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형 : 인물 총 3,881건의 주제어가 있습니다.
유형 : 인물
김창흡 / 金昌翕 [종교·철학/유학]
1653(효종 4)∼1722(경종 2). 조선 후기의 학자. 좌의정 상헌의 증손자, 아버지는 영의정 수항, 어머니는 나성두의 딸이다. 형은 영의정을 지낸 창집과 예조판서·지돈녕부사 등을 지낸 창협이다. 이단상의 문인이다. 저서로는『삼연집』·『심양일기』등이 있다.
김채옥 / 金彩玉 [예술·체육/무용]
해방 이후 중요무형문화재 제12호 「진주검무」의 전승자로 지정된 예능보유자. 경상남도 진주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계속 살았다. 최완자(崔完子)에게 검무를 배웠으며, 진주국악원의 무용지도교사로 봉직하였다.1967년 중요무형문화재 제12호인 「진주검무(晉州劍舞)」의 예능보유
김책 / 金策 [정치·법제/정치]
1903-1951 공산주의 운동가, 정치가. 합북 학성군(현재 김책시) 사람. 중국 동북 연길지방으로 이주, 중학교 때 반제지하청년단체에 참가, 1931년 출옥 후 김일성의 항일유격대에 들어갔다. 1945년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 중앙위원회 정치위원, 1946년 평양
김천서 / 金天瑞 [종교·철학/유학]
1712년(숙종 38)∼1777년(정조 1). 조선 후기 문신·효자. 고려 김취려와 도원수 김상의 후손, 고조는 예빈시참봉 김승서, 증조는 김상정, 조부는 김옥이다. 부친 김성려와 모친 흥양유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두 명의 부인을 두었는데, 첫째 부인은 태인허씨, 둘
김천택 / 金天澤 [문학]
생몰년 미상. 조선 후기의 시조작가·가객. 김천택의 신분에 관해『해동가요』의 작가제씨에는 숙종 때의 포교라 소개되어 있다. 당시 가객들의 신분이 대부분 그러했듯이, 그도 역시 중인계층으로서 관직생활은 젊었을 때 잠시 지냈고, 거의 평생을 여항에서 가인·가객으로 지낸 것
김천흥 / 金千興 [예술·체육/무용]
일제강점기 이왕직 아악부 아악수, 아악수장 등을 역임한 국악인. 서울시 남대문 양동 출생. 목수의 아들로 태어났고, 정동보통학교를 졸업 후 1922년에 이왕직 아악부 아악생양성소 2기생으로 입소했다. 1923년 순종 황제 오순탄신연에 무동으로 참가하였고, 해금을 전공,
김철희 / 金喆熙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845∼1922). 1874년(고종 11) 증광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수찬·집의·대사성·승지·이조참의·의주부윤을 거쳐 경모궁제조·궁내부특진관을 지냈으며, 서화에도 능하였다.
김추길 / 金秋吉 [종교·철학/유학]
1603∼1686. 조선후기 학자. 아버지는 률, 어머니는 봉화 금씨이다. 1678년(숙종 4) 통정대부 절충장군 첨지중추부사에 제수되고 1684년 장렬왕후 주갑의 해에 추로의 은혜를 입어 가선대부 행용양위 부호군에 가자되었다.
김춘광 / 金春光 [예술·체육/연극]
1901년∼1949년. 극작가 겸 연출가. 본명은 김조성(金肇盛), 황해도 평산 출신이다. 일본 메이지대학(明治大學)에서 연극과 영화를 공부했다. 1935년 극단 예원좌(藝苑座)를 조직하여 「남북애화」‧「독초」‧「암흑가」‧「교정」 등 수많은 작품을 쓰면서 공연활동을 벌
김춘택 / 金春澤 [종교·철학/유학]
1670(현종 11)∼1717(숙종 43). 조선 후기의 문신. 생원 익겸의 증손, 할아버지는 숙종의 장인인 만기, 아버지는 호조판서 진구이다. 증조모 윤씨에게서 학업을 익히고, 종조부 만중으로부터 문장을 배웠다. 시재가 뛰어나며 문장이 유창하였고, 김만중의 소설「구운
김충 / 金冲 [종교·철학/유학]
1513(중종 8)∼1572(선조 5). 조선 중기의 문신. 할아버지는 삼산, 아버지는 전적 옹, 어머니는 정구의 딸이다. 1551년(명종 6) 별시문과에 갑과로 급제하여 전적에 임명된 뒤, 태상주부·형조좌랑·감찰·춘추관·기주관 등을 두루 역임하였다. 저서로는『서대이문
김충현 / 金忠顯 [예술·체육/서예]
해방 이후 「윤봉길 열사 기의비」·「백범 김구 선생 묘비」·「사육신 묘비」 등의 작품을 낸 서예가. 921년 5월 9일(음력 4월 2일) 김윤동(金潤東)의 차남으로 서울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안동(安東), 김창집(金昌集)의 6형제 중 막내 김창립(金昌立)의 후예로서,
김취로 / 金取魯 [종교·철학/유학]
1682(숙종 8)∼1740(영조 16). 조선 후기의 문신. 공조정랑 극형 증손, 할아버지는 관찰사 징, 아버지는 이조참판 유, 어머니는 송박의 딸이다. 1710년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 문학, 지평, 부수찬, 대사헌, 대사간, 도승지, 호조판서 등을 역임하였다.
김취문 / 金就文 [종교·철학/유학]
1509(중종 4)∼1570(선조 3). 조선 중기의 문신. 할아버지는 제, 아버지는 광좌, 어머니는 임무의 딸이다. 어려서부터 형 취성과 함께 박영의 문하에서 성리학을 배워 그 학통을 이었고 문장을 잘하여 이름이 높았다. 1537년(중종 32)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김취성 / 金就成 [종교·철학/유학]
1492(성종 23)∼1551(명종 6). 조선 중기의 학자. 아버지는 증이조참판 광좌, 어머니는 임무의 딸이다. 만년에는 당시의 대학자이며 재상이었던 김정국과 이언적의 추천으로 네 차례나 참봉에 임명되었으나, 모두 사직하고 한번도 부임하지 않았다. 저서로는『진락당집』
김치룡 / 金致龍 [종교·철학/유학]
1654(효종 5)∼1724(경종 4). 조선 후기의 문신. 할아버지는 절, 아버지는 문경현감 남갑, 어머니는 관찰사 홍득일의 딸이다. 1675년(숙종 1) 생원·진사에 모두 합격하고, 1691년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전적, 감찰, 예조정랑, 병조정랑, 공조참
김치인 / 金致仁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716∼1790). 1738년(영조 14) 생원시 합격, 1748년 춘당대 문과에 장원해 예문관전적과 정언을 거쳐 1766년 좌의정. 영의정이 됐으나 1772년 당파를 조성했다는 죄로 유배당했다. 정조가 즉위하자 승습주청사의 정사로서 청나라에 다
김치후 / 金致垕 [종교·철학/유학]
1692(숙종 18)∼1742(영조 18). 조선 후기의 문신. 할아버지는 우참찬 간, 아버지는 태로, 어머니는 강석하의 딸이다. 1722년(경종 2) 영소전참봉이 되고, 1726년(영조 2)에 의금부도사가 되었다. 그 해에 알성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전적이 되었다.
김태로 / 金泰魯 [종교·철학/유학]
1668년(현종 9)∼1692년(숙종 18). 조선 후기 유학자. 조부는 참봉 김수, 부친 우참찬 증 영의정 문경공 김간과 모친 증 참판 박호원의 딸 음성박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부인은 교관 강석하의 딸 진양강씨이다. 학자로 명망이 높았던 부친의 영향을 받아서 학문
김태석 / 金台錫 [예술·체육/서예]
대한제국기 「승사인보」·「청유인보」 등을 제작한 서예가.전각가. 본관은 낙안(樂安), 김태석은 대한민국 국새 1호의 인고(印稿)를 작성하였고, 중화민국의 임시 초대 총통을 지낸 위안스카이[袁世凱]의 옥새를 새긴 것으로 유명한 서예가이자 전각가이다. 김태석은 30세에 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