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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색결과
박접무 / 撲蝶舞 [예술·체육/무용]
조선시대 순조 때 창작된 향악정재(鄕樂呈才)의 하나. 6인이 전대(前隊)·중대(中隊)·후대(後隊)로 둘씩 짝을 지어 춤을 추는데 전대는 두 사람이 앞에 나란히 서고, 중대는 전대와 후대 중간에서 좌우로 갈라 서고, 후대는 뒤에 나란히 선다. 창사(唱詞)는 순한시로서
박정걸 / 朴廷杰 [종교·철학/유학]
1683년(숙종 9)∼1746년(영조 22). 조선 후기 성리학자. 부친은 박하상이다. 갈암 이현일과 그 아들 밀암 이재의 문하에서 수학하며 과거에 응시하지 않고, 오직 학문에만 전념하며, 성리학 연구에 매진하였다. 제산 김성탁·기암 박관선 등과 도의로써 교유하였다.
박정양 / 朴定陽 [정치·법제/정치]
조선 후기의 대신(1841∼1904). 외교가. 주미 조선공사. 독립협회 창설 관여. 1866년(고종 3)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요직을 두루 거쳤다. 주미전권공사에 임명되어 미국 대통령에게 신임장을 제정하였고 만민공동회에 참석하였다.
박정양시장 / 朴定陽諡狀 [정치·법제]
조선후기의 대신 박정양(朴定陽)에 대해 시호를 추증하기 위해 1908년(융희 2) 7~8경 이근명(李根命)이 지어서 봉상사에 올린 시장. 이 시장은 박정양과 친구 사이이던 원임의정부의정대훈 이근명이 지었다. 이 시장의 작성 시기는 문면에 나타나 있지 않으나 박정양에게
박정원 / 朴鼎元 [종교·철학/유학]
1574년(선조 7)~1626년(인조 4). 조선 중기 문신. 부친은 박문충이다. 1609년(광해군 1) 진사시에 합격, 광흥봉사에 올랐다. 이후 1616년(광해군 8) 증광시 병과에 22위로 합격, 승정원 주서를 역임하였다. 1617년(광해군 9)에는 모친을 봉양하
박정희 / 朴正熙 [정치·법제/정치]
1917년∼1979년. 군인·정치가.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제5·6·7·8·9대 대통령. 1937년 대구사범학교를 졸업, 3년간 국민학교 교사 근무, 만주군관학교와 일본육군사관학교를 졸업했다. 1946년 육사 2기로 졸업하고, 육군포병학교장, 제5사단장, 제6사단장
박제가 / 朴齊家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실학자(1750∼1805). 1779년 3월 규장각에 검서관직을 설치해 서얼 출신들이 하급관리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이 열리자, 이덕무·유득공·서이수과 함께 초대 검서관으로 임명되었다. 1794년 2월 춘당대무과에 장원하여 오위장이 되었다가 영평현령으로 옮
박제근 / 朴齊近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819∼1885). 한성부주부를 거쳐 형조정랑을 지냈고 호조정랑에 기용되어 영건도감의 낭청으로 일하기도 하였다. 강화부판관을 역임하던 중 강화도조약이 체결 때 조선측 접견대관 신헌을 도왔다.
박제상설화 [문학/구비문학]
신라 눌지왕 때의 충신 박제상에 관한 설화. 고구려와 일본에 볼모로 잡혀간 왕자를 구하고 자신은 죽음을 당한 박제상의 인물전설이다. 그의 아내가 기다리다가 죽어 망부석이 되었다는 아내의 죽음 설화도 포함된다. 『삼국유사』에는 김제상으로 되어 있다. 이 설화에는 역사적
박제순 / 朴齊純 [정치·법제/정치]
조선 후기의 문신(1858∼1916). 을사늑약 체결 당시 외부대신. 을사오적 중 한 사람이다. 1893년 호조참판 때 청나라 군사 파병 문제를 협의, 1894년 충청도관찰사 때 동학농민 토벌에 참여하였다. 경술국치 때 내부대신으로서 ‘한일합방조약’에 서명 후 자작의
박종갑 / 朴宗甲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742∼1799). 1770년(영조 46)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설서에 임명된 후 세자시강원에 들어가 세자를 보좌했다. 우부승지·형조참판을 거쳐 특리 평안감사로 재직할 때 백성들의 잘 돌보았다.
박종남 / 朴從男 [역사/조선시대사]
1559년(명종 14)∼1620년(광해군 12). 조선 중기 무신‧의병. 증조는 박형손, 조부는 박민수, 부친은 박응희이다. 외조부는 신천강씨이다. 부인은 생원 박전의 딸이다. 지금『창의록』일부가 세상에 전한다고 한다. 난이 평정된 후에 서울에서 무반의 청직을 지냈으
박종린 / 朴從鱗 [종교·철학/유학]
1496년(연산군 2)∼1553년(명종 8). 조선 중기 문신. 증조는 박이경, 조부는 박소종, 부친 박눌의 5남 중 막내로 태어났다. 외조부는 김계행, 형 박거린‧박형린‧박홍린‧박붕린이 있다. 부인은 사용교위 문억경의 딸 감천문씨이다. 1532년(중종 27) 별시
박종신 / 朴宗臣 [종교·철학/유학]
1754년(영조 30)~미상. 조선 후기 문신. 증조는 박필철, 조부는 박사복이다. 부친 통훈대부 수원진관병마절제도위 박재원과 모친 조명원의 딸 사이에서 태어났다. 동생은 박종유이다. 부인은 최수일의 딸이다. 1806년(순조 6) 이태순‧조양진‧한긍리 등과 함께 홍문록
박종악 / 朴宗岳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735∼1795). 1766년(영조 42) 사마시를 거쳐 정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한 뒤 관직에 진출하였다. 승지·대사간을 역임하였으나 형의 죄에 연루되어 유배되었다. 복직 후 관직이 우의정까지 올랐고 동지정사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박종열 / 朴宗說 [종교·철학/유학]
1754년(영조 30)∼1822년(순조 22). 조선 후기 유학자. 부친은 박주승이다. 성담 송환기의 문인으로 학행과 효도로 이름이 알려졌다. 그의 저작은 격조가 높고 다양하였으며 문집으로《창백문집》목활자본 6권 2책이 있는데, 부·시·서를 비롯하여〈대학경의〉·〈중용
박종유 / 朴宗儒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학자(1675∼1755). 1728년(영조 4) 문과별시에 급제한 뒤 관직에 진출하여 요직을 두루 거쳐 동지중추부사에 이르렀다. 시·서·화에 능했으며 저서로는《사변》1책이 있다.
박종화 / 朴鍾和 [문학]
1901년∼1981년. 시인·소설가·비평가. 1920년 휘문의숙 졸업, 1921년 <장미촌>에 시 <우유빛 거리> 등을 발표하여 등단, 1922년 <백조> 동인이 되었다. 초기에는 주로 시를 썼으나, 역사소설을 쓰기 시작, 1932년 <금삼의 피>, 1937년 <대춘부
박종후 / 朴宗垕 [종교·철학/유학]
1792년(정조 16) 4월 24일∼1864년(고종 1). 조선 후기 성리학자. 부친은 박시원이고, 모친은 안동권씨이다. 형제로는 박종교·박종서가 있다. 두 명의 부인을 두었는데, 첫째 부인은 김영우의 딸 선성김씨이며, 둘째 부인은 장윤석의 딸 인동장씨이다. 정재 유
박종훈 / 朴宗薰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773∼1841). 1834년 순조가 죽자 그 행장을 지었고, 1837년 실록청총재관으로서《순조실록》 편찬에 참여하였다. 좌의정에 올랐으나 풍양조씨 세도의 압력으로 사직, 판중추부사가 되었다. 저서로는《사례찬요》· 편서로는《반남박씨세보》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