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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영돈 / 閔泳敦 [정치·법제/정치]
조선 말기의 문신(1863∼1918). 주영국 한국공사. 주이탈리아 한국공사. 민영돈은 고종조에 성균관대사성·동래부윤 등을 지냈다. 대한제국 때 비서원승·특명전권공사·봉상사제조 등을 지냈다. 민씨의 척속으로 1901년 미국·영국·벨기에 등의 주재특명전권공사를 지내며 외
민영목 / 閔泳穆 [정치·법제/정치]
조선 후기의 문신(1826∼1884). 동지사. 교섭통상사무아문 독판 역임. 1883년 독판교섭통상사무로서 조영·조독수호조약, 인천일본조계조약 등을 체결하였다. 박문국당상이 되어《한성순보》 발간에 참여하였다. 갑신정변 병조판서 재임 시에 개화당 일당에게 참살 당했다.
민영완 / 閔泳琬 [역사/근대사]
1911-1976. 독립운동가. 서울 출신.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가족을 동반하고 상해(上海)로 망명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 조직에 참여하였다. 1929년 7월 임시정부 산하의 비밀단체인 화랑사(花郞社)의 총무 겸 재무간사로 임시정부를 지원하면서 독립운동에 헌신
민영익 / 閔泳翊 [정치·법제/정치]
조선 후기의 문신·개화사상가·예술인(1860-1914). 1877년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관직에 나갔다. 1882년 7월 별기군 교련소 당상으로 임오군란을 맞아 민씨 척족세력의 거물로 몰려 가옥이 파괴당하였다. 1894년 선혜청당상으로 고종폐위 음모사건에 연루되
민영찬 / 閔泳瓚 [정치·법제/정치]
조선 후기의 문신(1873∼?). 파리 만국박람회 특파위원. 프랑스. 벨기에 특명전권공사. 민영환의 동생으로, 미국에 유학 갔다가 명성황후가 시해되자 귀국하여 개화운동에 힘썼다. 파리만국박람회 특파대사와 주프랑스특명전권공사 등을 지내며 외교분야에서 두드러진 활약을 보
민영환 / 閔泳煥 [정치·법제/정치]
조선 후기의 문신(1861∼1905). 구한말 정치가. 특명전권공사로 유럽 시찰. 을사늑약 체결 직후 자결. 1878년 문과에 급제하여 관직에 나갔다. 1887년 상리국 총판·친군전영사·호조판서가 되었다. 1895년 8월 주미 전권대사에 임명되었으나, 일제가 을미사변을
민영환선생묘 / 閔泳煥先生墓 [역사/근대사]
조선 말기 을사늑약에 항거해 순국한 민영환의 묘. 경기도 기념물 제18호. 경기도 용인시 구성면 마북리에 있다. 봉분 앞에 상석과 향로석, 장명등, 그 우측에 묘비가 있으며, 묘역 앞 좌우로 문인석 1쌍이 배열되어 있다. 높은 사성 위에 곡담이 설치되어 있어 다소 어울
민옹전 / 閔翁傳 [문학/한문학]
1757년(영조 33)박지원(朴趾源)이 지은 한문 전기(傳記). 실존 인물인 민유신(閔有信)이 죽은 뒤에 그가 남긴 몇 가지 일화와 작자 스스로 민유신을 만나 겪었던 일들을 엮고 뇌(誄)를 붙인 전기이다. 『연암별집 燕巖別集』「방경각외전 放璚閣外傳」에 실려 있다. 박지
민요 / 民謠 [문학/구비문학]
민중들 사이에서 저절로 생겨나서 전해지는 노래. 특정 개인의 창작이거나 아니거나 창작자가 문제되지 않는다. 악보에 기재되거나 글로 쓰이지 않고 구전(口傳)된다. 엄격한 수련을 거치지 않고 생활하면서 자연스럽게 익힐 수 있다. 악곡이나 사설이 지역에 따라 노래 부르는 사
민요시 / 民謠詩 [문학/현대문학]
1920년대 민요의 정서와 운율을 계승하고자 했던 근대시의 한 경향. 1920년대 민요·동요의 중요성을 강조한 민요조 서정시 운동은 시문학사의 중요한 움직임이었으며, <진달래꽃>에서 시작되는 민요조 서정시의 창작은 근대시 발전에 큰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당시뿐만 아니
민우수 / 閔遇洙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학자(1694∼1756). 문충공 민진후의 아들이다. 봉릉참봉·세자세마·명릉참봉 등을 거쳐 사헌부대사헌·성균관좨주·세자찬선·원손보양관 등을 역임하였다. 사후 자헌대부 좌참찬에 증직되었다. 저서로는《정암집》이 있다.
민유중 / 閔維重 [종교·철학/유학]
1630(인조 8)∼1687(숙종 13). 조선 후기의 문신. 여준의 증손, 할아버지는 기, 아버지는 광훈, 어머니는 이광정의 딸이다. 숙종의 비 인현왕후의 아버지이다. 대사헌 기중과 좌의정 정중의 동생이다. 1651년 증광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을 거쳐 예문
민응기 / 閔應祺 [종교·철학/유학]
생몰년 미상. 조선 중기의 학자. 이황의 문인이다. 1565년(명종 20) 왕자의 사부가 되어, 선조연간에도 그 직에 머물렀다. 벼슬은 현감에 그쳤으나, 그가 가르쳤던 광해군이 1608년 즉위하여 왕자 때의 사부였던 그를 하락·박광전 등과 함께 추모하면서 제물을 내려주
민응수 / 閔應洙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684∼1750) 광훈 증손, 할아버지는 시중, 아버지는 진주, 어머니는 정상징의 딸이다. 1728년 이인좌의 난 때 호서안무사의 종사관으로서 엄정하게 군기를 잡는 공을 세워 동래부사가 되었으며, 후에 우의정에 이르렀다. 후에 이광좌·조태억의 관작추
민응형 / 閔應亨 [종교·철학/유학]
1578(선조 11)∼1662(현종 3). 조선 후기의 문신. 총 증손, 할아버지는 치중, 아버지는 승지 호, 어머니는 홍익세의 딸이다. 1612년(광해군 4)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 승문원에 보임되었다. 승문원박사, 지평, 좌부승지, 대사간, 병조참의, 좌부승지
민의원 / 民議員 [정치·법제/정치]
일반적으로 양원제 국회의 하원. 상원인 참의원에 대응되는 것으로, 우리나라 제헌국회에서는 단원제를 채택했으나 1952년 7월 4일 대통령직선제와 양원제를 골자로 하는 이른바 발췌개헌안이 통과됨으로써 국회는 참의원과 민의원의 2원제로 되었다. 민의원은 보통, 평등, 직접
민이승 / 閔以升 [종교·철학/유학]
1649(인조 27)∼1698(숙종 24). 조선 후기의 문신. 어려서부터 과거시험에는 뜻을 두지 않고 사서와 육경을 통독하면서 문장에 뛰어난 재질을 보였다. 윤증의 문하에 들어가 이미 그 능력을 인정받았고, 당대의 석학이던 김창협과 학문에 관한 토론을 벌이면서 그 명
민적법 / 民籍法 [역사/근대사]
조선 말기에 제정, 공포된 호적에 관한 법률. 1909년 3월 법률 제8호로 공포되었다. 조선시대에 식년호적제도와 이를 보완하는 인보정장법, 호패법 등이 있었다. 시행 초기에는 호적부의 관장을 경찰관서에서 맡는 등 행정 단속법의 성질을 지녔으나 일제 강점 후인 1915
민전 / 民田 [역사/고려시대사]
백성이 소유해 경작한 토지. 민전은 국용(國用)과 녹봉의 주된 재원이었다. 민전은 전체의 토지 중에서 가장 많은 면적을 차지하였고, 왕토사상에 의해 생산물의 일부(10분의 1)를 전조(田租)로서 국가에 납부하였다. 또한, 조선시대는 공물이나 군역·요역도 점차 민전의
민절서원 / 愍節書院 [교육/교육]
서울특별시 동작구 노량진동에 있었던 서원. 1681년(숙종 7) 사육신을 모시는 사당으로 설립되었다. 이후 1691년(숙종 17) 12월 민절사(愍絶祠)라고 사액되었다가 1692년(숙종 18) 1월 서원으로 고쳤다. 조선 후기 사육신(死六臣)을 배향한 대표적인 서원이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