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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관묵 / 金寬默 [역사/근대사]
1894-1967.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관은 일선(一善)이고, 본적은 경상남도 거창군(居昌郡) 가조면(加祚面)이다. 1919년 3월 20일 경상남도 거창군 가조면 장기리(場基里)에서 독립만세운동이 전개될 때, 일본 헌병들의 무력진압에 의해 김병직(金秉直)·어명
김관보 / 金官寶 [역사/근대사]
1882-1925. 항일기의 독립운동가. 호는 석산(石山). 독립운동에 필요한 군자금을 모았으며 북로군정서(北路軍政署)에 입대한 뒤 김좌진의 휘하에서 활약하였다. 일본관공서를 습격하는 등 꾸준한 독립운동을 벌이다 일본경찰과의 총격전에서 순국하였다.
김관성 / 金觀聲 [역사/근대사]
생몰년 미상. 독립운동가·애국계몽가·사회사업가. 일명 관성(觀星). 평안남도 평양 출신. 3·1운동 뒤 항일독립투쟁을 목적으로 장명환(張明煥)·이춘산(李春山) 등과 북간도로 이주하였다. 이때 그들은 간도 지방의 교민단체인 한족회(韓族會)의 비활동성에 불만을 품은 현익
김관식시선 / 金冠植詩選 [문학/현대문학]
김관식의 시집. 맨 앞에 실린 「창세기초(創世記艸)」를 비롯하여, 「산림경제(山林經濟)」·「신라소묘」·「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양생명(養生銘)」·「동양의 산맥」·「자하문 밖」의 시들은 젊은 혈기가 넘치고 원색적인 감수성을 동양적인 정서를 바탕으로 내비치고 있다.
김관오 / 金冠五 [역사/근대사]
1901-1965. 독립운동가. 호는 우당(愚堂). 서울 출신. 1919년 보성중학교 재학중에 3·1운동에 참가하여 선전문을 비밀리에 배부하다가 종로경찰서에 체포되어 고문을 당하고 경성지방검사국으로 이송되었으나 증거불충분으로 석방되었다. 그뒤 평강에 있는 친척집에 피신
김관용 / 金寬龍 [역사/근대사]
1900-1975.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승려. 본적은 충청남도 서산군(瑞山郡) 해미면(海美面)이다. 충청남도 서산군 해미면에 위치한 해미공립보통학교(海美公立普通學校)에서 수학하였다. 학생으로 재학 중 1919년 3월 24일 이계성(李啓聖)로부터 독립만세운동에 대한
김관주 / 金觀柱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관리(1743∼1806). 1772년 청명류사건을 홍봉한 일파의 사주로 보고, 홍씨의 척신정치를 비판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유배되었다. 정조가 즉위하자 이 소는 당시 왕세손인 정조를 해치려는 음모로 비판되었고, 시벽당쟁의 원인이 되었다. 이후 정순대비가 수
김관준 / 金寬俊 [예술·체육/국악]
생몰년 미상. 서도소리의 명창. 〈배뱅이굿〉의 창시자. 한말에서 민족항일기 초기에 걸쳐 활약하였다. 평안남도 용강 출신으로 선배인 허득선(許得善)에 이어 서도소리 명창으로 이름을 떨쳤다. 그는 용강군 해운면 신덕산(新德山)의 보림사(寶林寺) 주지로 있었던 적이 있으며,
김관호 / 金觀鎬 [예술·체육/회화]
항일기의 서양화가(1890-?). 고희동에 이어 우리나라의 두 번째 양화가로서 동경미술학교를 졸업하였다. 주로 평양과 서울을 오가면서 개인전을 열고 회화연구소인 소성회(塑星會)를 개설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벌였지만 그의 작품은 거의 전하는 게 없다.
김광두 / 金光斗 [종교·철학/유학]
1562(명종 17)∼1608(선조 41). 조선 중기의 문신. 유성룡의 문인이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에 정경세·이전·이준·전식·조정 등과 같이 함창·황령 등지에서 창의하여 의병을 모집, 왜군과 맞서 싸웠다. 1606년 사마시에 합격하였다. 효곡서원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