북도 신의주(新義州)이다. 형은 최봉록(崔鳳錄)이다. 돈을 벌 목적으로 형과 함께 중국의 화북(華北)으로 가서 행상을 하던 중에 제남(濟南) 근처에서 1938년 4

  • 최봉직 / 崔奉稷 [역사/근대사]

    1896-1961. 독립운동가. 황해도 벽성 출신. 1919년 3·1운동 때 해주에서 만세시위운동에 가담한 뒤 만주로 망명하여 1920년 1월 유하현 삼원보에 있는 군사학교를 이수하고 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에 가담하였다. 군자금 모금을 위하여 국내에 잠입, 1920년

  • 최봉환 / 崔鳳煥 [역사/근대사]

    1868-미상. 독립운동가. 평안남도 순천 출신. 1910년 1월 19일 평안남도 순천교회 장로로 활동하던 중, ‘시장세반대투쟁(市場稅反對鬪爭, 일명 百一稅事件)’을 주도하여 3,000여명의 농민·상인들을 동원하여 시위 항쟁하고, 순천 세무주사 노자와(野澤辰三郞) 등

  • 최서경 / 崔曙卿 [역사/근대사]

    1902-1955년.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다른 이름은 최서경(崔曙敬)이다. 본적은 평안북도 운산(雲山)이다. 중국 상해(上海)로 이주하여 한국독립당(韓國獨立黨) 산하 애국부인회(愛國婦人會)에 가담하였다. 이 모임에서 대한민국 임시 정부 정책과 노선을 지지하였으며

  • 최석봉 / 崔石奉 [역사/근대사]

    1880-1951.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적은 전라북도 순창군(淳昌郡) 동계면(東溪面)이다. 1909년 4월 의병장 김동구(金東九) 의진(義陳)에 참가하여 박치근(朴致根)·한자선(韓子先)·박화숙(朴化淑) 등 동지 11명과 함께 순창·임실(任實)·남원(南原) 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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