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형 : 제도 총 2,138건의 주제어가 있습니다.
유형 : 제도
내알자 / 內謁者 [정치·법제/법제·행정]
고려시대 액정국의 종8품 관직. 액정국은 궁중에서 왕명을 전달하거나 궁문의 자물쇠를 관리하는 등 여러 가지 잡일을 맡아보던 관청으로, 7품 이하의 남반(南班) 관직이 설치되어 내료(內僚)들이 속해 있었는데, 내알자는 남반 관직은 아니었다. 문종 때 품계가 정해졌으며,
내알자감 / 內謁者監 [정치·법제/법제·행정]
고려시대 액정국의 정6품 관직. 문종 때 액정국의 장관으로 정6품인 내알자감 1인을 두었으며, 그 아래 내시백(內侍伯, 정7품)·내알자(內謁者, 종8품) 등을 두었다.
내약방 / 內藥房 [과학기술/의약학]
조선 초기 왕이 쓰는 약재를 관장하기 위하여 설치되었던 관서. 1392년(태조 1) 7월에 반포된 관제 중에는 그 이름이 없고 어느 때부터 시작되었는지는 확인하기 어렵다. 그러나 고려 말 궁내어약을 취급하던 봉의서(奉醫署)의 제도에 따라서 건국과 함께 왕실내의 의약을
내외 / 內外 [사회/사회구조]
조선시대 남녀간의 자유스러운 접촉을 금하였던 관습 및 제도. 내외의 기원은 『예기(禮記)』내측편(內則篇) 에 “예는 부부가 서로 삼가는 데서 비롯되는 것이니, 궁실을 지을 때 내외를 구별하여 남자는 밖에, 여자는 안에 거처하고, 궁문을 깊고 굳게 하여 남자는 함부로 들
내원서 / 內園署 [정치·법제/법제·행정]
고려시대 원원을 관리하던 관서. 정종 때에 내원승이라는 관직을 지낸 사실이 있는 것으로 보아 늦어도 그 이전에 직제상으로 확립된 것으로 짐작된다. 직무는 원포와 원지를 관장하여 제향에 소채와 과일을 공급하는 것이었다. 관원은 문종 때에 영 2인과 승 2인을 두었으며,
내의 / 內醫 [과학기술/의약학]
조선시대 내의원 소속의 당하 의관. 당상 의관은 어의(御醫)라 하였다. 내의(內醫) 가운데 의술이 정통한 자는 어의로 특별히 차출해 동반(東班)으로 자리를 옮겨 임무를 맡겼는데, 이런 경우는 겸관(兼官)이라 하였다. 의약동참(議藥同參)과 침의(鍼醫)는 당상, 당하관을
내의원 / 內醫院 [과학기술/의약학]
조선시대 때 왕의 약을 조제하던 관서. 조선 건국초에 반포한 관제 중에는 그 이름이 없으나, 태종 때 왕실의 내용약을 맡은 기관으로서 내약방이 있었다. 그 뒤 1443년(세종 25) 6월에 이조에 계청하여 내약방을 내의원이라 칭하였는데, 관원 16인을 두고 3품은 제
내자시 / 內資寺 [정치·법제/법제·행정]
조선시대 왕실에서 소용되는 각종 물자를 관장하기 위하여 설치되었던 관서. 왕실에서 사용되는 쌀·국수·술·간장·기름·꿀·채소·과일 및 내연직조(內宴織造) 등을 관장하는 한편, 왕자를 낳은 왕비의 권초(捲草)를 봉안하였다.
내장원 / 內藏院 [역사/근대사]
1895년 왕실의 보물, 세전, 장원 등의 재산을 관리하던 관청. 1895년에 내장사로 잠시 바꾸었다가, 1899년에 내장원으로 명칭을 바꾸었다. 1900년에는 봉세관 13인과 공세과장, 주사, 기록과장을 각각 1인씩 두었다. 그런데 봉세관은 전국 각지에서 수세활동을
내장택보 / 內莊宅寶 [경제·산업/경제]
고려시대 왕실재정을 보충하기 위하여 일정한 자금을 토대로 하여 얻어지는 이자로 운영하는 재단. 왕실재정은 왕실 소유지인 내장전과 장·처로써 운영되고 있었다. 그러나 왕실에서 쓰는 경비는 상당히 과다하였으므로 위의 토지로도 모두 충당되기 어려워 보를 설치하여 왕실경비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