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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 : 근대
고형림 / 高亨林 [역사/근대사]
1907년∼1975년. 독립운동가. 경상북도 예천 출신. 1925년 일본으로 건너가 대판(大阪)·나고야(名古屋) 등지에서 노동에 종사하다가 사진기술을 배워 귀국한 뒤 한때 예천군 농회(農會)지도원으로 있었다. 생활난으로 1939년 8월 만주 안동성(安東省)으로 이주,
고환당집 / 古歡堂集 [문학/한문학]
조선 말기의 문인 강위(姜瑋)의 문집. 21권 5책. 『고환당수초(古歡堂收草)』 17권 3책에 4권 2책을 합본한 책으로 ‘추금집(秋琴集)’이라고도 한다. 당대의 석학 이건창(李建昌)이 교정하고 정만조(鄭萬朝)가 편집하였다. 시고(詩稿)에는 정건조(鄭建朝)·이건창의
고횡 / 高澋 [종교·철학/유학]
1862(철종 13)∼1947. 고조는 고보, 증조는 고몽기, 조는 고도겸이다. 아버지는 고언걸, 어머니는 조기태의 딸이다. 7세 때 중부 석애공의 엄정한 가르침을 받아 16세에는 사서삼경을 비롯한 당송의 제가의 시집들도 두루 섭렵하였다. 함께 교유한 인물로는 청초
고휴규 / 高烋圭 [역사/근대사]
1884-1954. 일제강점기 항일운동가. 본관은 제주(濟州)이며 제주도 성산읍(城山邑) 수산리에서 출생하였다. 제주의 민족주의 계열의 성산청년회가 주최한 성산면 체육대회에서 한국인 선원과 일본인 선원 등 2백여 명과 벌어진 싸움으로 체포되었다. 이 사건으로 고휴규는
곡구원기 / 谷口園記 [종교·철학/유학]
곡구원 정상관의 문집으로 총 10권 5책. 목판본. 1928년 증손 정동범이 편집, 간행하였다. 서문은 없고 권말에 정동범의 발문이 있다. 시 가운데 「조령용추」는 조령을 넘으면서 폭포와 용추의 웅장한 경관을 노래한 것이며,「도담」역시 서경시로 만경의 푸른 물결 위
곡성군읍지 / 谷城郡邑誌 [지리/인문지리]
1889년에 편찬된 전라남도 곡성군 읍지. 1책. 지도가 첨부된 사본. 표지에는 ‘全羅南道谷城郡邑誌(전라남도곡성군읍지)’로 되어 있다. 규장각 도서에 있다. 이밖에도 정조·순조 연간에 편찬된 『곡성읍지』와 『호남읍지』에 수록된 『곡성읍지』가 있다. 내용 구성은 방리(
곡용어미 / 曲用語尾 [언어/언어/문자]
체언의 통사적 기능을 나타내기 위해, 체언에 결합하여 곡용에 관여하는 문법 요소. 용언의 굴절을 활용이라 하고 체언의 굴절을 곡용이라 한다. 활용이 용언의 어간과 어미의 결합으로 다양한 문법적 기능을 나타내는 것이라면, 곡용 역시 체언이 어간이 되어 문법범주를 나타내는
곡호대 / 曲號隊 [예술·체육/국악]
1881년 이후 군대의 행진과 군례용으로 사용하기 위하여 조직된 취주악대. 중앙을 비롯한 각 지방의 대대단위의 부대에 두었다. 서양식 군대 훈련방법의 채용으로 인한 별기군 창설 이후 일본의 고대(鼓隊) 혹은 고적대(鼓笛隊)를 모방하여 만든 것이다. 본격적 서양식 군악대
곤룡포부용문보 / 袞龍袍付龍紋補 [생활/의생활]
황제의 상복(常服)인 황색 운보문사(雲寶紋紗) 곤룡포(袞龍袍) 1점과 곤룡포에 부착된 용문보(龍紋補). 대한제국 시기 황제용 황색 곤룡포로서 가슴과 등, 양어깨에 용무늬가 수놓인 원형의 용문보(龍紋補)가 부착되어 있어 '곤룡포부용문보'라는 명칭으로 지정되었다. 곤룡포는
곤양군읍지 / 昆陽郡邑誌 [지리/인문지리]
1899년에 편찬된 경상남도 곤양군(지금의 사천시) 읍지. 1책. 지도가 첨부된 필사본. 표지에는 ‘慶尙南道昆陽郡邑誌(경상남도곤양군읍지)’로 되어 있다. 내용구성은 강계(疆界)·건치연혁(建置沿革)·군명(郡名)·관직(官職)·성씨(姓氏)·산천(山川)·풍속(風俗)·방리(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