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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형 / 金基瀅 [역사/근대사]
1887-1943. 항일기의 독립운동가. 호는 해악(海岳). 만주에서 독립운동과 육영사업을 벌이다 상해로 망명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활동하였고 군자금을 모으는데 노력하였다. 병인의용대·한국독립당을 조직하였고 한국광복군 창립에 참여하였다.
김기휴 / 金起休 [역사/근대사]
1895-미상. 일제강점기 항일운동가. 지금의 제주도 서귀포시(西歸浦市) 성산읍(城山邑) 신풍리(新豐里)에서 출생하여 고성리(古城里)로 이주한 뒤 농사를 지었다. 평소 민족주의(民族主義) 노선인 성산청년회가 주관한 성산면 체육대회의 씨름경기 중 한국인 선원과 일본인
김길통좌리공신교서 / 金吉通佐理功臣敎書 [역사/조선시대사]
1472년 문신 김길통을 좌리공신 4등에 책록한 교서. 공신교서. 1축. 보물 제716호. 녹권은 왕명을 받들어 공신도감(功臣都監)에서 발급하는 것이므로 이 문서와 같이 왕이 직접 내리는 문서는 교서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 문서는 담황색의 생견(生絹: 生絲로 짠 깁
김낙두 / 金洛斗 [역사/근대사]
미상-1921.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일제에게 국권을 빼앗기자 독립운동을 위해 목숨을 바치기로 결심하고 만주(滿洲)로 이주하였다. 그곳에서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에 가담하여 곽문(郭文)·김동삼(金東三)·김응섭(金應燮)·김형식(金衡植)·남정섭(南廷燮)·양규열(梁圭烈)
김낙서 / 金洛西 [역사/근대사]
1890-1920.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적은 함경북도 경원군(慶源郡)이다. 1919년 독립만세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자 만주(滿洲) 일대에서도 항일투쟁을 위해 김청봉·김현규·이범윤·진학신·최우익 등을 중심으로 한 의군단(義軍團)이 조직되었다. 이때 만주에서 의
김낙선 / 金樂先 [역사/근대사]
1881(고종 18)-1925. 한말의 의병·독립운동가. 일명 낙진(洛振). 전라남도 부안 출신. 1909년 의병장 이용서(李用西)의 부대에 가담하여 총기 15정 등으로 무장한 의병 30여명과 함께 고부·부안·태인 등지를 근거로 활동하였다. 같은해 3월 일본군 기병대
김낙용 / 金洛用 [역사/근대사]
1860-1919. 항일기의 독립운동가. 호는 맹암(孟巖). 천도교에 입교한 뒤 각지를 돌아다니며 교리를 전파하였다. 초산(楚山)에서 만세시위운동을 벌이다 일본경찰에 의해 체포되었고 신의주감옥에서 옥사하였다.
김낙일 김천찰방 해유문서 / 金洛一 金泉察訪 解由文書 [정치·법제/법제·행정]
김낙일 김천찰방 해유문서. 1806년(순조 6) 3월 19일 후임관이 겸순찰사에게 첩정을 올렸고, 동년 3월 20일 경상도관찰사겸순찰사가 호조에 문서이관, 동년 월 일에 호조에서 이조로 문서를 이관하였다. 김낙일(金洛一)은 1804년(순조 4) 2월 13일에 본직을 제
김낙행 / 金樂行 [종교·철학/유학]
1708(숙종 34)∼1766(영조 42) 조선 후기의 학자. 아버지는 교리 김성탁. 어머니는 무안박씨로 통덕랑 진상의 딸이다. 이재의 문인이었다. 아버지가 이재를 변호하다 유배되자 아버지를 따라가서 봉양하였다. 저서로는《계몽질의》·《구사당집》 등이 있다.
김낙현 / 金洛鉉 [역사/근대사]
1902(광무 6)-미상. 일제 강점기 독립군·사회주의운동가. 출생지는 러시아 연해주 니콜리스크-우스리스크 얀치헤 크라브이고, 독립운동 당시 주소는 러시아 니꼴라예프스크이다. 1906년(광무 10) 부모를 따라 아무르 강변의 니꼴라예프스크로 거주지를 옮겨 간 후 소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