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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 : 인물
김태식 / 金泰植 [예술·체육/체육]
해방 이후 서울대학교 체육담당 교수, 대한수상경기연맹 부회장 등을 역임한 체육인.교육자. 충청남도 공주 출생. 경성제이고등보통학교, 일본 동경고등사범학교 체육과를 졸업하였다. 1929년 8월 조선체육회와 동아일보사가 공동주최한 제1회 수영강습회를 마치고 이원식(李元植)
김태일 / 金兌一 [종교·철학/유학]
1637(인조 15)∼1702(숙종 28). 조선 후기의 문신. 윤안의 증손, 할아버지는 득선, 아버지는 단, 뒤에 곤에게 입양되었다. 1660년(현종 1)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장령·헌납·문학·보덕을 차례로 역임하였고, 1694년 사간으로 있을 때 서인인 한중혁
김태중 / 金台重 [종교·철학/유학]
1649년(인조 27)∼1711년(숙종 37). 조선 후기 유학자. 숭정처사 표은 김시온의 후손이다. 1693년(숙종 19) 갈암 이현일의 천거로 건원릉참봉에 제수되었으나 나가지 않은 채 후진 양성에 전념하였다. 1679년(숙종 5)에 병자호란 때 창의한 선조 김시온
김택영 / 金澤榮 [종교·철학/유학]
항일기의 학자(1850∼1927). 홍문관 찬집소에 보직되어 문헌비고 속찬위원으로 있으면서 통정대부에 올랐다. 학부 편집위원이 되었으나 사직하였다. 계몽사상가 양계초·장병린 등과 교유가 있었다. 저서로는《한국소사》등 다수가 있다.
김평묵 / 金平默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학자(1819∼1891). 홍필직의 문하에 있다가 1852년(철종 3) 스승이 죽은 뒤 이항로의 학설을 따라 심즉리의 설에 기울여졌다. 1900년 규장각제학에 추증됐고 미원서원·보산서원에 배향됐다. 저서로는 《중암선생문집》·《중암고》·《근사록부주》·《학통
김하구 / 金夏九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676∼1762). 해남현령이 되어《여씨향약백록동규》를 따라 향약을 실시하였다. 유배되었다가 3년 뒤에 풀려났으나 은퇴생활을 하였다. 영조의 부름을 받았으나 고령으로 나아가지 못하였다. 저서로《추암집》 6권 4책이 전한다.
김하종 / 金夏鐘 [종교·철학/유학]
1793년(정조 17)∼미상. 조선 후기의 화가. 첨사를 지낸 득신의 아들, 건종의 동생이다. 그 역시 화원이었으며 벼슬은 첨사를 지냈다.아버지를 이어 인물화에 뛰어나 1830년 순조어진 원유관본 도사를 비롯하여, 1852년과 1861년의 철종어진 도사에 참여하였다.
김학무 / 金學武 [역사/근대사]
1911∼1943.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명은 김준길(金俊吉)이다. 출신지는 함경북도 온성(穩城)이다. 1938년 조선의용대를 창설한 뒤 항일선전활동을 전개하였다. 이후 조선의용대 부지대장‧조선의용대 화북지대 정치지도원‧화북조선독립동맹 중앙집행위원 겸 선전부 부장
김학성 / 金學性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807∼1875). 종정 증손, 할아버지는 명연, 아버지는 참판 동헌, 어머니는 이의곤의 딸이다. 철종 즉위 후는 중용되어 여러 요직을 거쳤다. 흥선대원군 집권 시에도 계속 중용되어 규장각제학·예문관제학·홍문관제학·좌찬성 등을 역임하였다. 예조판서
김학우 / 金鶴羽 [종교·철학/유학]
1862년(철종 13)∼1894년(고종 31). 조선 말기의 개화파 관료. 러시아어·일본어·중국어에 능통하였다. 1878년과 1880년 두 차례에 걸쳐 변경사무로 블라디보스토크에 파견되었던 장박의 주선으로 서울에서 정계에 진출, 1884년부터 1886년까지 기기국위원
김학진 / 金鶴鎭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838∼?). 전라도에서 동학농민군이 봉기했을 때, 전라감사 김문현의 후임으로 임명되었다. 홍문관학사·궁내부특진관이 되었으며, 그 뒤 시종원경·태의원경을 거쳐 홍문관태학사가 되었다. 일제로부터 남작의 작위를 받았다.
김한계 / 金漢啓 [종교·철학/유학]
생몰년미상. 조선 전기의 문신. 거두 증손, 할아버지는 유, 아버지는 현감 영명, 어머니는 이지유의 딸이다. 1438년(세종 20) 생원으로 식년문과에 정과로 급제했다. 좌정언, 직제학, 성균관직강, 승문원교리, 기주관, 승정원부승지 등을 역임하였다. 1455년 좌익원
김한동 / 金翰東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740∼1811). 영남지방 재해민의 기근을 들어 환곡의 환수를 연기하여줄 것을 진언하였다. 대사간에 기용되었으며, 이어서 승지를 지냈다. 천주교를 믿어, 각종 제례에 참석하지 않아 지평 정언인의 탄핵을 받고 명천에 유배되었다.
김한록 / 金漢祿 [종교·철학/유학]
생몰년 미상. 조선 후기의 문신. 현감 운경의 아들, 영조의 장인인 한구의 종제, 우의정 관주의 아버지이다. 한원진의 문인이다. 관직은 세자익위사세마에 그쳤으나, 종질인 구주와 함께 김상로·홍계희·정휘량·신만 등 벽파 대신들을 조종하여 1762년(영조 38) 사도세자
김한섭 / 金漢燮 [종교·철학/유학]
생몰년 미상. 조선 말기의 학자. 아버지는 노현, 어머니는 해남윤씨 상열의 딸이다. 이항로의 문인으로, 이항로가 죽은 뒤에 다시 임헌회와 기정진의 문인이 되었다. 1883년엔 그의 스승 임헌회의 문집인『고산문집』간행을 위하여 오랫동안 고창에 있었다. 저서로는『오남문집』
김한철 / 金漢喆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701∼1759). 사간원정언으로 재임할 때 붕당 타파를 상소하였다. 대사간에 발탁되었으며, 도승지·이조참판·경기관찰사·함경도관찰사 등 내외요직을 두루 역임하였다. 양전의 실시를 주장하였고, 나중에 우참찬에 이르렀다.
김항 / 金恒 [종교·철학/유학]
1826년(순조 26)∼1898년(고종 35). 조선 말기《정역》의 저자. 20세 때 민씨와 결혼하여 가정을 꾸몄으나 살림에는 뜻이 없어 독서만 하였으며, 영가를 계속 불렀다. 일찍이 이운규 밑에서 최제우·김광화와 함께 공부하였는데, 특히 이운규의 영향을 많이 받은
김항중 / 金恒重 [종교·철학/유학]
1653-1717. 조선후기 유학자. 부친은 방분, 모친은 이만겸의 녀이다. 1653년 12월 18일 예천 류전에서 태어났다. 1673년 조부와 부친을 연달아 잃고 1681년 모친상을 당하였다. 형제자매를 돌보며 재산을 아끼지 않았다. 1717년 9월 18일 병으로 졸
김해 / 金楷 [종교·철학/유학]
1633(인조 11) - 1716(숙종 42). 아버지 김광현, 어머니 청주한씨이다. 경사에 두루 섭렵하여 약관도 안 되어 이미 주역을 읽어 심오한 이치까지 깨우쳐 <계몽복역>을 저술하였다. <상례비요>도 의심나고 잘못된 곳을 고정하였다. 또한 농암 김창협과 함께 제
김해랑 / 金海郎 [예술·체육/무용]
해방 이후 한국무용예술인협회 초대 이사장 및 회장을 역임한 무용가.한국무용가. 1915년 경상남도 마산 출신의 무용가로 본명은 김재우(金在宇)이다. 어린 시절 동래 권번에서 전통무용을 배웠고 일본 유학 시절에는 이시이 바쿠와 최승희에게 현대무용을 사사받았다. 1939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