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형 : 인물 총 3,881건의 주제어가 있습니다.
유형 : 인물
김광서 / 金光瑞 [역사/근대사]
1883-미상. 독립군 지휘관. 본관은 시흥. 아명은 현충(顯忠), 별명은 경천(擎天). 함경북도 북청 출신. 대한제국의 포병 부령(副領)이며, 군기창장(軍器廠長)을 역임한 정우(鼎禹)의 아들이다. 1911년 일본 육군사관학교 23기졸업생으로 기병장교로 동경 제1사단
김광억 / 金光億 [종교·철학/유학]
1743년(영조 19)∼1799년(정조 23). 조선 후기 유학자. 공신 김회련의 후손으로 전라북도 정읍 태인면에서 출생하였다.《의례경전기의》·《계몽기의》등의 저술을 남긴 삼산재 김이안을 사사했다. 그의 문집《목촌유고》필사본 1책이 전한다.
김광엽 / 金光曄 [종교·철학/유학]
1561(명종 16)∼1610(광해군 2). 조선 중기의 문신. 아버지는 어모장군병마만호 침, 어머니는 원주원씨로 승문원판교 수장의 딸이다. 1590년(선조 23) 생원시에 장원으로, 진사시에 2등으로 합격한 뒤 그해 증광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승문원과 예문관에 임
김광용 / 金匡溶 [역사/근대사]
1908-1979.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적은 전라남도 나주시(羅州市) 본양면(本良面)이다. 광주고등보통학교(현 광주제일고등학교) 재학 시절인 1926년 11월 3일, 국순엽(鞠淳葉)·김창주(金昌柱)·김한필(金漢苾)·문승수(文升洙)·박인생(朴仁生)·안종익(安鍾翊
김광우 / 金光遇 [종교·철학/유학]
1707년(숙종 33)∼1781년(정조 5). 조선 후기의 문신. 아버지는 진사 진하이다. 1737년(영조 13)에 생원, 1749년 해주판관, 1763년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 성균전적·병조좌랑·예조좌랑을 거쳐 함경아사를 지냈다. 그뒤 사헌부지평, 상주목사 등을
김광욱 / 金光郁 [역사/근대사]
미상-1919.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적은 평안남도 강서군(江西郡)이다. 1919년 3월 평안남도 대동군(大同郡) 반석면(班石面) 반육리(班六里)에 소재한 반석교회(盤石敎會)의 조진탁(曺振鐸) 장로가 시도한 독립만세운동이 일본 경찰에 의해 사전 검거되어 실패하였
김광유 / 金光裕 [종교·철학/유학]
1571년(선조 4)∼1596년(선조 29). 조선 중기의 사인. 조부는 김사걸, 부친은 형조참의를 지내고 후에 도승지에 추증된 만취당 김위이다. 은진송씨 송남수의 딸과 혼인하여 문정공 송애 김경여를 낳았다. 사계 김장생의 아들 신독재 김집과 절친했으며, 우암 송시열
김광윤 / 金光允 [역사/근대사]
1907-미상. 일제 강점기 농민운동가·사회주의운동가. 본적은 함경남도 안변(安邊)이다. 배화공립보통학교와 북경대학(北京大學)을 졸업하였다. 1932년 2월 배화농민조합 결성식에 참여하였으며, 《신소년》·《신계단》 등의 책을 구입하여 배화농민조합원들에게 배포하였다.
김광익 / 金光翼 [문학/한문학]
조선 후기의 여항시인(閭巷詩人). 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천서(天瑞), 호는 반포암(伴圃庵). 이만수(李晩秀)가 쓴 「반포유고서(伴圃遺稿序)」에 의하면 군부(軍府)의 서리였다고 한다. 아들 김재명(金載明)도 유명한 여항시인으로 그의 시집 『반포유고』를 간행하였다.
김광제 / 金光濟 [역사/근대사]
1866-미상. 민족운동가. 충청남도 보령 출신. 1907년 대구에서 출판사인 광문사(廣文社)의 사장으로 있으면서 부사장 서상돈(徐相敦)과 함께 〈국채일천삼백만환보상취지서 國債一千三百萬과報償趣旨書〉라는 격문을 전국에 발송하여 국채보상운동을 제의하였다. 그 요지는 대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