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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 : 인물
  • 김진걸 / 金振傑 [예술·체육/무용]

    해방 이후 한국무용협회 이사 및 고문, 국립무용단 초대 지도 위원, 한성대학교 교수 등을 역임한 무용가.한국무용가·신무용가. 서울에서 출생하였고, 본명은 김형표(金亨杓)이다. 이채옥 현대무용연구소, 길목 무용연구소, 장추화 무용연구소에서 수학하였다. 1955년 동양극장

  • 김진규 / 金鎭圭 [종교·철학/유학]

    1658(효종 9)∼1716(숙종 42). 조선 후기의 문신. 반 증손, 할아버지는 증 영의정 익겸, 아버지는 영돈녕부사 만기, 어머니는 한유량의 딸이다. 누이 동생이 숙종비 인경왕후이다. 송시열의 문인이다. 1686년 정시 문과에 갑과로 급제하였다. 대사성, 예조판

  • 김진동 / 金鎭東 [종교·철학/유학]

    1727년(영조 3)∼1800년(정조 24). 조선 후기 유학자·문장가. 증조는 김성구, 조부는 김여당, 부친은 김경린이다. 생부 김경온과 생모 이수겸의 딸 진성이씨와의 사이에서 태어났다. 부인은 이만영의 딸 연안이씨이다. 이수연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동암 유장원·

  • 김진옥 / 金鎭玉 [종교·철학/유학]

    생몰년 미상. 조선 후기의 문신. 고조부는 장생, 할아버지는 이조판서 익희, 아버지는 승지 만균이다. 송시열의 문인이다. 음보로 기용된 뒤에 1714년(숙종 40)에 청주목사가 되었는데, 읍민을 잘 돌보아 조정으로부터 포상을 받았다. 1718년에는 수원부사가 되었고,

  • 김진태 / 金振泰 [문학/고전시가]

    조선 숙종·영조 때의 가인(歌人). 이형상(李衡祥)의 가집인 『악학습령(樂學拾零)』의 작가 목록에 신분이 서리(胥吏)로 밝혀져 있다. 1766년(영조 42)에 증보한 『해동가요』의 부록인 『청구가요(靑丘歌謠)』에 김수장(金壽長)이 그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 김진하 / 金鎭河 [종교·철학/유학]

    1786년(정조 10)∼1865년(고종 2). 조선 후기 문신. 증조는 김세진, 조부 김구환이다. 부친 김기중과 모친 김구련의 딸 의성김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1805년(순조 5) 증광시 생원 3등 48위로 진사시에 합격하였고, 1841년(헌종 7) 정시 병과 6위로

  • 김진형 / 金鎭衡 [문학/고전시가]

    조선 후기의 문신. 아버지는 김종수(金宗壽)이다. 1850년(철종 1)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 1853년(철종 4)홍문관교리로 있을 때 이조판서서기순(徐箕淳)의 비행을 탄핵하다가 수찬남종순(南鍾順)에게 몰려 한때 명천(明川)으로 유배되었다. 1856년(철종 7)문과중시

  • 김진흥 / 金振興 [예술·체육/서예]

    조선후기 「대학장구」·「전해심경」 등의 작품을 낸 서예가. 본관은 선산(善山). 1654년 역과(譯科)에 급제하였는데, 글씨를 잘 써 전문학관(篆文學官)에 등용되었으며, 관직은 호군(護軍)에 이르렀다. 여이징(呂爾徵)에게 전(篆)을 익혔고, 명나라 사신 주지번(朱之蕃)

  • 김질 / 金礩 [종교·철학/유학]

    1422년(세종 4)~1478년(성종 9) 개국공신 김사형(金士衡)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김승(金陞)이고, 아버지는 동지중추부사 김종숙(金宗淑)이며, 어머니는 이양직(李良直)의 딸이다. 성삼문(成三問)·박팽년(朴彭年) 등의 집현전 학사와 함께 단종 복위를 꾀하는 모

  • 김질 / 金質 [종교·철학/유학]

    1496(연산군 2)∼1555(명종 10). 조선 중기의 학자. 안변부사 언룡 증손, 할아버지는 을만, 아버지는 통례원찬의 복중, 어머니는 주부 이원경의 딸이다. 그의 인물됨을 높이 사서 김인후는 그의 집을 영모라 하였으며, 유희춘도 그의 행위를 경모하였다. 한때는 기

  • 김질간 / 金質幹 [종교·철학/유학]

    1564(명종 19)∼1621(광해군 13). 조선 중기의 문신. 할아버지는 광우, 아버지는 성균박사 응구, 어머니는 노경기의 딸이다. 1601년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 병조좌랑 등 내외의 여러 관직을 역임하다가 1608년(광해군 즉위년)에 지평, 1612년 병조정랑

  • 김집 / 金集 [종교·철학/유학]

    1574-1656. 조선 효종때의 예학자. 성리학자. 김장생의 아들이다. 아버지와 송익필에게서 예학을 전수받았다. 대사헌을 거쳐 이조판서가 되어 효종과 함께 북벌을 계획하였다. 부친 김장생과 함께 조선예학의 기본적 체계를 완비하였다. 저서로는 <신독재유고>, 편서로는

  • 김징 / 金澄 [종교·철학/유학]

    1623(인조 1)∼1676(숙종 2). 조선 후기의 문신. 계 증손, 할아버지는 인백, 아버지는 공조정랑 극형, 어머니는 정호의 딸이다. 어릴 때 이식에게 글을 배웠고, 그 뒤 송준길의 문인이 되었다. 1652년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학유, 주서,병조좌랑, 정언

  • 김창룡 / 金昌龍 [정치·법제/국방]

    항일기의 군인(1920∼1956). 1941년부터 일본 헌병대 군속으로 근무하다가 관동군 헌병대에서 대공사찰을 담당했다. 광복 후엔 경비사관학교에 입교하여 소령·육군특무대장·준장·소장으로 진급했고, 특무대장 재직 때에는 공산당 색출과 군내의 적색분자 제거에 공헌했으나

  • 김창숙 / 金昌淑 [정치·법제/정치]

    현대의 유학자·독립운동가·정치인(1879∼1962). 김구와 함께 민족분열을 막기 위해 노력하였으며, 이승만 정권 때는 독재를 막기 위한 투쟁을 벌였다. 성균관대학교 초대 총장에 취임하였다.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수여되었다. 저서로는《심산만초》와《벽옹만초》가 있다.

  • 김창언 / 金昌彦 [역사/근대사]

    1899년(광무 3)∼1930년 7월 21일.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거주지는 함경남도 단천군(端川郡) 하다면(何多面)이다. 함경남도 단천군 하다면‧복귀면‧수하면‧이중면 지역 주민들은 평소 땔나무를 팔고 숯을 만들어 팔아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일본 치하의

  • 김창즙 / 金昌緝 [종교·철학/유학]

    1662(현종 3)∼1713(숙종 39). 조선 후기의 문신·학자. 아버지는 영의정 수항, 어머니는 나성두의 딸이다. 여섯 형제 중 다섯째로 태어났는데, 형 창집·창협·창흡·창업과 함께 문장대가로 당시 육창이라 불렸다. 조봉원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왕자사부, 예빈시주

  • 김창집 / 金昌集 [종교·철학/유학]

    1648(인조 26)∼1722(경종 2). 조선 후기의 문신. 좌의정 상헌 증손, 할아버지는 동지중추부사 광찬, 아버지는 영의정 수항, 어머니는 호조좌랑 나성두의 딸이다. 창협·창흡의 형이다. 이른바 노론 4대신으로 불린다. 정언, 지돈녕부사, 우의정, 좌의정, 영의

  • 김창하 / 金昌河 [예술·체육/무용]

    조선후기 가전악, 전악, 집박악사 등을 역임한 음악인. 본관은 경주(慶州). 서울 출신. 전공은 가얏고와 정재(呈才)이다. 대대로 음악의 명문 집안에서 정조 때의 악사 대건(大建)의 둘째아들로 태어났다. 1816년(순조 16) 가전악(假典樂)에 임명되었고, 1827년

  • 김창협 / 金昌協 [종교·철학/유학]

    1651-1708. 조선 숙종 때의 성리학자. 김수항의 아들, 김창집, 김창흡의 형제이다. 송시열의 문인. 1682년 과거급제하여 이조정랑 등의 벼슬을 하였다. 사단칠정과 이기의 문제에 있어서는 이황의 입장을 따라 사단이 주리이고, 칠정이 주기라고 보았다. 저서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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