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 : 조선 총 10,287건의 주제어가 있습니다.
시대 : 조선
보사공신 / 保社功臣 [역사/조선시대사]
1680년(숙종 6) 경신대출척에 공을 세운 신하에게 내린 칭호 또는 그 칭호를 받은 사람. 김만기·김석주에게 1등공신을, 이입신에게 2등공신을, 남두북·정원로·박빈에게 3등공신을 내렸다. 이 중 정원로는 역모와 관련 있다고 하여 6월에 복주(伏誅)되어 삭훈되었다.
보산서원 / 寶山書院 [교육/교육]
황해도(현재의 황해남도) 벽성군 나덕면 통산리에 있었던 서원. 1659년(효종 10)에 지방유림의 공의로 이이(李珥)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이이는 1574년(선조 7)에 황해도관찰사로 부임하였다가 2년 뒤에 관직을 버리고 청계당(淸溪堂
보상무 / 寶相舞 [예술·체육/무용]
조선 순조 때 창작된 향악정재(鄕樂呈才)의 하나. 창사(唱詞)는 1828년(순종 28) 『진작의궤』 부편(附編)에 전하며, 1829년 2월의 진찬(進饌)에서는 악장이 없는 여령정재(女伶呈才)로 추어졌으며 그 해 6월의 진찬에서는 보상반(寶相盤)이라 하여 익종(翼宗) 예
보성향교 / 寶城鄕校 [교육/교육]
전라남도 보성군 보성읍 보성리에 있는 향교. 397년(태조 6)에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配享:학덕 있는 사람의 神主를 모시는 것) 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보성읍 남문 밖 주봉리 구계동에 창건되었다. 이후 임진왜란 때까지의 연혁은 자세하지 않으며
보소당인보 / 寶蘇堂印譜 [언론·출판]
저자 신위(1769-1847). 검인본. 1첩. 표제에는 만연필로 <보소당인보>라 서명을 필서하였다. 1책 28장으로 총 459방의 인장이 찍혀 있다. <보소당인보>는 국내에 여러 판본이 현존한다. 1책, 2책, 4책, 6책, 12책, 14책본 등 다양한 인본이 있으며
보안도 / 保安道 [지리/자연지리]
지명. 강원도 찰방도의 하나. 1455년(세조 1)에 대창·보안도를 합하여 대창도(大昌道)라 하고 찰방을 파견하던 것이 세조(世祖) 8년 정역개편에서 대창도(大昌道)가 다시 은계(銀鷄)·보안(保安) 양찰방도(兩察訪道)로 나누어져서 보안도 소관역(保安道所管驛)으로 정비
보양관 / 輔養官 [정치·법제/법제·행정]
조선시대 세자 혹은 세손의 교육을 담당한 보양청의 관직. 세자보양관은 대개 3인으로 2품 이상의 고관이 임명되었으며, 그 직책의 중요성 때문에 천거문제를 둘러싸고 당파간의 분쟁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김육은 정2품직으로 세손의 보양관이 되었고, 인종 초기 소현세자의 보
보양청 / 輔養廳 [정치·법제/법제·행정]
조선시대 원자(왕의 적장자)나 원손(왕세자의 적장자)의 보호·양육을 위하여 설치된 특별관서. 세자시강원이나 세손강서원의 부설기구로 원자·원손의 출산과 동시에 설치되었다. 원자 보양관은 종2품 이상의 고관 3인으로 임명하였으나, 왕의 특명이 있으면 추가로 임명하기도 하
보우 / 普雨 [종교·철학/불교]
1509-1595. 조선시대의 승려. 15세에 금강산 마하연암에서 출가하였다. 훗날 정만종의 천거로 명종의 어머니 문정왕후와 밀접한 관계를 맺게 되었다. 보우는 고동안 배불정책으로 탄압을 받아왔던 불교를 진흥시키기 위하여 노력하였다. 선종과 교종을 다시 부활시켰고 승과
보은 상현서원 / 報恩象賢書院 [교육/교육]
충청북도 보은군 장안면 서원리에 있는 서원. 1549년(명종 4) 성제원(成悌元)을 중심으로 한 지방유림의 공의로 삼년성(三年城) 안에 서원을 창건하여 김정(金淨)을 봉안하고 삼년성서원이라 하였다. 1610년(광해군 2) ‘象賢(상현)’이라고 사액되었으며, 167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