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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 : 조선
  • 보사공신 / 保社功臣 [역사/조선시대사]

    1680년(숙종 6) 경신대출척에 공을 세운 신하에게 내린 칭호 또는 그 칭호를 받은 사람. 김만기·김석주에게 1등공신을, 이입신에게 2등공신을, 남두북·정원로·박빈에게 3등공신을 내렸다. 이 중 정원로는 역모와 관련 있다고 하여 6월에 복주(伏誅)되어 삭훈되었다.

  • 보산서원 / 寶山書院 [교육/교육]

    황해도(현재의 황해남도) 벽성군 나덕면 통산리에 있었던 서원. 1659년(효종 10)에 지방유림의 공의로 이이(李珥)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이이는 1574년(선조 7)에 황해도관찰사로 부임하였다가 2년 뒤에 관직을 버리고 청계당(淸溪堂

  • 보상무 / 寶相舞 [예술·체육/무용]

    조선 순조 때 창작된 향악정재(鄕樂呈才)의 하나. 창사(唱詞)는 1828년(순종 28) 『진작의궤』 부편(附編)에 전하며, 1829년 2월의 진찬(進饌)에서는 악장이 없는 여령정재(女伶呈才)로 추어졌으며 그 해 6월의 진찬에서는 보상반(寶相盤)이라 하여 익종(翼宗) 예

  • 보성향교 / 寶城鄕校 [교육/교육]

    전라남도 보성군 보성읍 보성리에 있는 향교. 397년(태조 6)에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配享:학덕 있는 사람의 神主를 모시는 것) 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보성읍 남문 밖 주봉리 구계동에 창건되었다. 이후 임진왜란 때까지의 연혁은 자세하지 않으며

  • 보소당인보 / 寶蘇堂印譜 [언론·출판]

    저자 신위(1769-1847). 검인본. 1첩. 표제에는 만연필로 <보소당인보>라 서명을 필서하였다. 1책 28장으로 총 459방의 인장이 찍혀 있다. <보소당인보>는 국내에 여러 판본이 현존한다. 1책, 2책, 4책, 6책, 12책, 14책본 등 다양한 인본이 있으며

  • 보안도 / 保安道 [지리/자연지리]

    지명. 강원도 찰방도의 하나. 1455년(세조 1)에 대창·보안도를 합하여 대창도(大昌道)라 하고 찰방을 파견하던 것이 세조(世祖) 8년 정역개편에서 대창도(大昌道)가 다시 은계(銀鷄)·보안(保安) 양찰방도(兩察訪道)로 나누어져서 보안도 소관역(保安道所管驛)으로 정비

  • 보양관 / 輔養官 [정치·법제/법제·행정]

    조선시대 세자 혹은 세손의 교육을 담당한 보양청의 관직. 세자보양관은 대개 3인으로 2품 이상의 고관이 임명되었으며, 그 직책의 중요성 때문에 천거문제를 둘러싸고 당파간의 분쟁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김육은 정2품직으로 세손의 보양관이 되었고, 인종 초기 소현세자의 보

  • 보양청 / 輔養廳 [정치·법제/법제·행정]

    조선시대 원자(왕의 적장자)나 원손(왕세자의 적장자)의 보호·양육을 위하여 설치된 특별관서. 세자시강원이나 세손강서원의 부설기구로 원자·원손의 출산과 동시에 설치되었다. 원자 보양관은 종2품 이상의 고관 3인으로 임명하였으나, 왕의 특명이 있으면 추가로 임명하기도 하

  • 보우 / 普雨 [종교·철학/불교]

    1509-1595. 조선시대의 승려. 15세에 금강산 마하연암에서 출가하였다. 훗날 정만종의 천거로 명종의 어머니 문정왕후와 밀접한 관계를 맺게 되었다. 보우는 고동안 배불정책으로 탄압을 받아왔던 불교를 진흥시키기 위하여 노력하였다. 선종과 교종을 다시 부활시켰고 승과

  • 보은 상현서원 / 報恩象賢書院 [교육/교육]

    충청북도 보은군 장안면 서원리에 있는 서원. 1549년(명종 4) 성제원(成悌元)을 중심으로 한 지방유림의 공의로 삼년성(三年城) 안에 서원을 창건하여 김정(金淨)을 봉안하고 삼년성서원이라 하였다. 1610년(광해군 2) ‘象賢(상현)’이라고 사액되었으며, 167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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