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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봉령 / 朴鳳齡 [종교·철학/유학]

    1671(현종 12)∼1718(숙종 44). 조선 후기의 문신. 진환 증손, 할아버지는 증휘, 아버지는 성익, 어머니는 서정리의 딸이다. 현감 민종로의 딸과 혼인하였다. 1699년(숙종 25)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헌납·이조좌랑·부수찬·수찬·이조정랑·부교리·교리·

  • 박사 / 博士 [정치·법제/법제·행정]

    조선시대 성균관·홍문관·승문원·교서관 등의 정7품 관직. 정원은 성균관에 3인, 홍문관에 1인, 승문원에 2인, 교서관에 2인이다. 연산군 때 성균관을 혁파하면서 박사직도 다른 관서로 나누어 보냈다가 1506년(중종 1) 중종반정으로 원상회복되었다. 1895년(고종

  • 박사수 / 朴師洙 [종교·철학/유학]

    1686(숙종 12)∼1739(영조 15). 조선 후기의 문신. 세기 증손, 할아버지는 태정, 아버지는 필영, 어머니는 안진의 딸이다. 대사헌 필명에게 입양되었다. 1723년(경종 3) 증광문과에 장원급제하여, 1727년(영조 3) 승지가 되었으며, 그 이듬해 대사성이

  • 박사익 / 朴師益 [종교·철학/유학]

    1675(숙종 1)∼1736(영조 12). 조선 후기의 문신. 동량 후손, 할아버지는 태두, 아버지는 참봉 필하, 어머니는 윤반의 딸이다. 1712년 정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해 형조판서, 공조판서, 예조판서 등을 역임하였다. 그가 벼슬하던 시기는 격변기여서 평탄한 벼슬

  • 박사해 / 朴師海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711∼1778). 결성의 안핵어사가 되어 홍양해의 산송사건을 해결하여 이름을 떨쳤다. 대사간을 거쳐, 이조참의가 되었으나 과단성이 없고 무사안일하다 하여 파직되었다가 이듬해 복직되었다. 정치적 수단도 뛰어나서 내외의 요직을 두루 지냈고, 외교적

  • 박상 / 朴祥 [종교·철학/유학]

    1474(성종 5)∼1530(중종 25). 조선 중기의 문신. 광리의 증손, 할아버지는 소, 아버지는 지흥, 어머니는 서종하의 딸이다. 1501년 식년 문과에 을과로 급제, 교서관정자, 승문원교검, 전라도사, 사간원헌납, 담양부사, 순천부사, 나주목사 등을 역임하였다

  • 박상검 / 朴尙儉 [역사/조선시대사]

    1702(숙종 28)∼1722(경종 2). 조선 후기의 환관. 심익창에게 수학하였다. 김일경과 원휘가 차례로 영변부사로 부임해 심익창의 집에 자주 드나들자 이들과 친교를 맺게 되었다. 김일경으로부터 윤취상·원휘·심익창 등을 통해 받은 은화 수천 냥을 이용해 환관과 궁녀

  • 박상은시장 / 朴尙恩諡狀 [정치·법제]

    조선 초기의 문신 박상은(朴尙恩)에 대해 시호를 추증하기 위해 1910년(융희 4) 8월 민종묵(閔種默)이 지어서 봉상사에 올린 시장. 이 시장은 사후 약 490년이 지난 1910년에 후손 박영배(朴英培)가 병조판서 홍문관대제학을 역임한 민종묵에게 부탁하여 지은 것이다

  • 박상은증시문서 / 朴尙恩贈諡文書 [정치·법제]

    1910년(융희 4) 8월 고예조판서 박상은(朴尙恩)에게 '무숙(武肅)'이란 시호를 발급한 칙첩. 문서에는 '절충어모왈무 집심결단왈숙'이라 적어 무숙이란 시호를 내린 연유를 적었다. 1910년 8월 26일《순종실록》의 기사에 의하면 순종은 57명에게 시호를 주고 3명의

  • 박상현 / 朴尙玄 [종교·철학/유학]

    1629(인조 7)∼1693(숙종 19). 조선 중기의 학자. 수림의 아들, 어머니는 이부민의 딸이다. 경전에 널리 통하였으며 특히 『대학』에 밝았다. 그 뒤『태극도설』·『통서』·『황극경세』·『역학계몽』등의 성리서를 깊이 연구하여『음양소장도』를 저술하였다. 저서로는『우

  • 박서 / 朴瑞 [종교·철학/유학]

    1707년(숙종 33)∼1765년(영조 41). 조선 중기의 학자. 1746년(영조 22) 참봉에 임명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았다. 그는 경전이나 성리서 및 예학은 물론, 선가·불가·복서·의약·천문·지리·재정·군사 등에까지도 통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주요저술로는〈대학구

  • 박석고개 / 박석고개 [지리/자연지리]

    서울특별시 은평구 갈현동과 불광동·구파동 사이에 있는 고개. 동쪽에 북한산이 높이 솟아 있는 데 비해 서쪽은 낮은 구릉성 산지가 남북방향으로 뻗어 있다. 박석고개를 분수령으로 남쪽은 연신내(일명 延曙川)와 불광천이 낮은 저지를 만들고, 북쪽으로는 창릉천(昌陵川)이 흘러

  • 박석기 / 朴錫基 [예술·체육/국악]

    1899년∼1952년. 거문고산조의 명인. 전라남도 옥과 출신. 일본 동경제국대학을 졸업하였으나 예술에 뜻을 두고 거문고산조의 창시자인 백낙준(白樂俊)에게서 거문고풍류와 거문고산조를 배워 명인(名人)이 되었다. 향리에 초당을 짓고 명인·명창들을 초빙하여 사범으로 삼고

  • 박선 / 朴璿 [종교·철학/유학]

    1668(현종 9)∼1707(숙종 33). 조선 후기의 문신. 할아버지는 순, 아버지는 성동, 어머니는 권주의 딸이다. 1696년(숙종 22)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여러 지역의 현감과 병조정랑·사헌부장령 등을 지냈다. 관직은 동몽교관을 지냈다. 저서로는『도와집』

  • 박선장 / 朴善長 [종교·철학/유학]

    1555(명종 10)∼1616(광해군 8). 조선 중기의 문신·학자. 아버지는 전, 어머니는 웅천주씨이다. 1605년(선조 38) 51세의 늦은 나이에 증광별시에 급제하여 성균관전적이 되었고 성리학에 힘썼다. 1608년 예안현감, 1614년(광해군 6) 경상도사 등을

  • 박성석 / 朴星錫 [종교·철학/유학]

    1650(효종 1)∼1709(숙종 35). 조선 후기의 무신. 아버지는 동주이다. 송시열의 문인이다. 1676년(숙종 2)에 무과에 급제, 1680년에 비변사의 낭관에 보직되고, 1682년 창성방어사를 거쳐, 뒤에 전라좌도수군절도사가 되었다. 1689년 기사환국으로 한

  • 박성양 / 朴性陽 [종교·철학/유학]

    1809년(순조 9)∼1890년(고종 27). 조선 말기의 문신. 제일 아들, 어머니는 이운원의 딸이다. 이지수의 문인이다. 송근수의 천거로 1880년(고종 17)에 선공감감역에 임명되고, 이어 사헌부지평·호조참의·동부승지·호조참판·대사헌 등을 역임하였다. 저편서로

  • 박성양증시문서 / 朴性陽贈諡文書 [정치·법제]

    1910년(융희 4) 8월 증규장각제학 박성양(朴性陽)에게 '문경(文敬)'이란 시호를 발급한 칙첩. 문서에는 '도덕박문왈문 숙야경계왈경'이라 적어 문경이란 시호를 내린 연유를 적었다. 1910년 8월 25일 정2품 규장각제학에 추증되었다.

  • 박성양특증문서 / 朴性陽特贈文書 [정치·법제]

    1910년(융희 4) 8월 25일. 대사헌을 지낸 고 박성양(朴性陽)을 정2품 자헌대부, 규장각제학에 특증하는 임명장. 경술국치 4일 전의 문서이다.《순종실록》1910년 8월 25일 기사에는 기사에는 박성양을 정2품 시호를 내린다는 순종의 명이 있다.

  • 박성옥 / 朴成玉 [종교·철학/유학]

    1690(숙종 16)∼1743(영조 19). 조선 후기의 문신. 할아버지는 세환, 아버지는 희민, 어머니는 권태행의 딸이다. 1719년(숙종 45) 사마시에 합격, 1725년(영조 1)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728년 무신란 때는 향인의 의병장이 되어 정부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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