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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 : 조선
부사잉차문후관전진보정부연유북양아문자 / 副使仍差問候官轉進保定府緣由北洋衙門咨 [정치·법제]
자문. 1882년 고종이 이전에 문후관 이재덕(李載德)을 청에 파견하여 대원군의 환국을 위해 노력했지만 이루어지지 않자, 연공 부사로 파견된 예조판서 민종묵(閔種默)에게 문후관을 겸임하에 하여 사절로서 일을 마친 뒤 곧장 보정부로 가서 대원군의 건강을 살필 수 있도록
부사잉차문후관전진보정부연유예부자 / 副使仍差問候官轉進保定府緣由禮部咨 [정치·법제]
자문. 1882년 고종이 이전에 문후관 이재덕(李載德)을 청에 파견하여 대우너군의 환국을 위해 노력했지만 이루어지지 않자, 연공 부사로 파견된 예조판서 민종묵(閔種默)에게 문후관을 겸임하게 하여 사절로서 일을 마친 뒤 곧장 보정부로 가서 대원군의 건강을 살필 수 있도록
부사잉차문후관전진보정연유총독부당자 / 副使仍差問候官轉進保定府緣由總督府堂咨 [정치·법제]
자문. 1882년 고종이 이전에 문후관 이재덕(李載德)을 청에 파견하여 대원군의 환국을 위해 노력했지만 이루어지지 않자, 연공 부사로 파견된 예조판서 민종묵(閔種默)에게 문후관을 겸임하게 하여 사절로서 일을 마친 뒤 곧장 보정부로 가서 대원군의 건강을 살필 수 있도록
부사정 / 副司正 [정치·법제/법제·행정]
조선시대 오위의 종7품 관직. 초기에는 섭사정(攝司正)이라 하였으나 1466년(세조 12) 1월에 종7품의 부사정으로 변개하여 ≪경국대전≫에 법제화되었다. ≪경국대전≫ 당시의 정원은 309인이었으나 후기에 오위의 기능이 유명무실화되면서 그 수도 250인으로 감해졌으며
부사직 / 副司直 [정치·법제/법제·행정]
조선시대 오위의 종5품 관직. 태종 초에는 섭사직(攝司直)이라 하였으나 오위체제가 갖추어지면서 1467년(세조 13)에 종5품 부사직으로 개칭되어 법제화되었다. ≪경국대전≫ 당시의 정원은 123인이었으나 후기에 오위의 기능이 유명무실하게 되자 그 수가 102인으로 줄
부사포 / 副司鋪 [정치·법제/법제·행정]
조선시대 액정서에 소속된 종8품의 잡직. 의식 때 궁궐내의 설비관계를 맡아보았다. 정원은 3인이다. 체아직으로, 2인은 대전의 별감으로, 1인은 문소전(文昭殿)의 별감이나 왕비전(王妃殿)의 별감 중에서 차임되었다.
부산 국청사 청동북 / 釜山 國淸寺 靑銅金鼓 [예술·체육/공예]
1666년에 제작된 불교 의식용 쇠북. 보물 제1733호. 범어사 성보박물관에 있는 국청사 금고는 직경 66㎝ 크기, 무게 100근의 비교적 규모가 큰 편에 속하는 금고로 뒷면에는 1666년에 승장 태응(太應), 신열(愼悅), 영득(永得)이 연화산 장천사 금고로 제작하
부산구설해저전선조관 / 釜山口設海底電線條款 [정치·법제]
조선과 일본 양국 정부간에 일본 규슈(九州)로부터 부산항을 잇는 해저 전선 설치에 관한 조약 체결을 검토하기 위해 작성한 문서. 실제 조약은 1883년 1월 24일에 체결되었으며, 6개 조항으로 이루어져 있다. 관련 기사는《고종실록》권20, 고종 20년(1883) 1월
부산서원 / 浮山書院 [교육/교육]
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 진변리에 있는 서원. 1719년(숙종 45)에 지방유림의 공의로 김집(金集)과 이경여(李敬輿)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같은해에 ‘부산(浮山)’이라고 사액되어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오던 중, 대원군의
부산진순절도 / 釜山鎭殉節圖 [예술·체육/회화]
조선 후기의 화가 변박(卞璞)이 그린 기록화. 보물 제391호. 비단 바탕에 채색. 세로 145㎝, 가로 96㎝. 육군박물관 소장. 임진왜란 당시의 격전 장면을 도회(圖繪)한 그림으로, 「동래부순절도」와 함께 1709년에 처음 그려졌으나 없어지고, 이 그림은 176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