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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색결과
박규수 / 朴珪壽 [정치·법제/정치]
조선 후기의 문신·개화사상가(1807∼1877). 신미양요 주도. 북학파 거두 박지원의 손자다. 연행사 부사를 역임하였다. 1848년 증광시에 병과로 급제하여 관직에 나갔다. 1864년 고종이 즉위하자 특별히 도승지에 임명되었다. 1866년 2월 평안도관찰사가 되었다
박규순 / 朴奎淳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740∼?). 동부승지로 같은 시파 윤영희를 구출하려다가, 오히려 벽파에게 탄핵을 받아 위도로 유배되었다. 이후 교리가 되어 수입 물품 교역을 엄금하도록 하여 사치풍조를 막았다. 이어 우부승지를 역임하고, 공조참의가 되었다.
박규양 / 朴奎陽 [종교·철학/유학]
1840년(헌종 6)∼1903년(광무 7). 조선 말기 학자. 조부는 박재기, 부친은 박재망, 모친은 권석원의 딸이다. 조부 박재기로부터 가학을 전수받았다. 조부의 장원에서 후학들을 가르치는 일에 힘썼다. 김세락 등과 교유하였다. 문집으로《금남문집》4권이 전한다. 1
박규진 / 朴煃鎭 [종교·철학/유학]
1855년(철종 6)∼미상. 조선 말기 학자. 부친은 박시한이다. 어려서부터 부친으로부터 학문을 익혔으며, 장성하여서는 척암 김도화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뛰어난 문장으로 인해 당대 이름난 문장가 김진룡‧박기진‧박시주 등과 함께 이름을 나란히 하였다. 문집으로『창고집』
박규희 철산부사 해유문서 / 朴珪熙 鐵山府使 解由文書 [정치·법제/법제·행정]
해유문서. 1874년(고종 11) 10월 14일 후임관이 평안도관찰사에게 첩정을 올렸고, 동년 11월 초1일에 평안도관찰사겸병마수군절도사순찰사관향사평양부윤이 호조에 문서를 이관, 1876년(고종 13) 12월 일에 호조에서 이조로 문서 이관, 동년 12월 13일에 이조
박금슬 / 朴琴瑟 [예술·체육/무용]
해방 이후 『춤동작』을 저술한 무용가.한국무용가. 1922년 경기도 여주에서 출생했다. 일본여자전문학교 상과를 졸업하고, 1939~1943년에 이시이 바쿠[石井漠] 무용연구소에서 현대무용을 배웠다. 귀국 후 부모님의 의견에 따라 수원의 법릉사에 기거하던 곽서순 스님과
박기령 / 朴箕寧 [종교·철학/유학]
1779(정조 3) -1858(철종 8). 저자는 1816년(순조 16 ) 진사시에 합격하여 성균관에 입학해서는 오직 책만 보며 족적이 인근의 관기교밖을 벗어나지 않아 아름다운이 행실이 알려졌다. 장석우, 응와 이원조, 운산 이휘재 등과 도의로써 교유하였다. 저자는 시
박기상 / 朴岐爽 [역사/근대사]
1888-1934.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 이명(異名)은 박사국(朴士國)이다. 본관은 밀양(密陽)이고, 전라북도 익산군(益山郡) 출신이다. 아버지는 박병돈(朴秉敦)이다. 1919년 3월 19일 이정(李挺)·이병석(李秉釋)·정영모(鄭永模) 등과 함께 전라북도 익산시(益
박기수 / 朴綺壽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774∼1845). 할아버지는 좌원, 아버지는 종신, 어머니는 최수일 딸이다. 1806년(순조 6)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대사헌, 성균관대사성, 홍문관부제학 등을 역임하였다. 광주부유수가 되었으나 경기암행어사의 탄핵을 받아 파직당하였다.
박길진 / 朴吉眞 [종교·철학/원불교]
현대의 원불교인·교육자(1915∼1986). 일본 도요대학 철학과를 졸업, 1966년 동국대학교에서 명예문학박사학위, 1972년 대만문화학원에서 명예철학박사학위, 1981년 일본 불교대학에서 명예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 1942년부터 원불교에 봉직하기 시작하여 교단발전
박난영 / 朴蘭英 [종교·철학/유학]
?∼1636(인조 14). 조선 후기의 무신. 선조 때 면천군수·중군 등을 거쳐, 1619년(광해군 11) 강홍립을 따라 후금 정벌에 나갔다가 포로가 되었다. 1627년(인조 5) 정묘호란 때 후금군의 길잡이로 함께 들어왔다가 석방된 뒤, 회답관·선위사·선유사·추신사·
박달나무 / Betula schmidtii REGEL. [과학/식물]
자작나무과에 속하는 낙엽활엽교목. 높이가 30m에 달하고 수피는 벗겨지지 않으며 검은 회색이다. 잎은 호생하고 난형이며 길이 4∼8㎝로서 가장자리에 뾰족한 톱니가 있다. 꽃은 5∼6월에 피고 과수(果穗)는 길이 2∼3㎝이고 원통형으로 위를 향한다. 높이 300∼2,00
박달목 / 朴達木 [경제·산업/산업]
자작나무과에 속하는 낙엽 활엽 교목으로, 재질이 치밀하고 견고하며 비중이 큰 나무. 박달목은 재질이 단단하여 각종 공사에 다양한 용도로 쓰였는데, 쓰임새에 따라 그 규격도 다양하였다. 운반 기기인 윤여나 수레 등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대여의 기둥과 초엽, 현주, 횡량,
박달재 / 朴達─ [지리/자연지리]
충청북도 제천시 봉양면과 백운면 사이에 있는 고개. 박달재의 높이 504m로, 차령산맥의 지맥인 구학산(九鶴山, 971m)과 시랑산(侍郎山, 691m)의 안부(鞍部)에 해당한다. 박달재를 박달산·박달령·박달현(朴達峴)·박달치(朴達峙)로 부르기도 하였는데, 요즈음에는 천
박대관 / 朴大觀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의병장(1756년(영조 32)~미상). 평안도 철산에 거주하던 진사로서, 홍경래가 반란을 일으키자 의병을 일으켜 반란군 진압에 일조하고자 하였다. 관군과 연합하여 반란군을 진압하였을 뿐만 아니라, 군량미를 공급하여 난을 진압하는 데 많은 공을 세웠다.
박대완 / 朴大完 [종교·철학/원불교]
1885∼1959. 원불교의 교무. 전라남도 승주 출신. 13세에 일본으로 건너가 경도에서 소학교와 중학교를 졸업하였다. 귀국 후 인천통감부 직원·농장지배인 등으로 생활하다가 32세 때부터 만주·중국·러시아로 전전하며 항일운동을 전개하였다. 1927년 소태산을 만나 전
박도욱 / 朴道郁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관료(1681∼?). 박성서의 아들이다. 1702년(숙종 28) 식년시에서 진사에 합격했다. 이후 1728년(영조 4)에 무신별시에서 병과에 급제하였다. 관직은 군수에 올랐다.
박동길 / 朴東吉 [과학/과학기술]
1897∼1983. 지질학자. 충청남도 연기 출생. 아버지는 박용순(朴容淳)이다. 초등학교를 마치고 일본으로 건너가 고학으로 중·고등학교 과정을 거쳐 도호쿠제국대학[東北帝國大學] 이학부 지질광물학과를 1930년에 졸업하였다. 귀국 후 경성고등공업학교와 경성광산전문학교에
박동명시장 / 朴東命諡狀 [정치·법제]
조선 중기의 무신 박동명(朴東命) 시호를 추증하기 위해 1832년(순조 32)에 남병철(南秉哲)이 지어서 봉상시에 올린 시장. 이 시장은 이조판서 겸 홍문관대제학 예문관대제학 남병철이 지었다. 작성시기는 남병철의 생존 기간을 고려할 때 1832년으로 추정된다. 시장의
박동선사건 / 朴東宣事件 [정치·법제/정치]
<위싱턴 포스트>지가 재미실업가 박동선의 의회로비활동을 폭로한 데서 발단되어 한.미간의 외교마찰로까지 번진 사건. 1976년 10월 24일 <워싱턴 포스트>가 박동선이 한국정부의 기관요원으로 1970년대에 연간 50만 내지 1백만 달러 상당의 뇌물로 90여 명의 의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