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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 : 지명 > 고지명
  • 용성국 / 龍成國 [지리/인문지리]

    신라건국기 주변에 있던 소국. 석씨(昔氏)의 시조이며 왕인 탈해(脫解)가 태어난 나라이다. 『삼국유사(三國遺事)』에는 일명 정명국(正明國)ㆍ완하국(琓夏國)ㆍ화하국(花廈國)이라고도 하였으며,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다파나국(多婆那國)으로 기록되어 있다. 용성국의 함달

  • 용안 / 龍安 [지리/인문지리]

    전라북도 익산 지역의 옛 지명. 본래 고려시대에 함열현(咸悅縣) 임내의 도내산은소(道內山銀所)였는데, 1321년(충숙왕 8) 이곳 출신인 백안부개(伯顔夫介)가 원나라에서 본국에 유리한 공을 세웠으므로 용안현으로 승격시켰다. 1391년(공양왕 3)에 전주 임내의 풍저현(

  • 용주 / 龍州 [지리/인문지리]

    평안북도 용천 지역의 옛 지명. 본래 고구려의 옛 땅인데 발해의 침입으로 인하여 한때 여진족의 근거지였으나, 고려 초에 안흥군(安興郡)을 설치하였다. 1014년(현종 5) 용주방어사를 두었고, 그 뒤 용만부(龍灣府)로 고쳤다가 1311년(충선왕 3) 다시 용주로 바꾸어

  • 용진 / 龍津 [지리/인문지리]

    함경남도 문천지역의 옛 지명. 고려시대에 용진(龍津)이라 이름을 바꾸고 진(鎭)을 두었다. 1006년(목종 9)에 성을 쌓았는데 주위가 3,004척, 높이가 5척이고 삼면이 바다에 둘려 있으며 성내에 우물이 하나 있었다. 축성 후인 공민왕 때 문주(文州, 지금의 文川)

  • 용택온천 / 龍澤溫泉 [지리/인문지리]

    평안남도 성천군 영천면 용택리에 있는 온천. 원래 500년 전에 발견되었으나, 그 뒤 폐쇄되었다가 1900년경에 다시 개발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온천을 중심으로 온정(溫井)마을이 형성되었고, 특히 경원선과 평남탄광선이 통한 다음부터는 교통이 편해짐에 따라 평양을 비롯한

  • 우견현 / 牛見縣 [지리/인문지리]

    삼국시대 백제의 지명(地名). 본래 백제시대에는 마시산군(馬尸山郡)에 속하였으며, 757년(경덕왕 16)에 경덕왕이 목우현(目牛縣)으로 이름을 고쳤다. 그러나 고려시대에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지금의 충청남도 홍성군 갈산면 운곡리로 비정하고 있다.

  • 우계 / 羽溪 [지리/인문지리]

    강원도 강릉 지역의 옛 지명. 본래 고구려의 우곡현(羽谷縣, 또는 玉堂)이었는데, 신라 경덕왕이 우계로 고쳐 삼척군의 속현으로 하였다. 1018년(현종 9) 강릉에 예속시켰고, 조선 세조 때강릉대도호부에 진관(鎭管)이 설치되면서 우계면으로 직촌(直村)이 되었다. 191

  • 우곡 / 牛谷 [지리/인문지리]

    전라남도 곡성군 서부 지역에 있었던 것으로 추측되는 마한과 백제시대의 옛 지명. 마한의 연맹왕이 신하들과 국사를 논하고 있을 때, 우곡성주(牛谷城主) 주근(周勤)의 밀사가 달려와 백제의 온조왕이 웅천(熊川)주 01)에 책을 쌓고 우곡성을 넘본다는 보고를 하였다. 마한이

  • 우발수 / 優渤水 [지리/인문지리]

    고구려 「동명왕신화」에 나오는 못[澤]의 이름. 고구려 시조 동명왕의 어머니 유화(柳花)가 부모의 허락없이 해모수(解慕漱)와 혼인하였다는 이유로 아버지 하백(河伯)에게 쫓겨나, 후일 부여왕 금와(金蛙)에게 발견될 때까지 살았다고 하는 곳이다. 『구삼국사(舊三國史)』에서

  • 우봉 / 牛峰 [지리/인문지리]

    황해도 금천지역의 옛 지명. 본래 고구려의 우잠군(牛岑郡, 또는 牛嶺·首知衣)이었는데, 신라 경덕왕 때에 우봉(牛峰)으로 고쳤다. 1015년(고려, 현종 6)에는 평주(平州, 지금의 平山)의 속현이 되었고, 1062년(고려, 문종 16)에는 경기도 개성부(開城府)에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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