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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 : 조선 > 조선 후기
유재건 / 劉在建 [문학/한문학]
조선후기 『법어』, 『겸산필기』 등을 저술한 유학자. 옥천부원군(玉川府院君) 유창(劉敞)의 후손이었으나 가세가 몰락해 서리계급이 됐다. 주위 사람들로부터 신동 소리를 들었으며, 시와 글에 두루 능했고 특히 서예를 잘했다. 전서(篆書)·해서(楷書)에 뛰어났다고 한다. 오
유종춘 / 柳宗春 [종교·철학/유학]
1720년(숙종 46)∼1795년(정조 19). 조선 후기 문신. 유성룡의 후손, 부친은 나옹 유운이다. 1791년(정조 15) 유성룡의 후손으로서 음직에 천거되어 의금부도사 등을 역임, 수직으로 첨지중추에까지 올랐다. 후에 자헌대부 이조판서로 추증되었으며, 풍은군에
유주 / 柳澍 [종교·철학/유학]
1568(선조 1)∼1639(인조 17). 조선 중기의 학자. 아버지는 중번이다. 공부를 늦게 시작하였으나, 학업을 크게 성취하여 기재라는 평을 받았다. 1613년(광해군 5) 당시 권력을 장악하고 있던 이이첨과 정인홍 등이 폐모론을 주장하자 포의의 신분으로 감히 입궐
유주목 / 柳疇睦 [종교·철학/유학]
1813년(순조 13) ∼1872년(고종 9). 조선 후기 유학자·의병장. 유성룡의 후손, 증조는 유광수, 조부는 유심춘이다. 1835년(헌종 1) 한성시에, 1842년(헌종 8) 향시에 합격하였으나 회시에 낙방한 뒤 과거를 단념하고 돌아와 계당을 짓고 학문에 전념하
유중교 / 柳重敎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학자(1832∼1893). 김평묵과 함께 이항로의 문하에서 수학했다. 1852년 이항로의 명으로 《송원화동사합편강목》을 편수했다. 1876년에는 선공감가감역에 제수되었으나 취임하지 않았다. 1881년 척사위정의 소론이 일어나자 김평묵과 함께 춘추의리론을
유중림 / 柳重臨 [과학기술/의약학]
조선 후기의 의관(?∼?). 유상의 후손이다. 영조 때에 태의원의약을 지냈고, 1766년(영조 42)에《증보산림경제》를 편찬하였다. 그 뒤 태의원내의가 되어 서반의 녹, 즉 군직의 녹을 받으면서 의무에 종사하였다.
유중무 / 柳重茂 [종교·철학/유학]
1652년(효종 3)∼1728년(영조 4). 조선 후기 문신. 증조는 유인, 조부는 유경즙. 부친 유사와 모친 여흥민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1694년(숙종 20) 알성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1695년(숙종 21) 이후 사헌부지평·정언 등을 역임하였다. 소론계열의
유중외대소민인등척사윤음 / 諭中外大小民人等斥邪綸音 [언론·출판/출판]
사부(史部) - 조령·주의류(詔令·奏議類) 헌종(憲宗) 찬, 금속활자본(갑인자), 1839년(헌종 5), 불분권 1책(한문 7, 언문 9, 합 16장).政院傳敎 1839년 10월 18일에 천주교를 배격하는 내용의 척사윤음이다. 한문윤음 뒤에 언문윤음이 합본되어 있다.
유직 / 柳稷 [종교·철학/유학]
1602(선조 35)∼1662(현종 3). 조선 중기의 학자. 할아버지는 복기, 아버지는 우잠이다. 1630년(인조 8) 진사시에 합격하였으나 벼슬길에 나아가는 것을 서두르지 않고, 서사를 탐독하여『중용』과『대학』의 연구에 힘썼다. 저서에 <백졸암문집>이 있다.
유진 / 柳袗 [종교·철학/유학]
1582(선조 15)∼1635(인조 13). 조선 중기의 문신. 아버지는 성룡이다. 임진왜란 뒤 아버지에게서 글을 배우고 1610년(광해군 2) 사마시에 합격하였다. 봉화현감, 형조정랑, 청도군수, 지평 등을 역임하였다. 이조참판에 추증되었으며, 안동병산서원에 제향되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