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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절 / 旄節 [정치·법제/법제·행정]
조선시대 의장에 사용한 기. 홍색으로 물들인 상모뭉치와 이 뭉치 위에 금동으로 도금한 덮개를 씌워 만든 털뭉치 7개를 차례로 늘어뜨려 대나무 장대의 끝에 장식되어 있는 주칠을 한 용의 입속 고리에 매달아 만들었다. 용도는 기우제소가의장·왕비의장·왕세자빈의장·왕세손의장
모정 / 茅亭 [사회/촌락]
여름철에 마을주민이 더위를 피하여 휴식하기 위하여 세운 마을의 공유·공용건물. 여름에만 사용하기 때문에 방이 없이 마루로만 구성된, 작은 규모의 초가지붕 건물로 전라도지방에 집중해 있다. 이 지방에서도 지역에 따라 분포의 정도가 다르며, 명칭도 모정·시정·우산각·농정·
모주집 / 茅洲集 [문학/한문학]
조선 후기의 문인 김시보(金時保)의 시문집. 10권 5책. 활자본. 권1∼8에는 시 1,065수, 부(賦) 5편, 권9에 서(書) 17편, 서(序) 4편, 기(記) 3편, 제(題)·발(跋) 각 1편, 권10에 묘지명 9편, 행장 3편, 제문 9편, 애사 3편 등이 수
모죽지랑가 / 慕竹旨郎歌 [문학/고전시가]
신라 효소왕 때 득오(得烏)가 지은 8구체 향가. 득오가 죽지랑(竹旨郎)을 사모하여 지었다는 노래. 『삼국유사(三國遺事)』권2 효소왕대 죽지랑조(孝昭王代 竹旨郎條)에 관련설화와 함께 가사가 전한다. 이 노래의 이름은 양주동(梁柱東)이 ‘모죽지랑가’라고 칭한 이외에도 오
모지 / 牟支 [지리/인문지리]
전라남도 장성 지역의 옛 지명. 본래 마한 때 구사오단국(舊斯烏旦國)에 속했고, 백제 때고시이현(古尸伊縣, 또는 號尸伊縣)이 되었다. 당나라가 백제를 점령했을 때 설치한 사반주(沙伴州)에 속한 모지(牟支)ㆍ무할(無割)ㆍ좌로(佐魯)ㆍ다지(多支) 등 4현(縣) 중의 하나이
모직 / 毛織 [생활/의생활]
양모섬유사(羊毛纖維絲)로 제직된 직물. 우리 나라에서는 일찍이 부여에서 여우[狐]·돼지[貂]·산고양이[狸], 기타 짐승의 가죽을 사용하였으며, 고구려에서는 장일(鄣日)이라고 하는 모직물을 제직한 사실도 있었다.
모찌기소리 [문학/구비문학]
모내기를 하기에 앞서 못자리에서 모를 뽑아 내면서 부르는 민요. 모내는 일은 여러 사람들에 의해서 오랜 시간 가지런히 치러지지만, 모찌기는 그 작업 자체가 거칠고 재빠르게 치르는 일이어서 여유 있게 노래할 수 있는 분위기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기 때문이다. 작업이 산
모토노 이치로 / 本野一郞 [정치·법제/외교]
1862-1918. 일본 외교관. 주러시아 일본대사. 러시아정부로부터 한국 강점을 승인 받음. 1890년 일본으로 귀국하여 외무성에서 번역관이 되었다. 1898년에는 벨기에공사, 1901년 12월 프랑스공사, 1906년 1월 러시아공사가 되었다. 1907년 러시아공사관
모평 / 牟平 [지리/인문지리]
전라남도 함평 지역의 옛 지명. 본래 백제의 다지현(多只縣)이었는데, 신라 경덕왕 때 다기현(多岐縣)으로 고쳐 무안군(務安郡)의 영현으로 삼았다. 940년(태조 23) 모평현(牟平縣)으로 고쳤고, 현종 때 소속을 영광군(靈光郡)으로 바꾸었다. 1403년(태종 3) 함풍
모포줄 / 牟浦줄 [생활/민속]
경상북도 포항시 남구 장기면 모포리에 전해오는 줄다리기 줄. 2점으로, 중요민속자료 제187호이다. 마을의 수호신인 골맥이신의 신체로 상징되며 당 안에 모셔져 있다. 모포줄은 암줄과 수줄로 되어 있다. 재료는 흔히 사용되는 짚으로 만든 줄과 달리, 짚과 칡넝쿨, 구피나
모하당술회 / 慕夏堂述懷 [문학/고전시가]
조선 후기에 김충선(金忠善)이 지은 가사. 총462구. 줄거리는 제1단이 예의의 나라 조선국을 흠모하다가 가토(加藤淸正)의 선봉장이 되어 출정함에 귀화의 결단을 내리게 되었음을 말하고, 제2단은 자연의 아름다움과 예악과 풍속에 감탄하여 투항하게 되었음과, 제3단은 귀
모현지석묘 / 慕賢支石墓 [역사/선사시대사]
경기도 용인시 모현면 왕산리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고인돌. 경기도 기념물 제22호. 경안천(慶安川) 본류에서 약 0.5㎞ 떨어진 평탄한 구릉 위에 분포한다. 상석(上石)과 지석(支石)을 갖춘 지석묘 2기가 철책 안에 있으며 이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지석으로 추정
모화관 / 慕華館 [정치·법제/외교]
중국사신이 유숙하던 숙소. 1430년(세종 12)에 모화관(慕華館)으로 개칭되었다. 1433년(세종 15)에 개축하였는데 남쪽에는 방지(方池)가 있고 주위에는 버드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또 입구에는 영조문(迎詔門)이 있었는데 중국사신 설정총(薛廷寵)이 ‘맞이하는 것이
목계서원 / 牧溪書院 [교육/교육]
경상남도 산청군 단성면 방목리에 있는 서원. 1700년(숙종 26)에 산청의 유림들이 동곡(桐谷) 이조(李晁, 1530∼1580)의 학문과 정신을 추모하고자 두릉사(杜陵祠)를 건립하였다. 1708년(숙종 34)에 이건하여 두릉서원(杜陵書院)으로 승원하여 급고재(汲古齋)
목계진 / 牧溪津 [지리/인문지리]
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의 남한강가에 있는 조선시대의 나루. 강의 진도(津渡)는 그 당시 사람과 말의 왕래나 물자의 운송로로서 그 구실이 매우 컸으며, 특히 목계진은 강 건너 가금면 가흥리에 있었던 가흥창(加興倉)으로부터 원주ㆍ제천ㆍ청풍 등지로 통하는 중요한 나루였다.
목공예 / 木工藝 [예술·체육/공예]
나무를 이용하여 물건을 만드는 공예. 나무를 많이 다루는 생활여건에 따라 갖가지 민구(民具) 역시 나무로 제작하는 것이 순리적이며, 따라서 목재를 다루는 솜씨 또한 일찍이 발달되었다. 목재를 다루어 집을 짓거나 기물을 제작하는 기술자를 목수(木手) 또는 목장(木匠)이라
목기러기 / 木─ [사회/가족]
전통혼례에 사용되는 나무로 만들어 채색한 기러기의 모형물. 혼례에 쓰이는 가장 중요한 상징물의 하나이다. 신랑 일행이 혼례를 올리러 신부집으로 향할 때, 목기러기를 들고 가는 사람이 있으니 이를 안부(雁夫) 또는 기럭아비라 한다. 신랑이 신부집 안마당에 준비한 초례청(
목기장 / 木器匠 [예술·체육/공예]
나무를 재료로 하여 제기, 찬합 등 그릇을 만드는 일 및 그 일에 종사하는 장인.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11호.목기(木器)는 남원지방의 특산품으로서 특유의 향기와 정교하고 아름다운 모양, 그리고 단단한 목질과 벗겨지지 않는 옻칠 등으로 일찍이 조선 초기부터 그 명성이
목내선 / 睦來善 [종교·철학/유학]
1617(광해군 9)∼1704(숙종 30). 조선 후기의 문신. 세칭 증손, 할아버지는 이조참판 첨, 아버지는 지중추부사 서흠, 어머니는 권탁의 딸이다. 허목의 문인이다. 1650년(효종 1)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 지평·교리·판결사 등을 역임하였다. 그 뒤 1672
목단강 / 牡丹江 [지리/인문지리]
중국 흑룡강성 동남부에 위치한 항일투쟁지. 흑룡강성 전체에서 세 번째로 크며, 동남부지역 최대의 도시이다. 러시아, 북한, 중국이 포위하는 금삼각(金三角, 골든트라이앵글)의 중심지역에 위치하고 있다. 북쪽으로는 하얼빈시 의란현과 칠대하시 발리현, 서쪽으로는 하얼빈시 오




